회복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회복하고 치유할 능력이 있다.
현명한 의사들은 안다. 환자의 몸이 치유되는 것은 의학의 기술이 아니라 환자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회복’한다는 의미는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re-turn)’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집(home)으로 되돌아간다는 말이다. 집 떠난 탕자가 이리저리 세상 풍파를 다 겪은 후 결국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의 원래 상태는 생명력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당신은 생명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언제나 당신만의 치유법을 가지고 있다.
01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회복된 거다.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벌거숭이 임금님>의 이야기에 보면, 한 꼬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임금님이 벌거벗었어요.” 그 꼬마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꼬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두려움’과 ‘허영’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그 능력을 마비시켜 버린다. 당신이 그 이야기 속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은가?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 없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화가 나 있고, 상당히 감정적인 상태라면 당신에게 타인은 분풀이의 대상이나 당신을 공격하는 공격의 대상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혹은 당신이 화’라는 감정을 외부에 투사할 경우 타인과 세상이 오히려 당신에게 화가 나있다고 생각되므로 당신은 그들로부터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당신이 완벽주의인 부모를 내면화했다면, 아무리 어떤 것을 성취해도 당신 스스로는 만족할 수 없고 스스로에게 혹평을 일삼을 것이다. 이처럼 내면의 생각과 감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차 없이 왜곡해 버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 바로 용서'가 그 답이다.
02 용서하면 있는 그대로 보인다.
회복은 상처와 아픔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내면적으로는 당신에게 상처 주었던 모든 관념과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더 이상 그 생각들에게서 조종당하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용서하는 것이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한 번의 상처로 당신의 평생 삶의 시간들을 상처로서 살아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해자’가 아닌데 왜 당신이 고통받아야 하는가. 용서하라. 그리고 또 용서하라.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 자유로워질 것이다.
03 타인이 당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당신 스스로 자신을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당신은 가끔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No”라고 말하는 걸 경험했을 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경험들은 충분히 있을 예정이다. 그들은 그저 당신의 부분적인 모습만을 보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뿐이다. 그들은 그들이 보고 싶은 모습까지만, 당신을 이용할 수 있는 모습까지만 당신의 부분적인 모습을 본다. 그리고는 말한다. “당신은 안 되겠어요.” “당신은 우리하고는 맞지 않아요.” 당신은 그럴 때일수록 있는 그대로 당신의 모습을 제대로’ 봐야 한다. 제대로 보면 명확히 보일 것이다. 그들이 당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당신 스스로 자신을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04 언제나 선택은 사랑이다.
당신은 사랑’에 익숙한가 아니면 보상’에 익숙한가. 당신은 현재 사랑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보상을 주고 있는가.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을 준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진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도 꽃도 숲도 새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돌고래도 펭귄도 모두 진짜를 준다. 하지만 당신은 가끔 보상을 훈련시키려 하지는 않는가? 가끔 보상을 쫓고 있지는 않는가. 사랑 대신 보상을 주려고 하지는 않는가. 보상은 매우 달콤하고 참으로 매혹적이다. 그것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유효기간이 끝나면 재빨리 서둘러 다른 보상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진짜 당신은 언제나 예외 없이 진실로 사랑을 선택하길 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신의 원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05 관심’과 간섭’은 서로 다른 의도’를 지녔다.
당신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가 아니면 간섭’을 하는가? 당신은 혹시 관심이라는 명분하에 그들이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되어가는 과정을 침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혹은 그들의 성장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들보다 당신 자신이 그들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문제를 교묘하게 회피하기 위해서 타인에게 열심히 봉사’와 친절’을 베풀고 있는 건 아닌가. 친절과 봉사’는 당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참으로 교묘하면서도 가장 번듯한 방법이다. 누군가를 돕는다고 하면 칭찬을 받을 수도 있고, 직접 해결해야 할 당신의 일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의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온다면, 그냥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나는 OO를 돕느라 나를 탐구할 시간이 없었어.” “나는 OO를 돕느라 나를 성장시키지 못했어.” 그리고 당신은 안전감’을 느낀다. 매번 누군가에게 인정’과 확인’을 받을 때에만 말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자아를 발달시키지 못했기에 외부로부터 항상 자아 확인’을 받아야지만 안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06 언제나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을 선택하라.
<토끼와 거북이>에서 거북이가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북이는 토끼를 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거북이가 처음부터 토끼와 비교했다면 경주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려움이 몰려오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뿐이다. 그럴 때일수록 눈을 감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항상 당신 자신이 되는 걸 선택하면 된다. 타인을 바라보지 말고, 당신 자신을 봐라. 당신의 부분이 아닌 당신의 전체를 봐라. 눈을 크게 떠야 진짜 당신을 볼 수 있다. 당신은 이제부터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당신은 이제부터 쉬운 길’이 아닌 아무리 불편하고 복잡해 보여도 당신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
07 당신의 힘을 느끼고 싶다면 감사하라.
당신은 에너지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에너지는 하나의 힘이다. 힘’이라는 건 당신이 누군가를 억누르고 짓밟기 위한 힘이 아니다. 진정한 힘’이라는 것은 심지어 당신과는 전혀 다르다 할지라도 그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들은 당신과 비슷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관계가 깨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사람들은 당신이 강하기 때문에,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당신은 진정한 힘이 없고 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계를 오래 유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약함을 가장하기 위해 그저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힘을 얻는 원천은 무엇일까? 언제나 당신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방법은 감사’다. 이건 변함없는 진리’다. 감사는 당신을 강하게 한다. 감사는 당신이 약해질 때 강해질 수 있게 한다. 감사는 당신을 치유하고 당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한다. 감사는 또한 당신이 풍요’와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당신의 삶 속에서 언제나 당신 곁에 있어 온 모든 감사의 대상과 순간들을 당신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