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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Sep 08. 2020

머리에서 입술까지 아주 먼 거리, 감정의 시차

feat. 감정과 생각의 차이


얼굴은 작은데...

머리와 입술 사이는 때로 너무나 멀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센티미터라는데, 머릿속 생각이 한 뼘 아래 입술을 지나 밖으로 나오기까지 어떤 건 년쯤.. 아니 어떤 건 평생..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던가.


얼마 전에는 남편과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갑자기 울먹임이 터져 나왔다. '요즘 편두통 때문에 자 아파서 힘들다'라는 그 말을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만 해도 심각한 느낌 없었는데, 입으로 내뱉기 시작하니 서러움이 복받쳐 몸이 떨리고 눈물이 다.


심리상담을 받을 때도 그랬다. 

난 이렇고 이렇고 또 이러했다고 수없이 들여다보고 생각해오던 건데.. 3인칭 시점으로 기껏해야 먹먹하게 조금 울던 건데.. 상담 선생님 앞에서 입을 떼기 시작하면 꺼이꺼이 울 정도로 진폭이 커졌다.

심장을 도려내는 듯이 아팠다.

숨 쉬기도 어려웠다.

쏟아져 나오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어느덧 나는 원망과 서러움 그 자체.


대체 이 격한 감정들은 말이 되기 이전엔 떤 모습으 숨어 있었까.






진정한 변화를 도모하려면 '왜' 그런지를 이해하는 것보다 '무엇이' 경험되는지를 상징화하고 정서가 '어떻게' 경험되는지(어떤 내적 과정에 의해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가)를 자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나는 ......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느낀다"와 같은 말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혹은 초기에 있었던 원인을 개념적으로 탐색하게 만들 뿐이며, 결국 내담자가 현재 느끼는 경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이다.


* 출처 : <심리치료에서 정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LESLIE S.GREENBERG, Sandra C. Paivio/ 이흥표 역, 학지사



지금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인지하여 아는 것과 지금 올라오는 감정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정이다. 또한 과거의 감정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과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각각 다른 일이다.


그러니 화가 나면 머리로 원인을 따지기 전에, 잣말이라하는 게 도움다.

"나 지금 너무 화가 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과 밖으로 내진동을 느끼는 것 차이가 있다. 입도 뻥긋 못한 감정은 끈끈 엉겨 붙어 떨어지지를 않지만, 이름 붙여 세상에 내어놓은 감정은 보다 쉽게 분리되어 충분히 지켜본 후 그것을 떠나보낼 수 있다.


"나도 내가 소중해"

머리로 하는 다짐과 입으로 하는 선언은 결이 다르다. 어색하게 울먹이는 목소리를 타고 진심이 살아난다. 행동으로 살아 움직일 때 비로소 내가 애처롭게 살아난다.


감정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이 아니라고 하니까. 

감정은 이 순간 생생히 느껴지는 감각 속에 있으니까. 


서로 보듬어 안고,

따뜻하게 손을 녹여주고,

등을 토닥여주고,

머리를 쓸어주면서 촉감을 나눈다.

엄마와 아이의 살 냄새,

귓가에 따가운 목소리,

살아있는 사랑은 온몸으로 각인된다.


스스로를 위로하려면 글을 쓰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쓴 편지를 입으로 소리 내어 읽고 벅찬 감정을 직접 느껴보는 것까지.

때로 안아줄 사람이 필요한 나에게는 버터플라이 허그[Butterfly hug; 가슴 위에 양 팔을 X자로 교차한 후 두 손으로  어깨를 천천히 두드려준다] 직접 토닥임을 전해볼까.


쑥스럽다 피하지 말고, 거울을 보며 나에게 "반가워"라고

소리 내어 말할 때 

나는 드디어 나와 친구가 된다.



* 상단 이미지 출처 https://www.cwfilms.jp/5cm/

* 본문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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