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모든 사람들의 연애 끝을 결혼이라고 이야기하듯 나 또한 그러했다.
나는 20살부터 11살 연상의 남자와 5년 동안 연애를 했다.
연애 기간 동안 '결혼'에 얽매였고 마침내 결혼을 선택했다.
나의 숙제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 이젠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comedy TV에서 방영 중인 맛있는 녀석들의 추석특집에서 나오듯 나는 이제 겨우 결혼이라는 과제를 마친 것뿐이었다. 25살 어린 나이에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마치고 나자마자 뒤 돌아보니 사람들은 '임신'이라는 숙제를 내게 보이며 빨리 해낼 것을 강요해왔다.
많은 신혼부부들은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마치고 나면 임신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우리는 이제야 겨우 부부가 되었고 세상에 하나임을 선포하였음에도 엄마, 아빠가 될 준비를 시작하라고 한다.
나는 결혼 전부터 11살 연상 남자와 장기간 연애 때문인지 내 주변 지인들은 넌지시 임신을 이야기했다. 그땐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이라며 웃으며 넘겼다. 결혼과 임신을 동시에 생각할 수 없다고 여겼다.
신혼여행을 끝내고 양가를 다녀왔다. 정식으로 사람들에게 두 사람이 부부가 됨을 선포한 지 고작 일주일 지났지만 나는 당연하게 임신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박 서방이 나이가 많으니 이제 임신 준비해야지"
"결혼도 했으니 임신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애를 낳아도 애를 다 키우고 나면 50살이다."
양가 어른들의 의견이 우리 부부의 자녀계획으로 변질된다. 나는 어리석었고, 반항하지 못했다. 속으로 임신을 무서워했지만 겉으로는 그저 "네"라고 대답을 할 뿐이었다.
나는 임신을 어려운 숙제로 느꼈고, 그와 관련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많은 부정적인 생각은 임신에 대한 두려움을 부풀려갔다. 두려움이라는 풍선은 곧 터질듯했지만 주변에서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부풀어 터질 듯한 두려움을 품에 안고 임신이라는 숙제를 떠맡았다.
임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타인의 의견이 섞인 자녀계획은 그저 숙제일 뿐이었다. 어릴 적 당일이 되도록 미룬 숙제를 겨우 쉬는 시간에 맞춰 끝낸 그때처럼 나는 임신을 미뤄두고 싶었다.
숙제를 미루다 걸린 어릴 적 나처럼 난 어른들의 기대에 맞춰 임신을 준비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나는 모든 일을 접어둔 채 임신에 몰두했다. 그렇게 6개월을 혼자 앓았다.
임신에 대한 강요 아닌 강요 속에서 스스로 혼자가 되어 문드러졌다.
나는 마음을 무너뜨리고서야 임신을 내려놓고 나를 찾았다.
우리는 천천히 계단 한 칸씩 밟고 올라가듯 부부의 삶 또한 마찬가지로 한걸음 겨우 움직였을 뿐이다.
이제 겨우 결혼이라는 계단을 밟고 올라와 '임신'이라는 숙제를 알고 있으며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