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나온 사람들처럼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면 곧 닥친다는 그 무서운 길이 서서히 닥치거나, 우회해서 피해 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두메산골은 없었다.
그리고 회피의 심리로 가졌던 기대감이 애초에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나 '나'나.
'그'로부터 투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곤 모든 것이 초스피드로 결정되었다.
우리들은 다시 함께 살아갈 집을 선택해 이사를 했고, 아이들 학교 문제도 해결을 하였다. 다행히 큰아이는 중학교 입학, 둘째는 초등학교 입학이라 아이들에게 이사의 시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리들이 이사를 가기로 한 곳은 신생 도시라, 전입이 워낙 많아 기존 친구들의 텃세라거나 그럴만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듯했다. 어차피 다들 다른 곳에서 모여들어 새롭게 시작하는 그런 곳이니까.
그리고 집을 선택함에 가장 중요했던 조건, 1층. 아이가 넷이고 한참 뛰며 놀아야 할 셋째는 다섯 살, 넷째는 16개월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1층이어야 했다. 신도시라 빈집은 골라 들어가도 될 만큼 많았지만, 경제적인 조건의 충족과 1층이라는 조건으로는 딱 한 곳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집이 결정되고 그다음의 중요한 결정은 나의 직장이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보육기관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 스크롤을 내리면서, 과거의 교통사고가 그처럼 원망스럽고, 그 교통사고로 좌절의 시간 속에 꿈이라는 것을 집어던져버린 과거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사고가 안 났더라면,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도 당시 강인한 의지로 좌절과 실의에 빠지지 않고 일어서서 나의 꿈을 이뤄냈더라면 지금의 이런 암담함 속에 빠질 일은 없지 않았을까 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되뇌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그러면서도 바로 돈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내몰려도 여섯 식구의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될 정도의 벌이가 되는 일.
보육교사의 급여로는 될 리 없다. 그 이상의 생계비가 필요하다. 그런 일중 내가 노력하면 될 일 뭐가 있을까? 보험? 너무 모르는 길이다...
많은 생각 끝에 나는 학습지교사를 선택했다. 바로 뛰어들 수 있는 일. 오전시간에 아이들 케어가 가능한 일. 내가 뛰는 만큼 돈이 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 가르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아이넷을 놓고 신입교사 연수를 받던 나는 그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지금의 처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두고 일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은 대충 때운다거나 대충 준비한다는 건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해볼게, 그때까지만이라도 제발 버텨줘요. 얘들아, 엄마가 너희 책임질게.'
그 마음들로 매진했다고 한다면 맞을 거다.
4주간 교육이수를 하면, 전국 해당 기수 예비선생님들의 국어과목과, 수학과목, 그리고 학부모 상담 스킬 시험이 있다. 2박 3일 일정으로 시험과 교사 당락이 결정되고 거기에서 전국 1등을 하면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전국 1등? 해내자. 저것부터 내 것으로 가져오자. 그 생각으로 공부했고 도전을 했다. 결국 난 해당기수에서 전국 1등을 하며 그 상금을 받았고 그 타이틀로 많은 관리 학생을 받아 조금씩 가장이 될 준비를 해나갔다.
다행히 신은 텀을 주셨다. 내가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주셨고, 그의 건강도 그 기간은 버텨주었다.
그동안 그는 회사를 그만 둘 준비를 했다.
따뜻한 봄날, 여기저기 봄꽃들이 피어나던 날.
따사로운 햇살이 시리게만 느껴지던 날이 결국 오고야 말았다.
저녁 여섯 시경. 다음 관리학생 집으로 부지런히 운전을 하고 가는 길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