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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각화 Mar 28. 2024

아득한 어둠 속 그 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05

내가 해볼게. 그때까지만이라도 버텨주기를...

하루아침에 여섯 식구의 가장으로 내몰리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모두를 끌어안고 두메산골로 들어가면 될까?


응급처치가 가능한 병원이 두메산골에 있었다면 난 그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나온 사람들처럼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면 곧 닥친다는 그 무서운 길이 서서히 닥치거나, 우회해서 피해 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두메산골은 없었다.

그리고 회피의 심리로 가졌던 기대감이 애초에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나 '나'나.




'그'로부터 투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곤 모든 것이 초스피드로 결정되었다.


우리들은 다시 함께 살아갈 집을 선택해 이사를 했고, 아이들 학교 문제도 해결을 하였다. 다행히 큰아이는 중학교 입학, 둘째는 초등학교 입학이라 아이들에게 이사의 시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리들이 이사를 가기로 한 곳은 신생 도시라, 전입이 워낙 많아 기존 친구들의 텃세라거나 그럴만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듯했다. 어차피 다들 다른 곳에서 모여들어 새롭게 시작하는 그런 곳이니까.


그리고 집을 선택함에 가장 중요했던 조건, 1층. 아이가 넷이고 한참 뛰며 놀아야 할 셋째는 다섯 살, 넷째는 16개월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1층이어야 했다. 신도시라 빈집은 골라 들어가도 될 만큼 많았지만, 경제적인 조건의 충족과 1층이라는 조건으로는 딱 한 곳이 있었다. 사하게


집이 결정되고 그다음의 중요한 결정은 나의 직장이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보육기관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 스크롤을 내리면서, 과거의 교통사고가 그처럼 원망스럽고, 그 교통사고로 좌절의 시간 속에 꿈이라는 것을 집어던져버린 과거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사고가 안 났더라면,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도 당시 강인한 의지로 좌절과 실의에 빠지지 않고 일어서서 나의 꿈을 이뤄냈더라면 지금의 이런 암담함 속에 빠질 일은 없지 않았을까 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되뇌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그러면서도 바로 돈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내몰려도 여섯 식구의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될 정도의 벌이가 되는 일.


보육교사의 급여로는 될 리 없다. 그 이상의 생계비가 필요하다. 그런 일중 내가 노력하면 될 일 뭐가 있을까? 보험? 너무 모르는 길이다...


많은 생각 끝에 나는 학습지교사를 선택했다. 바로 뛰어들 수 있는 일. 오전시간에 아이들 케어가 가능한 일.  내가 뛰는 만큼 돈이 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 가르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아이넷을 놓고 신입교사 연수를 받던 나는 그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지금의 처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두고 일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은 대충 때운다거나 대충 준비한다는 건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해볼게, 그때까지만이라도 제발 버텨줘요. 얘들아, 엄마가 너희 책임질게.'

그 마음들로 매진했다고 한다면 맞을 거다.


4주간 교육이수를 하면, 전국 해당 기수 예비선생님들의 국어과목과, 수학과목, 그리고 학부모 상담 스킬 시험이 있다. 2박 3일 일정으로 시험과 교사 당락이 결정되고 거기에서 전국 1등을 하면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전국 1등? 해내자. 저것부터 내 것으로 가져오자. 그 생각으로 공부했고 도전을 했다. 결국 난 해당기수에서 전국 1등을 하며 그 상금을 받았고 그 타이틀로 많은 관리 학생을 받아 조금씩 가장이 될 준비를 해나갔다.


다행히 신은 텀을 주다. 내가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주셨고, 그의 건강도 그 기간은  버텨주었다.


그동안 그는 회사를 그만 둘 준비를 했다.


따뜻한 봄날, 여기저기 봄꽃들이 피어나던 날.

따사로운 햇살이 시리게만 느껴지던 날 결국 오고야 말았다.





저녁 여섯 시경.
다음 관리 학생 집으로 부지런히 운전을 하고 가는 길그에게서 화가 왔다.


퇴근시간이라 전화하는 거라 여기고 늘 받던 것처럼 받았다.


"응! 자기야~"


"여보세요?"

?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대학병원 응급실입니다. ○○○환자분 보호자님 되시죠? 지금 응급으로 신장투석 들어가야 돼서$$$$€○¥○□¡$◇`€°¡■●#&÷_÷^$*+...."


아...

뭐라고 계속 말하는데 못 알아듣겠.


그래.

고마워.

지금까지 버텨줘서.


"바로 갈게요."


그렇게 바로 응급실로 차를 돌렸다.


달려가는 시간 퇴근시간이라 길이 막혀 한 시간 남짓. 눈물은 앞을 가리고 속마음은 정신 차리라고 외쳐댔다. 예정되었던 일이 왔을 뿐인데, 정신 바짝 차리라고. 생각하라고.


'지금은 네가 중심이 되어야 해! 정신 차려! ○○○!'

내 이름을 내가 불러대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병원 주차장에 도착해 큰 아이한테 전화를 했다. 뭐라도 시켜 먹고 동생들 좀 챙겨달라고. 그리고 아빠의 소식도 전했다. 흐트러짐 없이 덤덤한 큰 아이의 대답에 오히려 가슴이 저몄다.


이 아이도 힘들구나.

삼키고 있구나.

내가 흔들리면 안 되겠구나, 절대!


아이와 통화를 마치고, 나는 룸미러를 봤다.

약하디 약한 한 여자가 겁을 잔뜩 먹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큰 숨을 몇 차례 쉬고 다짐을 했다.


그가 마음 편하게 아프고, 마음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강한 모습으로 그를 만나자고.


눈물 범벅된 얼굴을 조금 다듬고, 강한 아내인척 그가 누워있는 응급실로 걸음을 떼며 들어갔다.


저기 그가 누워있다. 전보다 더 까만 얼굴로.. 이미 목에는 카테터가 심어져 있었고, 바로 응급투석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의료진이 내미는 무슨 서류에 서명을 했고, 그와 내가 말을 나눌 겨를도 없이 그의 침대는 응급투석실로 이동을 했다.


나를 돌아다보는 그에게 연신 끄덕이며, 나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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