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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각화 Apr 01. 2024

아득한 어둠 속 그 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06

감사하며 눈을 뜨고 감사하며 눈을 감던 날들

마음에 여유가 있고 거기에 약간의 풍요가 곁들여지면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이 많아져 주변을 둘러보며 눈과 마음에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그것이 풍요인지 여유인지 알지 못한 채 투정도 하고,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삶의 끝. 그 끝으로 자꾸만 몰리는 듯한 상황이 오면 마음의 여유라는 것은 찾을 수 없고 삶이 아주 단조로워진다. 주변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볼 여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로지 나의 가족이 아무 일 없이 오늘 하루 무탈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라게 된다. 그저 다른 바람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눈을 뜨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에 감사한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다낭신의 실체

남편이 응급으로 신장투석을 하는 동안 담당의와 보호자 면담을 진행했다.

유전질환의 어떤 부분을 놓쳐 이렇게 한순간 내몰렸는지 혹시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알면서 나를 바보로 만든 것인지, 나만 바보처럼 '물 많이 마시고, 싱겁게 먹으면 타고난 명만큼 살 수 있다'라는 그 말을 믿고 가볍게 그의 건강관리를 생각했던 것인지 궁금했다. 


담당의의 말을 녹음하듯 들었던 것 같다.


다낭성 신장질환.

이 질환은 ADPKD 제1형과 ADPKD 제2형.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질환이었다.

1형과 2형 모두 다낭신 유전질환이고, 신장에 물혹이 들어차 두 유형 모두 신장의 기능을 소실시키는 질병이다. 두 유형의 차이점은 1형은 급진적인 진행, 2형은 서서히 진행된다는 것. 다낭신임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유형의 유전질환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검사가 있겠으나 비용이 상당해서, 유전자 검사는 거의 권고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가장 빠르게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는 방법은 앞선 선대의 질병 진행을 보면 그 루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그것으로 유형을 파악하고 대처를 하게 된다고 말이다. 여기에서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던 그 말. 남편이 자신이 그럴 거라고 믿고 살았던 그 말. 당연하게 나도 믿고 지켜봤던 그 말. 타고난 명만큼 살 수 있다는 것은 제2형의 다낭신을 말하는 거였다. 그리고, 담당의는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마침표를 찍어주셨다. 이 병의 경우 관리한다 하여 질병의 진행을 막는 건 불가하다고.(당시의 이야기다. 지금은 물혹이 생성되는 시간을 줄여주는 약이 개발되었다. 약값이 아주 비싸서 의료혜택을 받으려면 신장 기능이 간신히 버텨줄 정도일 때 의료비 지원을 받아 약을 먹을 수 있긴 하다. 몇 년 정도 투석을 늦추는지는 아직 명확한 데이터가 없다고 한다. 다만 효과는 확실하다고 한다. 다행히.)


40대 초반을 넘긴 남편이 말기신부전이 된 것은, 급진적으로 진행되는 1형의 다낭신이었기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어디에 탓할 수도 없는 것이, 그도 자신이 1형이니, 2형이니 확인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질병이 진행된 가계도의 흐름을 봐야 하는데,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선대가 그러한 질병이 있었는지, 유전으로 신장질환을 앓았는지, 그 질병으로 돌아가셨는지 이러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에 자신이 당하면서 1형의 다낭신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을 놓고 역으로 추적해 보니, 아버님이 50 못되어 갑자기 돌아가셨고, 큰 누나가 40대 중반에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알고 보니 이게 질병 가계도이다. 사망 사유는 모두 신장질환으로 적히지 않았지만, 어이없게도 이것이 답이었다. 다낭신을 앓는 사람은 뇌에 꽈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니 큰 누나의 사망사유는 신장의 문제가 아닌, 뇌의 문제로 기록이 되어있는 거였다. 그리고 아버님은..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 돌아가셔서 어머님조차도 잘 모르셨다, 사망 원인을.. 6.25 참전 용사셨고, 복부에 총알이 관통된 그런 분으로 몇 년 전에야 자녀들의 요구로 나라에서 인정을 받아 호국원으로 모셨지만, 가족들의 기억 속에 아버님은 그 시대의 탕아셨다... 


남편의 응급투석으로 시댁 쪽의 질병 가계도가 그려졌고, 남편이 투석을 시작하고 2년 뒤에 큰 누나의 큰 자녀가 투석을 시작했다. 큰 조카 나이 40세.. (사실 큰 누나가 다낭신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이때다. 단지 의사선생님이 일찍 사망한 가족들을 기록해보라고 했을 때, 누나도 물려받은 것 같다고 처음엔 유추를 하셨던 것이었고, 조카가 투석을 하기에 이르자 누나도 유전질환자 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경우다.)


담당의와 얘기를 나누는데, 남편이 내게 속인 것도 없었고, 의사 선생님이 뭔가를 잘못 알려준 것도 없었다. 그저 가난했던 과거, 질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과거, 그리고 응급투석으로 가게 된 가장 큰 원인 낭종파열로 극심한 통증과 위급할 만큼 출혈이 있었을 뿐. 


유전질환의 실체가 드러나자 시댁식구들은 각자 알아서 병원을 찾아가 신장 초음파를 했다. 혹시나 물려받았지만 모르고 살아온 건 아닐까 하여. 다행인지 불행인지 6남매 중 큰누나와 남편만 물려받은 경우다. 


이 질환이 흥미(?)로운건 세대를 건너뛴 유전은 없다는 거다. 그러니 내가 아니면 나의 자녀도 아닌 것이 된다. 모두들 안도했을 그 시간들을 남편의 형제들은 거쳤고, 나와 그는 더 비참해지고 더 힘겨워졌다. 우리의 아이들이 떠올라서 말이다.



입원기간

응급으로 투석을 하게 되면서 혈액투석환자가 된 그는 2주간 입원을 하였다. 신장에 잡혔던 낭종이 여러 개 갑자기 파열되어 복부에 출혈이 발생한 상태라 통증도 통증이지만 빈혈 수치가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입원 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간호간병통합병동에 입원이 되어, 다른 사람 손 빌리지 않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며 나 홀로 아이들 케어와 직장 일도 병행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병원에 들렀다가 출근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이어갔다. 


나는 다른 것을 바라볼 새 없이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만을 기도하며, 아주 단조로운 삶 속에 매일 아침 감사하는 마음으로 눈을 떴고, 매일 밤 감사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믿었다, 의료진을. 

그리고 그를. 


당시의 나의 모습을 기억하는 그의 말이 있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병원 침상에 누워 나를 바라보는데 참 낯선 얼굴이 보였다고 한다.

다부진 표정으로 뭐든 해낼 것 같은 웬 여장부인가 했다고.


훗...

위기의 상황에 놓일 때, 사람들마다 나타내는 반응은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취했던 것처럼 멍해져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실의에 빠져 주저하는 사람도 있겠고, 더 나락으로 빠지는 사람도 있겠고, 이것이 바닥이라고 딛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을 거다. 


다행히 나는 아이 넷의 엄마가 되어가면서 조금씩 단단해졌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힘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위기를 대처하는 삶의 방식에 있어, 어머니로부터 단단한 마음가짐을 물려받았던 것 같다. 내가 초등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딸 다섯을 홀로 키워내신 어머니의 삶을 보고 자라 '엄마'가 가진 힘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한계점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 스스로 점점 엄마다워지면서 머리로 알고 있던 것을 마음으로 내려담으며 살아가던 차에 이런 위기에 닥쳤으니, 그 모습이 겉으로 드러났을 것이고, 그의 눈에는 그것이 여장부의 모습으로 낯설게 비쳤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주치의 면담

입원하는 사이 그는 응급으로 투석을 했던 목의 카테터를 쇄골 카테터로 바꿔 좀 더 안정된 투석을 이어가고 있었다. 퇴원을 하고 두 달 이내에 팔목에 오랫동안 사용할 카테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안내를 담당의로부터 듣고 며칠간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곤 면담을 하며 그 생각을 내뱉었다. 아주 호되게 혼났지만...


다행히 2주간의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을 앞두고 주치의 면담이 이뤄졌다.


담당의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들을 주욱 안내를 하신다.

이제 혈액투석 환자이고, 주 3회 혈액투석을 해야 한다고. 신장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노폐물 관리를 그렇게 해주는 거라고. 그동안 그렇게 많이 마시라던 물은 최대한 먹지 말라고. 투석할 때 마신 물들을 제거 해야 하는데 투석 효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환자를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물은 줄여 마셔야 한다고.


담당의 말씀이 귀뒤로 흐르고 어느 정도 마무리 될 때 내 생각을 내뱉었다.

"선생님. 저 신장 두 개잖아요. 제 것 하나 저 사람 주면 안 될까요?"


선생님의 답변이 돌아왔다.

아주 단호하게. 

혼을 내듯이.

감정을 내려놓으라고. 둘러보라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아직 남편은 건장한 40대라고. 지금 그 힘든 2주를 이겨냈지 않냐고. 

이대로 혈액투석을 잘 적응하면 다시 일도 하고,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해낼 거라고. 그리고 기다리자고. 뇌사자 이식 신청을 하고 기다려보자고. 지금 아내분 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황으로 봤을 때 상당히 아깝고, 그걸 떠나 지금은 상황이 아님을 직시하시라고...


그랬다.

그는 담당의 선생님께 집안에 아이가 넷이 있다는 걸 전했던 거다. 아직 두 돌도 지나지 않는 넷째가 있다는 것을. 


힘들게 투석을 위해 세 번이나 카테터 수술을 하는 그가 안타까웠고, 주 3회 투석을 위해 병원을 다녀야 하는 그가 안타까워서 그만 바라보고 생각했던 부족했던 나의 생각을 선생님께서는 몇 마디로 내 생각을 돌려놓으셨다. 그 앞에서도 울지 않던 참았던 눈물이 선생님 앞에 터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의사에게 두 번의 인간다운 토닥임을 받았다.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 인간다운 토닥임. 선생님께 '감사합니다'를 연신 말하고 '그가 이겨낼 수 있겠지요?'라고 되물으니, 남편분의 의지가 강하다는 말씀으로 답을 주셨다.


입원하여 정신없이 아픈 와중에 한 집의 가장으로서 의사 선생님께 자신의 처지를 다 얘기하고 조언을 구했을 그. 그도 그러면서 얼마나 울었을까 싶어 가슴이 아팠다.


그가 입원한 기간 동안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서로를 생각하고 우리를 생각하며 내린 결론들. 그것은 두 글자로 압축된다. 


'사랑' 


부부가 살아감에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남편과 아내의 무게가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돈'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다만 그 '돈'보다 더 우선되는 것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이렇게 내몰리고 나서야 배워나간다. 사랑이라는 것. 아주 강인한 힘. 우리들의 삶에 가장 힘든 2주의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딛고 일어서는 사랑이라는 힘을 그때 제대로 배울 수 있었.


내가 지켜야 하는 것. 

사랑하는 그와 나의 피어나는 꽃송이들. 계속 그 빛을 환하게 비추며 꺼지지 않을 우리들의 촛불들.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


나는 다시 한번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단단한 마음가짐을 갖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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