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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sy Apr 08. 2021

앞만보고 달렸는데 길을 잃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정신이 번쩍 들거나 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때가 있다. 앞만 보며 그저 열심히 걸어왔는데 순간 여기가 어딘지 낯설고 불안이 엄습해 온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는 길 잃은 어린아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엄습해 오는 것에 놀라곤 한다. 프리터족으로 살면서 나는 분명 열심히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었다. 어떤 날은 안간힘을 쓰고 걸어 나갔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청난 무게의 스프링이 날 붙잡고 있어 사실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앞으로 나아갔지만 엄청난 무게의 스프링이 한순간 날 당겨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같은 기분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 실제로도 그럴까? 절대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그런 기분이 드는 것뿐이다. 하지만 기분에 압도당해서 실제로도 그렇다고 착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그땐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처음 시작했을 때와 나는 분명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처음 커피를 배웠을 때만 해도 커피의 초콜릿향이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계속해 향을 맡고 맛을 보며 알 수 있었고, 제과제빵을 처음 배울 때도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의 특징도 정확히 몰랐었다. 홈베이킹을 할 때에는 인터넷에 적혀있는 레시피대로 하다 보니 궁금증조차 가지지 않고 따라 만들기 급급했었다. 


 내가 매장에서 마카롱을 직접 만들 때 일이다. 매장 스타일을 따라 마카롱을 만들어야 했고 빨리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카롱 꼬끄 작업을 일주일 안에 마스터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장님은 2주의 시간을 줬지만 한 주안에 완벽 마스터하겠다는 것은 혼자만의 욕심이었다. 반죽 상태에 따라 머랭 정도에 따라 마카로나쥬 작업에 따라 퍼지는 속도도 다르고 손의 힘을 조금만 더 주어도 덜 주어도 크기가 변한다. 일정한 크기로 나와야 만들었을 때 예쁜데 그 부분이 미숙했다.


 그래서 스스로 한 주 동안 마스터하려고 했으나 안됐기 때문에 속상했다. 사장님이 알려주면서 꼬끄 크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포장상자 때문에 크기가 너무 커도 안 되지만 너무 작아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조언이라고 해준 이야기들 속에 상처가 될 이야기도 처음엔 무조건 흡수했다. 사장님은 이야기를 끝내고 내가 잔소리라고 들을까 봐 그랬는지 “지금 내가 뭐라고 하는 건 신경 쓰지 말라고 레벨업 하는 단계라고 생각해”라고 했다. 


 순간 사장님의 레벨업 단계라고 생각하라는 한마디가 그렇게 위로가 됐다. 사장님이 그렇게 말해줬을 때 물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지적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쓴소리도 달게 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마음 상하는 소리로 마음이 상하면 안 되는 시기라고 다독였다. 그래야 내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타인의 말로 상처 받기 전에 내가 내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기분이 드는 것.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준다는 미안한 마음에 힘들었다. 그냥 잘하고 싶은데 욕심만큼 따라주지 않는 나한테 조금 힘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레벨업 하는 단계‘ 한마디가 눈물이 날 만큼 안심이 됐다. 

 그렇게 2주 동안에도 나는 왔다 갔다 편차를 보이며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하였으나 이내 감을 잡는 시기가 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력이 안정화되고 나에게 주어지는 업무가 늘게 되었고 기뻤다. 공부도, 다이어트도 그렇다. 우리는 흔히 계단식 성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정체 구간이 있는 것이다. 진짜 빠지지 않을 것 같은 살이 어느 순간 빠지고 오르지 않을 것 같은 성적이 어느 날 갑자기 올라가는 그 순간이 있다. 운동도 악기도 그렇다. 내가 악기를 배웠을 때도 그런 경험이 있다. 틀린 부분은 계속 틀리게 됐다. 아무리 연습해도 매일 같은 부분에서 실수를 반복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매일 틀리던 부분에서 실수 없이 연주가 된다. 


 맞다. 지루하고 답답해 보이는 이 정체기의 시간은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과정이다. 스스로 흔들리지 말고 모든 과정 하나하나 집중해야 하는 시기이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레벨업 단계인 것이다. 나만 안 되는 것 같고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과정일 수 있다. 아무리 해도 해도 제자리인 느낌! 그 과정에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분명 성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건 우리는 계속 걸어왔다. 티 나지 않는 발걸음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아껴주고 믿어줘야 한다. 우리가 성장의 계단을 오르는 중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주길 바란다. 아무리 티가 나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린 우리만의 발걸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나와 같이 작은 발걸음으로 여기까지 오며 고단했을 모든 이들에게 “잘해 왔다, 잘하고 있다. 또 잘해 낼 것이다”라는 말 한마디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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