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가치의 판단을 시장에게 맡기는 것

by Yoo

직장 2막이 시작됨을 느꼈던 가장 중요한 균열은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누적된 생각 변화에서 찾아왔습니다. 모든 직장인은 스스로 발전하는 것도 있지만 조직에서 일을 하며 일에 대한 가지관을 만들어 갑니다. 물론 전제 삶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지관이 가장 기본으로 깔려있고요.


제가 생각하던 일을 잘하는 기준은 명확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일을 했을 때 그렇지 않을 때 보다 가치가 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실질적으로 일을 통해 세상과 회사에 아주 조금이라도 무언가 기여를 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고 싶은 업무를 해'라는 말을 들으면 반발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회사관점에서 필요하고 해야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직장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었습니다. 대학교 들어가서부터 줄곳 컨설팅 회사에 취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완벽한 컨설팅'이라는 책을 관물대에 넣고 읽었고, 컨설턴트가 된 선배들은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고 싶었던 컨설팅펌을 인턴으로 경험하고서는 컨설팅이라는 업은 뭔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주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논리를 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의 열망을 놓고 그 문 앞에서 실제로 무언가를 세상에 보이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직장을 선택했습니다.


학창 시절 논문을 쓸 때도 졸업을 위한 요건이나 실적을 채우기 위한 목적의 연구를 지양하였고, 특정 저널을 타깃 하여 개제가 되기 위한 전략을 짜는 것도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지식에 아주아주 작은 분야라도 기여하는 논문을 쓰기를 바랐고 대가들의 논문을 흉내내기도 했습니다. 해당 분야의 한 획을 그은 개념을 제시한 논문을 읽으며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교수님께서는 그런 논문은 대가가 된 다음에 쓰라는 핀잔을 받았지만요.


물론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회사에서 컨설팅회사로 지급되는 금액을 보고 실제로 내가 더 많이 알고 잘한다고 자위할지라도, 컨설팅 인력과 제가 같은 보고서를 쓴다고 했을 때 시간당 단가는 적게는 수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가 차이가 나는 것을 현실로 느꼈습니다. 결국 가치는 시장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가격으로 거래가 된다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봐야 되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더욱 촉발시켰던 선배와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그 선배는 회사를 다니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땅이나 건물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장기 투자가 필요하고 자본이 필요한 부동산 영역의 특성상 나이가 지긋하신 자산가들과 마주칠 기회가 많았다고 합니다. 제가 그런 분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냐고 했을 때, 그 선배는 그들이 필요한 것을 주면 된다는 말과 함께 그분들은 어떤 것이 필요로 할 것 같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기존의 사고방식대로 관계를 맺으려면 그들에게 가치를 줘야 되고 투자영역에서 만났으니 좋은 물건에 대한 정보를 주거나 함께 투자할 자본가들을 연결해 주기를 원하지 않냐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배의 답변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습니다. 단지 그냥 계속 말을 들어주는 것을 그분들은 고마워하고 그것을 통해 관계가 지속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러한 가치에 대한 누적된 생각의 변화는 어느새 일에 대한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관계로 일을 풀어가는 사람들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마음속으로는 정치질한다며 아마 비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나는 수많은 데이터 분석과 수십 장의 정제된 논리로 설득을 하고 상대방은 가볍게 지나가며 만나서 쓱 이야기를 해서 일이 된다면 누가 일을 잘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결국 일이라는 시장은 문제를 풀어내면 그만이고 그것이 시장이 바라는 가치인데, 그렇다면 이러되던 저리 되면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고 공수를 적게들일 수 있다면 아낀 인건비를 통해 오히려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한 가치에 대한 판단을 내가 아니라 시장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변화, 즉 결국 일을 잘한다는 것은 과도한 의미부여 없이 단순하게 나의 내/외부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내면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의 변화가 직장 2막을 인식한 첫 균열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기본적으로 일을 통해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단지 변한 것은 가치라고 하는 것을 기존에는 내가 정의한 규범 안에서 판단했다면 이제는 조금은 더 유연하게 시장관점에서 판단한다는 것을 배운 것뿐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이 변화는 일에 대한 가장 큰 가치관을 흔들었던 사건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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