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출제하는 자와 주어진 문제를 푸는 자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일이 참 쉬웠습니다.
당시 저에게 일의 쉽고 어려움은, 학교를 다니며 생각했던 더하기 빼기보다는 곱하기가 어렵고 사칙연산보다는 미분이 어려운 것처럼 수학적인 연산의 난이도와 같은 감각이었습니다. 때문에 경시대회를 보거나 수능 4점 문제처럼 어떤 문제를 접했을 때 아무리 시간을 많이 주어도 못 풀겠다고 생각이 드는 문제들을 어렵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때문에 회사의 일은 수학적으로는 더하기 빼기와 평균을 구하는 것 정도로 이루어졌다고 느꼈습니다. 무언가 데이터를 분석해서 모델을 만든다고 해도 기껏해야 데이터들을 잘 모아서 평균을 내는 일이었고, 이 평균에 근거해서 표준이나 기준을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를 조사하고 종합해서 만들어 내는 기획도 고차원적인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1차원적으로 현상과 그것을 풀기 위한 직관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풀기 쉬운, 정답이 있는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돈을 내고 문제를 풀었는데 돈을 받고 밤도 안 새우면서 더 쉬운 문제를 푼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쉬운 문제를 풀면서 이렇게 돈을 많이 준다는 것에 놀랐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이고 단지 위치가 학교에서 회사로 달라졌을 뿐인데 별거 안 했는데 계속 돈을 주니 신기했습니다. 한 달 한 달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벌써 또 이렇게 돈을 준다는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회사에서의 어떤 일도 모두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지냈습니다. 누군가 풀어야 할 문제를 가져오면 항상 손을 들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비즈니스케이스를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돈을 내고 보거나 돈을 내고 수업을 들어야 되는데, 공짜로 케이스 스터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풀었던 문제들은 나중에 모아서 논문을 쓰는 재료로 쓸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게 싫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잘 풀어내는 것이 오롯이 나의 성과이자 역량이라고 자연스럽게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소속된 팀은 한국 사회의 구조를 반영하여 고연차 직원과 저 같은 저연차 직원으로 양분되어 있었고 중간의 연차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경우 고연차 직원이 PM을 맡아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저연차 직원들이 푸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저연차 직원들은, 문제는 내가 푸는데 왜 저 사람들이 성과는 저 사람들이 가져가지라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많은 조직은 이로 인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10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당시의 고연차 직원들이 모두 정년을 통해 나가고 저연차 직원들이 과장~차장급으로 회사의 중추가 되면 회사가 많이 바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가면 풀어야 되는 더 많은 문제를 잘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어떤 문제에 대한 실무적 지식은 그것을 푸는 당사자들이 가장 많기에, 보고를 꺼져야 되는 겹겹이 쌓인 사람들이 왜 존재하는가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내가 가장 잘 아니까 그냥 내가 하자는 데로 하면 되는데 라는 마음이었던 것이죠.
10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실제로 저의 위아래 연차가 업무의 중심이 되는 지금 정말 어마어마한 변화와 진보가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변했는데 어쩜 그렇게 조직은 일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할까라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굉장히 수직적인 구조에서 상당히 수평적인 구조가 되었고 그 수평에 가장 중심에 있는데도, 오히려 일의 난이도는 쉬워지기는커녕 훨씬 높아졌습니다.
이렇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문제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과거 조직구조상 사원 대리의 역할은 주어진 문제를 푸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학교에서 누군가가 이미 정의한 시험문제를 풀 듯이, 회사가 내는 문제를 빨리 풀고 많이 풀고 정답을 많이 맞히면 성과가 되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문제를 푸는 사람에서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이 되어보니 완전히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좋은 문제를 정의하고 내주고 풀이과정의 방향까지 제시하며, 단지 나에게 잘 정리된 문제를 푸는데 집중하게 만들어준 팀장 선배 무한한 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오롯이 나의 성과라고 생각했던 것의 많은 부분이 나만의 성과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또 회사의 일이라 함은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문제도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정답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특히 세상의 변화가 빨라지는 지금의 시기에는 어떤 문제를 푸는지가 문제를 잘 푸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함을 더욱 많이 느낍니다. 시간이 얼마 안 지났는데도 어느새 내가 잘못된 문제를 잘 풀고자 노력하는 빈도가 많아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 주어진 문제를 푸는 사람에서 풀어야 할 문제를 정의하고, 풀이과정을 설계하는 문제를 내는 사람으로의 전환의 감각이 찾아옵니다. 이 감각은 때로는 혼란이라는 감정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문제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나에게 문제를 주는 사람이 없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신 있게 풀어간 문제가 풀이 과정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부정당하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점차 자기 확신이 떨어지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이러한 균열은 특히나 그동안 에이스라 불리고 스스로도 그렇다고 생각한 이들에게 특히나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역할의 변화로 인한 균열을 인지하고 적응하는지가 직장 2막의 새로운 성과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