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가 12월부터 시작하는 이유
무기력은 생각은 많은데 행동은 그에 미치지 못할 때 저를 찾아옵니다. 무기력을 벗어나고자 의지/다짐/위로 등을 통해 생각을 누르는 시도를 반복해 왔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잠시 눌렸다가도 빈틈을 보이면 언제나 다시 튀어 올랐습니다. 잠시 눌렀다가 다시 튀어 오른 생각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습니다. 저의 의지는 상당히 작고 지속가능 하지 않음만 반복적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는 시도를 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촉매로 찾은 것이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마감효과였습니다. 약속을 지키려는 성실성과 규칙을 이지기 못하는 학습된 쫄보스러움이 저의 몸을 밀어 움직이게 했습니다.
마감효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작년까지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못했던 제가 이렇게(아직은) 글을 남기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마감효과가 다시 저를 무기력으로 돌려놓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바로 마감효과가 마음 급함으로 바뀌는 순간이 그랬습니다. 마감을 핑계 삼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마감에 쫓겨 에라 모르겠다 대충 마무리하자는 포기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포기의 순간을 한번 맞이하면 마감효과는 부담이 되어 다시 저를 무기력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마감효과가 마음 급함으로 변하는 순간과 조건을 포착하려 했습니다. 많은 경우 원인은 마감에 대한 수준과 시점을 과도하게 설정한 경우였습니다. 당연한 결론은 마감을 타이트하지만 감내할 수 있는 정도로 설정한다였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콘셉트의 세상이 아닌 실존의 세상이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안이 필요했습니다.
'작전'의 유무가 제가 찾은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네라는 작전이 있는 상태로 마감효과를 설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전이 있는 상태로 마감효과를 설정하면 마감이라는 촉매가 작전의 디테일을 마법같이 채웠습니다. 반면에 작전이 없는 생태라면 우왕좌왕한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작전을 세우는 것은 복잡한 생각을 가지런히 하는 것 이기에 차분한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작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될 것 같은 마음' + '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개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될 수 있는 상태가 없는 될 것 같은 마음은 빈번한 실패로 우리를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빈번한 실패는 마음 급함으로 이어지고 무기력으로 우리를 돌아가게 합니다.
가령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목표로 하는 1일 1 포스팅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될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지속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충분한 글감이 준비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강력한 의지로 글감도 찾으면서 글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감은 마음에서 오고 마음이 언제 움직이는 것은 의지로만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글감이라는 작전이 없는 생태라면 1일 1 포스팅을 이어가더라도, 매일 돌아오는 마감시한에 쫓겨 마음 급하게 쓰게 됩니다. 이렇게 쓴 글은 절대로 좋은 글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저의 경우 그동안 무작위로 쌓은 기록에서 5~6가지의 테마와 총 60개 정도의 글감을 정리 한 순간 될 수 있는 생태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매년 새해에 운동을 시작하지만 실패했던 이유도 비슷했습니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다가 시작하면 몸이 준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픕니다. 몇 번은 이 아픈 감정을 의지와 근육이 자란다는 생각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픈 감정은 몸이 주는 신호이기에 의지가 줄어드는 순간 바로 하기 싫음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하기 싫음과 의지의 싸움은 장기적으로는 의지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입니다. 저의 경우 운동을 다시 시작할 때 될 것 같은 마음으로 헬스장이나 PT를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계단 오르기/푸시업 등을 1개월을 하여 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될 것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는 상태를 기다리는 것은 지루합니다. 마음은 저 멀리서 이미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기에, 될 수 있는 상태를 기다리는 것은 비효율로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흥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속이는 쉬운 한 가지 방법은 12월에 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1월에는 될 것 같은 마음이 가장 충만하니까요. 전년도 12월부터 시작되는 다이어리가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요? 될 수 있는 상태를 먼저 만들고 될 것 같음 마음을 갖으라는 친절한 배려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