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기획자의 생존 무기
매일 스스로 일상과 인생을 기획하는 우리입니다. 의도를 가지고 결과를 바라며 매일을 기획합니다. 내가 하는 기획이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는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지향하도록 보이지 않는 손으로 압박합니다. 회사는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지향하도록 평가와 연봉이라는 수단으로 직접적으로 압박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사회가 회사가 원하는 결과를 향해 기획합니다.
회사에서 기획자로 10년을 보냈습니다. 항상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기획했고, 의도에 맞게 결과가 나오기를 소망했습니다. 때때로 결과는 좋은 고과라는 즐거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하나의 프로젝트, 한해 한해의 평가에 최선을 대해 임했습니다. 나름 나쁘지 않은 1년 1년이었습니다. 좋은 기획자로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노력의 결과가 세상에 어떤 기여를 했냐를 돌이켜봤습니다. 구체적으로 내 기획의 결과가 회사에 얼마나 남아 있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아직도 남아있다면 나름의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2~3가지 정도가 남아있었습니다.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전문가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퇴물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난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들었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는데, 이제는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언가라는 혼란이 왔습니다. 결국 기획의 결과는 변화인데 변화를 시키지 못했다면 어떤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의미보다는 결과를 위해 달리라고 매일 압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결과는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결과는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요자의 몫입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는 칠가이(chill guy)를 떠올리며 위안을 삼곤 했습니다. 동시에 내 마음대로 내 기획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의 원인이 관계일지 정치일지 노력일지 모르지만 결국 부족한 실력이지 않을까라는 좌절도 했습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되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는 살겠다는 다짐을 매번 했습니다. 그러나 이 다짐을 생각과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는 진자운동을 하게 됩니다. 결과가 어차피 내 마음대로 안될 수 있다는 생각을 과도하게 하게 되면 어차피 안될 텐대라는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결과가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과도하게 하게 되면 매번 실망이라는 결과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실망을 반복하면 더 이상 기대하는 에너지가 남지 않고 마찬가지로 어차피 안 되는 구나라는 관점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삶에서 가장 신성한 일중 하나인 먹고사는 일을 지속하려면 노력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대부분의 실망과 약간의 희열에서 힘들게 두 가지 정도의 힌트를 찾았습니다.
하나는 의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결과는 세상이 만들지만 의도는 온전히 내 것입니다. 특히 누구나 쉽게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AI의 시대에서 기획자의 차별성은 의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은 결과라도 그 결과를 만들고자 한 의도는 그것을 실제로 가슴깊이 고민하고 만들었던 기획자만의 선물입니다. 주변의 상황을 이해하고 인지하고, 오지랖을 가지고 행하고, 마음의 움직임이 만든 의도가 스토리이자 가치입니다. 한글의 위대함 중 하나는 창제 의도와 목적이 명확히 밝혀진 유일한 문자라는 사실처럼 말이죠.
다른 하나는 결과가 내 것이 아님의 방점을 포기가 아닌 인정이나 이해에 찍는 것입니다. 의도가 있는 행동을 했을 때, 그 의도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훌륭한 글감이 됩니다. 왜냐하면 의도를 갖는다는 것은 애정이나 확신 등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것이 깨졌을 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무언가가 함께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저도 항상 그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려 노력합니다.
아직도 매일 결과와 의도, 허무와 인정 사이의 줄다리기합니다. 아니 평생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의도에 집중하고 결과를 인정하는 것에 기준점을 두고 줄다리기를 할 수 있는 것은 큰 차이였습니다. 감정이라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마음의 문제를, 태도와 기록이라는 행위의 문제로 바꾸어 주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