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소멸(SF적인 미래)

일상에서 생각 줍기 #2

by 이룸

아주 오래 전 인간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언제 야수에게 물려 죽을지, 언제 다른 힘센 집단의 공격을 받게 될지 가늠할 수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또 생각했다. 그리하여 집단의 결속을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고, 큰 힘이 우리를 지탱해 주리라는 믿음을 가슴속에 심었다. 그렇게 신이 탄생했다. 온 마음을 담아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주문을 외우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해서 문화와 예술이 시작되었다.


언제부턴지 인간은 오만해지기 시작했다. 신 없이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불을 이용하고 무기를 사용하게 되자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어 보였다. 강해지면 되었다. 그러면 신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절대강자는 없는 법. 강자 위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짓밟고 올라섰다. 그것이 역사가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숱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더 힘이 세지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인간은 머리를 쥐어짰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발명되었다.


인간 세계 전체로 보면 발전, 또 발전해 가는 듯 보였지만, 개개인의 관점에 서게 되면 천차만별이었다. 그래도 인간 세계를 압축해서 단순화해 보자면, 갈수록 힘센 소수는 많은 걸 가져가고 대다수의 인간은 설 자리가 좁아드는 형국이 되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발명되고, 그리하여 새로운 것들로 교체될수록 인간은 배워야 할 게 많아졌고, 용을 써서 배워도 아는 범위는 지극히 한정된 영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소수가 되는 걸 일찌감치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제, 급기야, 소수의 인간이 생각을 독점하는 세상에 이르고 말았다. 저 먼 옛날 살아남기 위해 생각에 몰두하여 하나로 똘똘 뭉쳤던, 그리하여 번성해 왔던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누가 너한테 생각하랬니? 넌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생각은 내가 할 테니까.”


어느 영화에 나왔던 대사 한 마디가 이 시대를 집약해 보여 주고 있다.


생각은 이제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자 특권이 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소수가 생각해서 만든 것들을 돈을 내고 사서 이용만 하면 되었다.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골치 아프거나 고통스럽거나 슬픈 생각들은 폐기처분해 버렸다.


사람들은 점점 기억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지나간 기억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져서였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 다가오는데 지나간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간 시대에 뒤처지고 마는데. 과거의 기억이라는 것도 필요할 때마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로 바로바로 소비하면 되는 지극히 편리한 세상이 되었는데 말이다.


그에 따라 소수는 다수의 생각을 조종하기가 쉬워졌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무덤덤해지고,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재미있는 세상에만 눈을 빠트리며 사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달이 갈수록 늘어났기 때문이다.


생각의 소멸1000.jpg 2016년 8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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