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준비를 하다 보면 처음에 왜 그리 쫄았던가 좀 허무해지기도 한다. 이민에 성공한 사람이 대부분이지 실패한 사람은 소수라는 걸 알게 되면서다.
미국 이민국이 공개한 통계를 보면 2012~2021 10년간 한국인의 취업이민(EB-1, EB-2, EB-3) 지원 건수는 55,220건이다. 이 중에서 45,258건이 승인됐고 4,577건만 거절됐다. 5,299건은 보류 및 심사 중이다.
승인된 사례가 거절된 사례의 10배쯤 된다.
팩트가 이렇다. 짜잔-
사실 이민은 한국의 명문대 입시나 공무원 시험 경쟁률과는 판이하게 다른 판이다. 이민을 나와는 상관없는 요상한 일로 여겨 그간 시도하는 사람이 적었을 뿐, 성공률이 낮았던 게 절대 아니니 일단 안심하자.
한국인은 왜 이민에 유리한 걸까? 뭐가 더 이쁜 걸까?
한국은 잘 사는 나라, 국민들은 성실하기로 이름 났다. 웬만큼 할 거 하며 살아온 한국인의 능력, 이력이 꽤 좋다는 말이다. 요즘은 영어 잘하는 사람도 많더라. 그러니 다른 나라가 요구하는 이민 자격 조건을 이미 갖추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민자의 다양성 중시 측면에서도 한국인임이 유리할 수 있다.
내가 2017년에 접수한 캐나다 PEI(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주의 사업 이민은 지원자 대부분이 중국인과 인도인, 필리핀인 등이고 한국인은 나 하나였다. 다들 이민 자격을 충족했으니 지원한 것인데, 합격 국가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차원에서 나는 영주권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이민회사에서도 접수 직후 나 혼자 한국인이라는 현지 소식에 ‘이건 거의 된 거나 다름없다’고 슬쩍 흘려줄 정도였다.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이민에 진지한 사람들이 이민 접수를 한다는 점도 승인이 쉬운 이유다.
‘해외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정도의 막연한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진짜 이민 준비를 시작한 사람은 아직 극소수다. 영어 시험, 서류 준비 등 번거로운 과정들을 감수할 결심이 선 사람들이다. 자격이 좀 부족하다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이것저것 더 배우고 갖춰낼 사람이기도 하다.
인생에 진지한 사람,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실패가 더 어려울 수밖에.
마음먹고 한번 준비해보겠단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움직이면 될까?
다행히 예쁘게 정리되어 공개된 이민자료가 이민회사 사이트,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넘쳐난다. 내 상황에 어떤 이민 유형이 적절한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유럽 등 어느 지역에서 그런 유형을 뽑는지,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다 알려주고 있다. 이 편한 세상~
나는 철저하게 파겠다고 캐나다 이민성 사이트를 번역기 써가며 몇 달간 훑느라 고생했다. 뭐든 300%는 해야 직성이 풀리는 까탈스런 성격 탓이다. 각 나라마다 이민성 사이트에 무료로 모든 이민 정보를 제공하니 누구든 볼 수 있다.
이민 유형 중에는 ‘유학(후 취업) 이민’처럼 최종 승인이 몇 달 안에 끝나는 비교적 간단한 유형도 있고, ‘사업 이민’인 내 경우처럼 2년쯤 걸리며 상대적으로 복잡한 유형도 있다. 그 외에도 ‘투자 이민’, ‘가족 초청 이민’ 등이 있다. 이민 4대 천황이다.
간단한 유형은 혼자서 준비할 만도 하지만, 복잡한 유형은 이민회사와 함께면 훨씬 편하고 덜 떨린다.
내 경우처럼 복잡한 유형은 2017년 당시 600만 원의 수수료가 들었다. 싸지는 않다. 그래도 서류 준비부터 승인, 정착 등 2년간 필요한 도움이 다 포함된 비용이다. 간단한 유형은 훨씬 적은 비용으로 이민회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 능력 있는 이민회사를 고르려면
손품, 발품을 좀 팔아야 한다. 인터넷 등으로 최대한 여러 곳을 비교하고 추려낸 뒤 다 돌며 상담을 받아보자.
누구나 말하는 흔한 유형만 알고 있는 회사라면 거르는 게 낫다. 이민 유형은 매우 다양하고 자주 바뀌기 때문에 대표적 유형만 알고 있거나 업데이트가 늦는 곳은 불성실한 곳이다. 블루오션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이민 유형을 다루고 있는 곳을 찾자. 그 성공 사례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똑같은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있어도 그 안에서 노력, 열정, 수준이 천차만별인 게 세상 이치.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라고 해서 처음 만난 전문가 말만 덥썩 믿고 ‘아이고 선생님-’할 필요는 없다.
그의 한계가 내 이민 인생의 한계가 될 수 있다. 위험하다.
내 경우도 위험할 뻔했다.
상담받은 대부분의 이민회사가 하나같이 ‘유학 후 취업 이민’을 권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써먹기 힘든 내 이력, 만랩 국어 글쓰기 강사의 비애였다. 이십 년을 일했지만 ‘공부부터 취업까지 모든 걸 다시 시작하시오, 리셋!’을 요구받은 거다.
나는 거부했다. 반사-
내가 그러려고 번역기 써가며 폭풍 이민 검색을 몇 달이나 했던가. 인내심을 갖고 이민회사들을 더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한 곳에서 내가 꿈꾸던 ‘사업 이민’을 제안했다.
“월급제 학원강사가 아니라 비율제 학원강사셨으니까, 이걸 학원과 동업을 한 것으로 잘 꾸며볼까요? 보조 선생님들이 있으셨으니 회사의 팀장급 이상 관리자로 간주할 수도 있겠네요. ‘사업 이민’ 지원이 가능할 수도 있어요.”
예쓰! 듣고 싶던 소리, 내게 필요했던 정보였다. 이런 걸 원했던 거다! 나도 내심 사업 이민에 마음을 두고 있던 터였다. 술도 안 마시는 내가 그날은 샴페인과 케이크를 두 개나 사서 신나게 축배를 들고, 뻗었다.
유형을 확실히 정했으니 서류를 만들기 시작했다. 쉬운 이민 유형은 일주일만에 준비되기도 하고, 복잡한 경우는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
이민에 필요한 서류는 다음과 같다.
-이민지원서에 쓰는 기본사항 : 출생연월일, 이름, 학력, 일해온 모든 경력들(이력서), 출입국 기록들, 자산 등
-증명서류들 : 출생증명서나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신분 서류, 여권 및 출입국증명서, 허용되는 몇몇 영어시험의 성적표, 학력 증빙서류, 경력 증빙서류들, 자산 증빙서류들, 6개월 내의 사진 등등
-선량한 시민이었다는 증거가 될 범죄경력회보서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는 걸 입증할 건강검진서
-이민유형별로 추가되는 서류들: 이민 갈 나라에서 받은 고용허가서(잡 오퍼, 취업 이민용), 사업계획서(사업 이민용) 등등
개인이 아닌 가족이 가는 것이면 신청자 본인 외의 가족의 신분 서류나 자산 서류, 범죄 경력회보서 등도 준비한다.
겁이 나니 후퇴하기보다 겁이 나도 도전해봐야 뭐라도 얻는다. 다들 어렵다던 캐나다 사업이민에 도전해서 쉽게 영주권을 받은 내 경우도 있다. 다행히 정보는 많고 도와줄 곳도 있는 세상이다. 웬만큼 성실히 산 한국인의 이민 성공률은 꽤 높은 편임을 기억하며 움직여 볼 만하다. 으쌰으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