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차마 남의 고통을 볼 수 없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고 있다. 맹자(孟子)의 성선설이 바로 이 얘기다. 맹자는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아이를 보는 순간 어느 누구나 ‘아이고!’라는 탄식과 함께 몸이 움직여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쳐나간다고 설명하면서 누구한테 칭찬받으려고 했다거나 그 부모에게 보상을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인간본성이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차마 볼 수 없는 고통’을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그것이 바로 동정심, 즉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고, 이로부터 인간이라면 짐승과 달리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위의 얘기는 맹자 자신의 심리적 추론에 불과한 것이고, 현실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눈만 껌벅거리거나 무심코 지나치는 야박한 놈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비정하게 지나친 놈들에게도 언젠가 자기가 그런 일을 당할 때거나 꿈속에서라도 우물 속에 들어가 죽은 아이귀신이 나타난다면 자다가도 서늘해지며 일어날 것이다. 맹자가 노린 심리적 효과는 여기에 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구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한 일이고, 그것이 바로 양심(良心)이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이 동정심의 표현이고,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다들 ‘차마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수 없는’ 심정을 공감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다른 짐승을 잡아먹어야 하는 맹수들이나 얼어 죽어 가지에서 떨어지는 새조차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국 인간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애처로움을 공감하고 사람답게 도와주고 도움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동시에 인간만이 자기 자신에게도 동정심을 갖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동정을 구하는 비굴함의 원천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러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만이 가진 공감하는 동정심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비루한 삶을 타인에게 구차하게 연명하는 비굴함으로 전락시킬 것인가? 최소한 조그만 새조차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가혹한 본능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면 자존(自尊)을 위해서라도 비루하고 비굴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바로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이 염치(廉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