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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May 20. 2022

단상 13

1.

상징과 초현실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 글을 쓰기 전 세 가지 사조를 먼저 익혀두라고 L은 내게 말했다. 그 세 가지가 지금으로선 최선이 될 수 있다고, 가능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읽고 곱씹어보라고 번번이 당부했다. 그 지점에서 나는 당신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생각나는 날에는 아직 떼어내지 못한 엽서를 하릴없이 보게 되는 거, 눈이 한 번 깜빡대기 전에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당신과 나눴던 어느 날의 대화로 맥락이 이어지는 거, 그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는 거. 그러니까 내게 글은 세상이다. 세상이기 이전에 당신이었다.      

나는 없는 걸 만들어내기에는 너무도 미숙한 처지라 온몸을 둘러쌌던 당신을, 우리를 경황없이 끌어간 시간을 적고는 했다. 그렇게 매번 우리의 결말과 비슷한 끝을 마주하게 될 적마다 뭐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무력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 날이면 부러 내 손으로 당신을 매몰차게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당신을 생각하면서도 붙잡지 않은 것이, 나를 압도했던 현실에 당신까지 끌어들였던 과거가 나를 무너지게 만드는 이유가 아니라고 수없이 되뇌어야 했다.     


2. 

사람은 그렇다고 믿는 것을 믿게 된다고 한다. 할 수 있다. 잊을 수 있다. 당신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다 그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날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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