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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Sep 04. 2020

다른 사람에게서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배신은 처음 보는 사람보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한다.


“내가 그동안 해준 게 얼만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흔히 배신을 당할 때면 우리가 상대에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마음을 후벼 파는 배신을 살면서 한 번쯤은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정말 가까이 지내던 친구에게서, 심지어는 가족에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뭔가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우리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그런데 배신을 당하면 왜 그토록 기분이 나쁘고 우울해지는 걸까? 


배신 : 친밀한 관계에서 신뢰와 충정을 저버리는 행위, 서로의 신의를 무시하고 음모를 꾀하는 등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 - 워런 존스, 미국 심리학자


배신의 정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배신의 주체는 항상 ‘친밀한 관계’이거나, 서로의 ‘신의’ 즉, 믿음을 깨버린다. 그토록 믿었던 사람인데 사기를 치고 도망간다던가, 좋아하는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던가 하는 일들 말이다. 사실 처음 보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는 것도 정말 열 받는데, 믿었던 사람이 그런다면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테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그거 아는가? 사실 배신이라는 게 상대는 의도하지도 않았고,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상대의 ‘배신’이라는 행위도 우리 자신이 작위적으로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배신당할 때 어떤 생각을 할까? 혹시 이렇게 생각하진 않는가?


 ‘나는 이렇게 해줬는데 이 정도도 못 해줘? 배신이야!’
‘내가 이렇게 힘든데 왜 아무 위로도 안 해주지? 배신이야!’


이번에는 반대로 이런 질문도 건네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 입장을 우선으로 생각하느라 간과하는 부분이다. 


‘내가 이토록 힘든데.. 혹시 지금 상대도 힘들진 않을까?’
‘이런 경험을 먼저 겪고 있던 상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 배신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본래 남이 해준 것보다 내가 해준 걸 더 생각하고, 남의 상황보다는 내 상황을 먼저 생각한다. 따라서 내 상황에 상대가 응해주지 않으면 지레짐작으로 ‘괘씸해!’라며 배신이라고 섣불리 정의 내려 버릴 수도 있다. 


필자의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겠다. 난 평소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을 꿈꾸며 뭔가 활동할 걸 찾아다닌다. 그 덕에 주변 사람들과 일상적인 연락은 거의 주고받지 않는다. 나도, 상대도 서로의 성장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배려해주기 위해서다. (대신 일 년에 두 번 세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연락한다. 명절이나 정말 힘들거나 기쁠 때. 그때가 서로의 근황을 묻고, 축하해 주거나 위로해 주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던 내가 배신자가 된 적이 있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있었는데, 둘 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연락이 많이 줄었다. 먼저 직장인이 됐던 나는 초반 위로를 구했던 게 마음에 걸려 어느 순간부터 괜히 징징되기 싫어 오히려 연락을 참고 끙끙 앓았던 적이 있었다. 주말 출근을 강제하는 과중한 업무, 이겨내서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감, 다 포기해버리고 울고 싶은 심정 등등… ‘친구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결과랄까. 문제는 상대는 그게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 친구는 내게 위로받길 원했고, 나는 친구를 피한 셈이 됐다. 더군다나, 차라리 집중해서 이겨내겠다며 일, 강의, 모임,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친구 입장에선 ‘친구를 위해 만날 시간도 안 내는 배신자’가 돼버렸다. 명절 인사를 보냈을 때, 돌아온 싸늘한 장문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당시에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절교 문자에 아무런 해명도, 아무런 설득도 시도하지 못했던 심정이 떠오른다. (친구에게 터놓고 쏟아붓지 못한 말이지만, 당시 나는 그 친구의 SNS를 보며 삶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겉보기에 워라밸이 보장되고, 자기 계발을 맘 놓고 할 수 있던 모습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잠을 줄여야만 했고, 주말 시간도 쪼개야 했던 나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이 사례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배신’이 정말 악의적인 배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오히려 반대로 상대도 지금 매우 힘들어하는 상태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필히 자신만 보기보다는, 상대도 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먼저 배려하면 배신을 줄일 수 있다

 

심리 집단인 노우유어셀프는 <심리를 처방합니다>에서 배신을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소통’이다. 말 그대로 상대에게 ‘배신’을 느끼고 관계를 끊기 전에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먼저 그 친구에게 다가가서 힘든 점을 공유하고 위로를 나눴으면 이 상황까지는 안 왔을 수도 있다. 오히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더 돈독한 사이가 됐을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에게 힘든 일 없느냐는 한마디를 물어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어쩌면 그 친구 말대로 나는 '성장'에 목이 매여서 내 앞길만 생각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배신을 대처하는 두 번째 방법으로는 지나치게 높은 기대감을 내려놓는 것이다. 배신은 ‘실망감’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실망감은 ‘높은 기대’에서부터 온다. ‘이 친구는 내가 해준 게 있기 때문에 나한테 이 정도는 해줘야 해!’와 같은 기대감. 문제는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행동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해준 것에 대한 보상기제로 높은 기대를 걸기에 최적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들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배신을 겪는다. 그러나 알고 보면, 상대는 악의적으로든 고의적으로든 배신이란 걸 생각지도 못했을 경우가 분명 있다. 이는 우리가 상대와 소통이 원활하다면(적어도 힘들 때) 어느 정도 피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너무 높은 기대감도 버리면 금상첨화다. 상대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100% 생각이나 성향이 같을 수는 없다. 만약 상대는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이해받으려고만 한다면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나처럼 간혹 생각나는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랬으면 어땠을까'하는 후회를 연거푸 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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