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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Mar 15. 2024

쓰기의 시간이 오기까지

전적으로 매일의 글쓰기 덕분이라 생각한다.

써야 할 이유 없이 쓰기로 결정했다면, 그간 마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재능도 딱히 없는 내가 무슨 글이냐고 고개를 저었던 시간은 살아오는 동안 계속 진행 중이다. 쓴 시간은 고작 2년 쓰지 않았던 시간은 47년. 어느 날 문득 우연히 만난 어떤 문장 때문에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면, 거짓말일까? 기억을 더듬어 사실에 가까운 이유를 써보자면,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앙드레지드의 좁은문을 읽었던 91년 중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부터 자리 잡았을 테다. 그  최초의 독서가 신기하리만큼 즐거웠고, 이후로 책과 사랑에 빠졌으니, 읽기와 쓰기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독서의 시작은 쓰기의 씨앗이 된 샘이다.  심어진 열망에 싹이 나와 그것으로 꽃을 피우기까지 47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왜냐고 묻는 다면 이유는 없다. 다만 그리 되었을 뿐이라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다.  리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데 마한 이유가 없듯이. 그냥 그리 되었다.


허나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물의 양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듯이 내 결심에도 필요한 자극이 정해져 있었나 보다. 차곡차곡 쌓여있던 쓰기의 말들 중 마지막 한 문장을 만나고 마침내 필요충분조건이 채워졌다. 없이 다정하고 그윽한 문장들로  몇 번이고 내 마음을 흔들었던 김연수 작가님의 청춘의 문장들 만나고 이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후 다정한 문장들이 자꾸 찾아와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지난 팔 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썼다.(중략)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지난 팔 년 사이에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돼갔다는 점이다.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아주 서서히, 하지만 지나고 보니 너무도 분명하게, 소설가로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는 좀 나은 인간이 됐다. 그건 전적으로 매일의 글쓰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김연수>


세상 그 어떤 문장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마침내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기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망막했던 나에게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글쓰는 일로 이룰 수 있는 어떤 일들보다 귀하고 근사한 일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감히 쓰기로 했다. 모두가 작가가 되고 싶은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이란 종이 위에 내 문장도 채워보겠다 다짐했다. 그러니 글쓰기로 한 일은 순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다. 나를 위한 욕심이다.


유능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내려놓았다. 글로써 무언가 이뤄보겠다는 소망도 그리 크지 않다.  글로 이루고자 하는 사회적 열망은 너무나 작은 것이라 보잘것없지만, 내가 글로서 내 안에서 이루고자 하는 소망은 구만큼 크다. 마침내 소망하는 사람이 되는 일-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 가진 것이 적어도 만족하고 행복할 줄 아는 사람, 마음에 있는 것을 꾸미지 않고 소박한 글로 써낼 수 있는 사람. 언제나 걷고 또 걸으며 땅을 이루는 것들과 가까이 사는 사람, 지구로 완전히 도착하지 못해 세상을 온통 푸르게 만드는 빛을 사랑하고 흰 구름과 지는 노을과 그 밖에 하늘을 수놓는 대부분의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  이루고 싶은 것은 대략 이러하다. 닿으래야 닿을 수 없을 만큼 큰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니 어찌 지구만큼 크다 말할지 않을 수 있을까.


나무를 심는 사람의 마음으로 쓰겠다. 황무지에 한그루 한그루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을 이루게 한 양치기처럼. 일의 글을 심어보겠다. 어떤 나무는 시들고 어떤 나무는 단단한 뿌리를 내려 거목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매일 쓰는 나의 글도 죽거나 사라질 테지만, 분명 어떤 글은 거목처럼 자라나 마침내 내 안에서 이루고자 했던 소망에 닿아  작가님처럼 전적으로 매일의 쓰기 덕분이라는 문장을 내 손으로 적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만나길 고대하며 쓰는 일을 놓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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