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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Sep 06. 2024

박연준 작가님, 함께 걷고 싶습니다.

박연준 작가님. " 나는 바다로 흐르는 강물처럼 자유롭게, 바람의 추동으로 나아가고 싶다"라고 하셨지요. 작가님의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이번만큼 공감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요한 포옹> 69쪽 중간쯤에 나온 이 문장을 읽자마자 작가님이 저와 닮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어요. 동지를 만난 기분으로 혼자서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내 생각을 그대로 써 놓았을까. 하는 마음은 세상 구석구석 나와 비슷한 마음을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하는 안심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인생의 많은 부분이 정답 없이 흘러갑니다. 헌데 사람들은 정답을 원하지요.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정답을 갈구해요. 글솜씨가 제법 있고 나름대로 자기 삶에 만족하며, 세상 사람들 역시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에 확신하는 몇몇 사람들은 그런 정답에 관한 글을 쓰고 책을 내더군요. 저 역시 강물처럼 바람처럼 나아가고 싶은 바람이 있었지만, 그건  세상에 어울릴만한 삶이 아닌 것 같았어요. 해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놓인 여러 권의 자기 계발서를 탐독했습니다. 인생의 정답을 알려줄 것만 같은 화려한 광고문구에 속았냐고요? 아니라고는 말씀 못 드리죠. 본디 책을 경애했던 사람은 책에 삶의 모든 비밀이 쓰여있을 거라 믿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믿음으로 그분들의 책을 읽었고 몇 가지 관심 있는 충고에 따르며 몇 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삶은 자꾸만 새로운 문제를 내더군요. 정답을 찾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시간은 자기 속도대로 흘러갔고 저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정답을 찾아 헤맸던 몇 년의 시간은 이제 과거가 되었고 지금은 스무 살 무렵, 감명 깊게 읽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하는 중년이 되었답니다.


어느 하루는 구름을 발견하며 아침을 시작해 구름을 보내며 밤을 맞이하고 싶다. 구름은 균형을 몰라도 아름답다. 각자의  속도로 흐르다 사라진다. 의무와 책임과 걱정에서 놓여나 창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낭비하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 <중략> 어느 하루는 남이란 가운을 입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느끼며 휘청휘청 걷고 싶다. 뜬 구름처럼, 완벽한 하루일 게 틀림없다. <고요한 포옹, 박연준>


작가님과 함께 휘청휘청 걷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 저와 함께 걸으시겠어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느끼며 걷는 걸음은 분명 뜬 구름 같을 겁니다. 우리를 이 지구에 묶어 놓은 중력마저도 벗어났을 테니 말이죠. 완벽한 자유는 허상일 뿐이란 비관적인 생각으로 죽기 전까지 자유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상태라 단정 짓기도 했어요. 그런데 작가님과 같은 시인들은 어째서인지 완전한 자유를 소지품처럼 가지고 다니시더군요. 해서 자유로운 삶에 대해 저는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결론을 내리거나 답을 찾겠다기보다는 헤매보겠다는 겁니다. 더 많이 헤매고 길을 잃어보겠다는 용기 같은 거죠. 우선은 아침이 찾아올 무렵 깨어 태양이 이곳을 완전히 정복하기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그렇게 경험하려고요. 그것이 낭비하는 삶일지라도 저 역시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미디어 영상을 보며 시간을 버릴 때는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은 몸서리칠 만큼 무서워하는 인간의 이중성이 이토록 어리석어 보인적이 없네요. 얼마 전 저는 유튜브 앱을 삭제했습니다. 보지도 않고 넘기는 숏츠영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요. 제 시간을 잡아먹는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서 저를 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작가님과 함께 휘청거리며 걷거나, 구름을 발견하고 별을 바라보며 낭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작가님. 당신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던 남자 주인공과 결이 같은 사람이 아닌가요? 저는 당신의 책 <고요한 포옹>을 읽으며 주인공 콜필드가 몇 번이나 떠올랐답니다. 시인은 자기 안에 콜필드를 영원히 죽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제 안의 콜필드는 어느 담벼락 아래 파리보다도 작은 크기로 멈춰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 저는 그를 눌러대기만 했거든요. 뜬구름 같은 생각 썩어빠진 정신머리라고 호되게 야단도 치면서요. 해서, 저는 테일러주의의를 칭송하던 교육시스템에 완벽히 적응한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성실한 어른이 되고 말았습니다. 헌데 시간이, 흐름이, 자연의 기운이 자꾸만 콜필드를 깨우려고 합니다. 키우려고 합니다. 저는 두려워 그것을 자꾸만 멈추게 하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여기에 당신의 문장을 쓰고 나도 당신과 같은 마음임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내 안의 콜필드는 그것으로 안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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