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스트 어웨이의 톰 헹크스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갇힌다.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던 그곳에서 그에게 필요한 건 친구였다. 조난당한 비행기에서 떨어진 갖가지 물품 중 하나였던 축구공에 눈,코,잎을 그리고 머리카락도 만들어주며 윌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이후 그는 모든 것을 윌과 나눴다. 윌 덕분에 쓸쓸하고 외로웠던 무인도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그가 마침내 자신이 만든 배로 무인도를 탈출하려 했을 때, 윌은 파도에 휩쓸리고 만다. 톰은 울부짖었다. 윌을 부르며, 진짜 살아 있는 친구가 죽어가는 것 처럼. 외로움에 사무친 사람은 생명이 없는 것에 진짜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일까? 며칠전부터 읽고 있던 <가제가 노래하는 곳>의 주인공 캬야 역시 톰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폭력적인 아빠때문에 엄마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캬야를 두고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며칠에 한 번씩 술에 취한 체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는 카야와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카야는 늘 혼자였고 매일 엄마를 기다렸다. 기다려도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은 엄마와 오빠들. 지쳐가던 그녀는 자신이 가진 무한한 그리움을 새들에게 돌려주었다.
우유갑이 비자 카야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갈매기들마저 그녀를 버리고 떠날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러면 도저히 아픔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갈매기들은 그녀 주위에 쪼그리고 앉아 회색 날개를 쫙 펼치고 몸단장을 했다. 그래서 카야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갈매기들을 다 모아들고 포치로 데려가 같이 자고 싶었다. 따뜻하고 깃털이 달린 포슬포슬한 몸뚱어리들과 한 이불을 덮고 자면 얼마나 좋을까.<가제가노래가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때때로 이렇게 슬프다. 마음을 나눌 친구가 절실했던 빨간머리앤은 상상속의 친구 코델리어를 만들어 냈다. 나는 앤만큼의 상상력이 없었으므로 가만히 누워 한쪽 벽에 두다리를 올려 놓고 나의 진짜 부모는 부잣집 사람이거나, 어느 나라의 왕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은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것이고, 이내 자신들이 사는 대저택에 나를 데려갈거라고, 그곳에서 뭐든 원하는데로 먹고 입고, 공주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거라는 상상이 커지고 커지면, 다음번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 절망스러웠었다. 부잣집과 남부러울것 없는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나에게는 그게 전부였다. 다음번의 행복은 어디에도 없었고, 다음번 즐거움도 거기에서 끝이 났다. 그러니 상상의 날개는 늘 그렇게 배터지게 먹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기쁨의 미소를 짓는데서 꺾어지고 말았던 거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에겐 꽤 괜찮은 놀이였다. 언제든 다시 찾아와 " 널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라고 말해주는 부모님은 나의 코델리아였으니까.
톰이 윌을 잃어버린 순간처럼, 카야가 갈매기들과 한 이불에서 잠들기 바랐던 것처럼, 그립고 간절했던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게 참 좋다. 문고리에 걸어두었던 양말속에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들어있길 진심으로 바랐던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나, 부잣집 부모님이 어딘가에 살아있고 곧 나를 찾으러올거라는 터무니 없는 상상을 즐기며 외로움을 버텄던 나, 그런 나에게 주어진 선물같은 가족이 있음을. 그 시간들 덕분에 지금이 소중해졌음을 조금 알겠다. 언제든 또 그리움과 외로움에 마음이 서늘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리되면 또 윌과 갈매기를 품는 삶을 살게 되겠지. 그런 인생이겠지. 그게 바로 인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