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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동이맘 Jun 20. 2024

결혼식은 2번은 못하겠다 - 마지막

누구를 위하여 식을 올리는가?

 

 앞서 말했다시피 뜬금없는 나의 결혼선언에 우리 집은 난리도 아니었다. 신랑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반대를 했기보다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결혼을 해치우는 딸이 못내 아쉽고 서운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빠는 내 결혼준비할 때 총 3번을 우셨는데, 이래저래 심난하고 나 혼자 힘으로 결혼준비를 하니 그 모습도 못내 섭섭해서 눈물이 나셨다고 했다. 또 결혼 전에 예비사위랑 자주 만나고 연락도 하면서 정(?)을 쌓고 싶어 하셨는데 중간에서 내가 연락을 차단하고 못 만나게 하고 할 이야기는 꼭 나를 거치게 했더니 심통이 나셨는지 아빠의 마음을 풀어들이는데 애를 썼다. 아빠는 자식인 아들과도 연락을 안 하면서 왜 사위랑 그렇게 연락을 하고 싶은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결혼준비에 상당한 돈이 들지만 예단 X 예물 X 폐백 X 최소한만 하자고 이미 합의를 했기에 따로 아빠에게 요청드릴 것도 없었다. 알아서 척척 결혼준비를 하고 있으면 뿌듯해하셔야 하지 않나?


 결혼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가족들의 서운해하는 마음까지 챙기려니 몸이 하나인 것이 저주스러웠다. 2개라면 좀 편했을까?


 예단비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에 누구보다 안심하셨던 분이 엄마였다. 신혼집도 도움 없이 우리끼리 진행하기로 해서 엄마는 한시름 걱정을 놓으셨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에게 천만 원짜리 다이아반지를 받아오라고 난리가 났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예물은 해야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한동안 '예물 없인 시집보낼 수 없다'로 바뀐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하고 가슴이 꽉 막혀왔다.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결혼과 부모님이 생각하는 결혼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사랑하는 두 남녀가 만나 모두의 축복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부모님에게는 집안과 집안이 만나 품위와 품격, 무엇보다 지금까지 뿌려놓은 경조사비를 걷어들이는 아주 중요한 행사였던 것이다. 그 행사에 조그마한 흠집도 나선 안 되는 것이다.

 

 생각과는 다르게 점점 나의 결혼`식`은 보여주기``이 돼버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차지 않기 시작했다. 결혼날짜도 일요일, 시간도 첫 타임, 누가 오겠냐며 노발대발하셨는데 이미 잡은 거 돌릴 수도 없고 그저 묵묵히 찡찡댐을 들어주고 풀어주고 녹여줬다.


 그렇게 내 결혼하는 날이 다가왔고 걱정을 한가득 품고 웨딩드레스를 입었는데 우습게도 그 모든 투덜댐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그저 우스갯소리로 전락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도 아주 만족스러운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예단을 얼마나 해오든 천만 원짜리 다이아 예물을 받았든 못 받았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우린 완벽한 결혼을 했으니까!


 잠실에서 결혼을 했는데, 일요일 첫 타임이라 주차장은 한산했고 단독 연회장을 썼기에 북적이지 않고 여유로웠다. 12층 뷰였는데 탁 틔인 전망이 좋았다며 칭찬일색이었으며,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에 하객들은 만족했다. 보통 결혼식 뷔페는 2번 먹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얼른 빠져나가야 겨우 나갈 수 있는데, 한산하고 음식은 충분하니 다들 여유롭게 드시고  이야기를 나누셨다. 도리어 우리 부부가 먼저 연회장을 빠져나올 정도였다.


 결혼식의 꽃은 '신부'라고 하던데 정말 꽃은 꽃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신부대기실에 앉아 사진을 찍고 인사를 했다. 마치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나고 그런 나를 구경하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의 할 일은 그저 웃고 인사하고 사진 찍는 화려한 공작새가 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막상 아빠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에 들어서니 그 재야 진짜 결혼을 하는 '신부'라는 기분이 들었다. 졸려, 힘들어, 배고파, 언제 끝나! 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또 외치던 내가 진짜 '신부'가 되는 순간이었다.

 주례를 들으며 지루했고 축가를 들을 땐 즐겁고 행복했으며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땐 눈물이 났다.

 사진을 찍고 드레스를 벗고 2부 드레스로 갈아입은 후 연회장으로 향했다. 손님들과 인사하고 친척들, 시댁어르신, 하객으로 와주신 고마우신 분들, 친구들과 지인들. 그곳에서도 나는 새장 속에 화려한 공작새였다.

 나만 빼고 다들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배고파서 밥을 먹고 싶었지만 드레스 때문에 그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먹을 수 없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것은 신랑과 어머님, 부모님들뿐이었지만 난 밥도 먹을 수 없어 서글프고 속상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예식홀 직원분들의 립서비스로 우리 엄마와 아빠의 어깨가 뿜뿜 했더란다. 그곳의 식비가 7만 원이라며 직원분들이 말하고 다녔는데 당시에 결혼식 축의금으로 보통 5만 원 정도 하던 때였다. 그런데 축의금보다 식비가 그 이상이라니 사람들이 넌지시 돈을 더 주더란다.

 내가 둘째라서 첫째인 오빠결혼식보단 하객이 덜 오셨는데 다녀오신 분들의 말씀을 듣고 땅을 치고 후회하더라며 엄마가 아주 고소해하셨다. 어머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결혼식은 한동안 계속 회자가 되었고 엄마 지인 결혼식에 다녀오면 어깨가 올라가고 콧대가 높아지셨다.

 뭐, 예식장에서 주는 모든 서비스를 연회장에 올인했으니...


 우습게도 결혼을 올리기 전에 성에 안 차던 그 모든 것들이 엄마와 아빠는 막상 결혼을 올리니 대만족으로 노선이 바뀌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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