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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Oct 13. 2022

일당 3만 원의 함정(2)


첫 방청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 알게 된 점은 우리는 즐기러 온 방청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열린 음악회나 개그 콘서트, 아이돌이 나오는 공개방송처럼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방청 아르바이트생이 없어도 관람을 원하는 진짜 방청객이 모이지만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방청객을 모집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의 경우 방청 아르바이트생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마치 결혼식에 하객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방청 아르바이트를 신청했을 때는 가짜지만 진짜처럼 아니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연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녹화가 시작되기 전 PD로 보이는 분이 우리에게 소리치셨다.

“자~~ 여러분 제가 손을 이렇게 하면 웃으시고 이렇게 하면 멈추세요. 그리고 무대만 보세요. 카메라 보시면 안 돼요.”

'응? 보다가 재미있으면 웃는 거 아닌가? 손짓하면 웃으라고?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바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구나.'


녹화가 시작되고 우리는 앞에 서 있는 PD의 수신호에 맞춰 웃음 연기를 시작했다. 웃음소리가 작다 싶으면 PD가 연신 손을 휘젓어 목청껏 웃음소리를 내라 신호를 주었고 만족스러울 때까지 멈추라는 신호는 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를 내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더 힘든 것은 NG가 났을 때였다. 단물 빠진 껌을 다시 씹는 기분이랄까. 유효기간이 지난 웃음 코드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연기력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 방청객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이지 않은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웃음을 연기하다 보면 얼굴 근육에 경련이 올 지경이 되곤 했다. 그럼에도 열심히 웃음을 연기했던 건 투철한 직업의식이 아닌 혹시라도 내게 올지 모를 행운(?)때문이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에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 가사처럼 스쳐 지나가는 카메라에 내 얼굴이 잡힐지도 모르니까.





그 당시 내가 주로 신청했던 것은 실제 녹화를 보면서 하는 방청 아르바이트였는데 아주 드물게 이미 녹화된 프로그램을 보며 웃음소리만 따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웃음소리 알바'라고 이름 붙인 이 아르바이트는 모집 공지가 자주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반 방청 아르바이트에 비해 모집 인원이 적어 신청이 어려웠다. 진짜 꿀 알바는 바로 이 '웃음소리 알바'였다. '웃음소리 알바'는 이미 편집이 마무리되어 실제 방영될 프로그램을 작은 영화관 같은 방에서 시청하며 PD의 수신호에 맞춰 웃는 알바로 시간이 방청 알바에 비해 짧았다. 게다가 NG도 없어서 웃기도 쉬웠다. 하지만 당시 '웃음소리 알바'를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이 적었던 탓에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웃음소리 알바'를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은 지금으로 치면 1박 2일이나 신서유기처럼 야외에서 촬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당시에는 막 '예능'이라는 장르가 시작되고 있던 시기라 대부분의 예능은 세트장에서 촬영이 되었다. '웃음소리 알바'에서 유일한 애로사항이라면 참여하는 인원이 적다 보니 일당백의 웃음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미 몇 번의 방청 알바로 인해 억지웃음에 요령이 생긴 나에게는 '웃음소리 알바'쯤이야. 그 당시 나에게 단순노동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웃어야 하는 순간조차 다른 이가 결정해 주는 방청 아르바이트는 내가 원하던 진정한 단순노동이었다. 설마 이게 나의 천직??


그러던 어느 날 '일당 3만 원의 함정'을 알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시작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늘 그렇듯 오후 3시에 모여 녹화장에 들어갔는데 그날따라 6시가 되어도 녹화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녹화장 한쪽에 옹기종이 모여 앉은 우리에게 일정이나 그 상황을 설명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대충 분위기로 상황을 파악한 결과 그날의 주요 패널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황스러운 우리들과는 달리 방송 관계자분들은 그런 상황이 익숙한 듯 당황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방송 프로그램은 정해진 시간에 우리에게 보이지만 녹화는 정해진 시간이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으니 연예인의 방송 한 편 출연료가 그렇게 비싼 거구나.' 결국 평소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을 허비하고 막차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오는 길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지각한 자신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한 그 누구에게도 미안한 표정조차 짓지 않던 그 대단한(?) 연예인의 얼굴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름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연예인이었는데 화면에서 보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그 사람의 태도가 순진했던 나에게는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신성한 노동과 귀천이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계급이 존재한다. 들인 시간과 노력, 비용에 비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기준이 너무 다양해 어떤 노동은 너무 과대평가되고 어떤 노동은 너무 과소평가된다. 그랬다.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일당 3만 원’은 나의 단순노동을 과대평가할 수도 과소평가할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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