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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Oct 19. 2022

'절대'안 한다는 말

 

세상에는 내가 만나보지 못한 수많은 엄친아, 엄친딸이 존재한다. 신기하게도 엄친아, 엄친딸들은 세상 모든 자식들과 함께 자라 초중고는 물론 대학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는데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받는 딸, 아르바이트를 해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는 아들처럼 학생으로서 갖추어야 할 뛰어난 소양과 자식으로서 갖추어야 할 효심을 모두 갖춘 완벽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설 속 엄친아, 엄친딸들에게 늘 기죽어 산다.





오래전 나에게도 아주 잠깐이지만 부모님의 엄친딸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국민학교와 중학교 정도? 그러나  더 이상은 부모님의 기대와 나의 능력의 괴리감을 성실함만으로 메꿀 수 없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집 주변의 명문대들을 다 버리고(?) 경기도에 있는 학교에 간신히 붙은 딸에 대한 실망을 숨기려 하지 않으셨다. 왜 명문대 근처에 살아가지고서는..



아.. 우리 부모님이 맹모삼천지교를 따라 명문대 근처로 이사를 오신 것은 아니다. 뉴타운이 들어서기 전까지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에서도 낙후된 지역이었다. 수재민들을 위해 급하게 기획된 동네로 집들은 따닥따닥 붙은 빌라들뿐이었고 대부분의 초중고는 학생의 지덕체 중 '체'에만 중점을 둔 듯 산꼭대기에 위치해 매일 아침 등산과 등교를 함께 할 수 있는 환장할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명문대 근처에 있지만 명문대 진학률이나 기초학력평가 수준은 평균 수준이었다. 부동산에 밝으신 분이라면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그렇다. 서울의 명문대들은 땅값이 싼 동네에 위치해 있어 정작 그 주변 학교에서는 가까운 명문대를 두고 멀리 수도권 학교로 가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맹모삼천지교를 두고 교육환경의 중요성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사실 맹자는 무덤 옆에서 자랐어도 훌륭한 장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교육환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명석함이다. 그리고 그건 많은 부분이 유전이라는 점. ^^








어찌 되었건 명문대 주변에 사는 지잡대 대학생이다 보니 대학생 아르바이트의 꽃이라는 과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면 납득이 되는 일이라 딱히 억울하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기에  과외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단지 부러울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졸업반이 되어 도통 얼굴을 볼 수 없던 선배를 만났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

“뭐 그렇지.”

“다들 뭐하시는지 도통 학교에서 뵐 수가 없어요. “

“아르바이트도 하고 취업준비도 하려니까 다들 바쁘더라고.”

“에? 4학년인데 아직도 아르바이트하세요? 취업 준비만으로도 시간 부족하실 텐데.. “

“그렇긴 한데 요즘 우리 과가 학원 쪽에서 인기가 많아. 부모님한테 용돈 받아 쓰기도 슬슬 눈치 보이니까 다들 하나씩은 하더라고. “

“그래요? 왜 인기가 있을까??”

“너도 관심 있음 자잘한 거 하지 말고 학원 아르바이트 알아봐. 일주일에 이틀만 나가서 시간도 많이 안 뺏기고 페이도 쏠쏠해.”

‘고뤠? 그렇단 말이지.’

그렇게 나의 마지막 아르바이트이자 첫 직업과 만나게 되었다. 


가끔 아니 어쩌면 가끔보다는 조금 더 자주, 행운이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불행의 시작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당시 학원에 과학강사가 부족해 학부생들에게도 강사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첫 발의 중요성을 모르고 되는대로 내디딘 것은 불행이었다. 선생님은 절대 안 한다고 교직이수조차 하지 않았던 나였는데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학원강사는 내 유일한 경력이 되었다.



여러분~~ 세상에 '절대'는 없더라고요. 절대 결혼 안 한다는 사람이 제일 먼저 결혼하기도 하고 다이어트를 위해 절대 먹지 않겠다 생각하는 순간부터 식욕이 폭발하는 건 진리죠. 어쩌면 '절대'라는 말에는 강한 반대의 뜻이 힘이 들어있나 봅니다. 그러니 강한 마법의 힘을 가진 '절대'라는 말은 사용할 때는 소곤소곤 조용히 말하세요. 아무도 듣지 못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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