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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Oct 24. 2022

착한 갑과 나쁜 갑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온 노동의 정의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활동“이다. 또한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을 뿐만 아니라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도 되어 있다. 하지만 왠지 ‘노동’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강도가 센 일을 해 피곤함이 진하게 느껴지는 듯해 ’ 보람과 기쁨‘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보단 ’ 고통과 슬픔‘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더 떠오르곤 한다.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노동’의 주체는 강사와 학생들이었다. 둘 모두 '정신노동'을 하는데 학원강사는 노동의 대가로 즉각적인 금전을 얻는데 반해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대가는 오랜 시간이 걸려 나타나는 탓에 학생들이 느끼는 노동의 강도는 늘 더 무거워 보였다. 최소한 노동은 좋고 싫음은 배제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이거나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덜 고통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가 아닌 엄마의 의지로 학원에 내몰린 아이들은 노동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고스란히 내뿜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간혹 '성적 향상'이라는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아이들도 있어 그 부정적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중화시켜 주곤 했다. 노동의 대가에 있어서의 다름 외에도 강사와 학생의 노동은 갑과 을이라는 관계를 구분 짓기도 했다.




현대 노동에 있어 갑과 을의 관계를 가장 쉽게 나눌 수 있는 건 돈과 지위다. 보통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로 돈을 받는 쪽이 을, 노동의 대가로 금전을 지불하는 쪽이 갑이 된다. 좁아터진 학원 강의실 안에서 함께 정신노동을 하며 고통(?) 받았지만 나는 을, 학생은 최상위 갑이었다. 하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자신이 '갑'임을 내색하지 않는 혹은 갑인 줄 모르는 좋은 '갑'들이었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좋은 ‘갑’만 있는 것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이용하는 나쁜 ‘갑’도 있었다. 이들은 무지하고 어렸기 때문에 더 나쁜 ‘갑’이 되곤 했다.


학원의 나쁜 ‘갑’은 공부를 잘한다고 믿는 학생과 그 뒤에 우리 아이가 최고라는 엄마였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곧 성공의 열쇠라는 믿음이 절대 신앙과도 같던 시절이라 공부 잘하는 아이는 학교건 학원이건 늘 관심과 관리의 대상이었다. 그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 아이가 있는 반면 관심을 즐기는 아이, 요즘 말고 ‘관종’도 있었는데 이 관종 중 최강은 즐기는 것을 넘어 이용하는 아이였다.


이 아이 혹은 부모가 학원에 자신들이 ‘갑’ 임을 확인시켜주는 방법은 간단했다.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에서 학생은 곧 학원의 자본이었으니 ‘학원을 그만둔다’는 말은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갑질이었다. 단지 학원을 그만둔다거나 옮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학원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고 함께 몰려다니는 모임의 다른 아이들까지 움직이게 하기 때문에 학원 입장에서는 데리고 있기에는 부담스럽지만 버릴 수는 없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


간혹 부모가 아니라 아이 혼자 이런 이치를 터득해 갑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아이들 대부분은 공부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지만 무리에서 아이들을 선동하는 데 능한 아이로 상대하기 매우 껄끄러운 대상이었다. 학원 초창기 아이들이 나보다는 순수할 거란 환상을 깨 준 아이가 바로 이런 부류의 아이였다.  

“내가 낸 학원비로 선생님 월급 주는데 내가 애들 데리고 학원 옮기면 어떡하시려고 그래요?”

그래도 선생님이라고는 불러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ㅠㅠ








동네 작은 보습학원에 보내진 아이들 일부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느끼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주기 위해 좋은 학원을 알아보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 믿는 듯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주인공인 아이의 생각은 빠져있었다. 방과 후 가방을 바꿔 메고 학원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늘 누군가의 관심이 고팠고 자신이 ‘갑’인 학원에서 그 관심을 요구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들의 행동이 가끔은 부담스럽고 가끔은 당황스럽고 가끔은 화가 나는 파트타임 초짜 강사였다.



























1

몸을 움직여 일을 함.

그는 노동으로 생계를 꾸린다.

2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한 달 동안 야근을 했지만 월급은 그대로다. 노동과 임금은 정비례하지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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