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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Oct 25. 2022

현재를 살며 미래를 준비하는 인생



나는 그 당시 학원에서 원하던 강사의 3대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어렸고 여자였으며 전공자였다. ^^


벼룩시장 구인 광고란에 나이나 성별을 규정짓지는 않았지만 학원의 규모가 작을수록 남자는 원장님뿐인 경우가 많았고 규모가 조금 큰 학원에서도 과학 강사에 남자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남녀의 이상이 다르기 때문이라기보단 당시 학원강사는 불안정한 직업군으로 지금의 비정규직에 해당이 되다 보니 여자건 남자건 그렇게 선호하는 직업은 아니었다. 특히 동네 보습학원 강사는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아르바이트이거나 혹은 이전에 과외 경력이 있던 사람이 안정된 월급을 원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의 여자가 많았다.


학원강사에 ‘어린 여자’가 유리했던 건 학원의 편견이나 남녀차별 때문이 아니라 아이와 부모의 선호도 때문이었다. 내가 가르치던 중학교 아이들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본능적(?)으로 남자 강사보다는 여자 강사를 더 좋아했고 어느 시대에나 그랬듯 젊음을 좋아했다. 반면 부모들은 안전(?) 상의 이유로 여자 강사를 더 선호했다. 교육현장에서 아이가 어릴수록 남자보다는 여자를 선호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편이다.








대학 졸업과 함께 처음 다녔던 학원을 그만두고 집 근처 학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출근하지 않는 날은 새벽 일본어 학원을 다녀온 뒤 기르던 강아지와 함께 창가에 앉아 멍 때리기를 하고 출근하는 날에는 오후 5시에 시작하는 어린이 만화를 보다 출근을 하는 아주아주 여유 있는 생활을 했다. 한동안은 꽤 만족스러웠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를 둘러싼 시간만 느리게 흐리는 듯한 여유로움과 뭔가에 쫓기듯 종종거리는 하루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좋았다. 그렇게 20대, 무엇이건 도전해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시간을 낭비했다.



학벌이 곧 스펙이던 시절, 변변치 않은 나의 학벌로도 언제든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학원강사였다. 어리고 여자고 전공자에 이제 경력까지 생겼다. 회사 원서를 쓸 때는 메리트가 되지 않는 것들이 학원 면접에서는 메리트가 되었다. 동네 보습학원강사가 평생직업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이 반복되는 취업 실패로 인생의 쓴 맛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두려웠다. 내 모든 것을 부정당하는 느낌과 함께 초라한 나의 모습을 다른 이의 거절을 통해 보게 된다는 두려움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 자리에 머물게 했다. 현재를 살고 있지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경력조차 없는 경력단절 여성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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