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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Oct 26. 2022

배부른 번아웃


기업도 대기업, 중소기업, 영세기업이 있듯 학원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로 근무했던 학원은 동네 보습학원으로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30분 안팎의 거리에 위치해 있는 중소 혹은 영세기업에 해당하는 작은 규모였다. 직원은 보통 4명으로 영어, 수학 전임강사가 각 1명씩이고 국어, 과학 파트타임 강사가 각 1명씩이었다. 곳에 따라 내 편인 듯 내 편 아닌 원장이 직강을 하는 곳은 그나마 전 직원이 3명으로 줄어들었다. 전 직원이 3명뿐이니 화기애애한 분위기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은 그저 얼굴만 아는 사이인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사람이 바뀌어서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려웠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툴렀던 탓에 이런 학원 환경이 나는 오히려 편했다. 무리에 속하려 애쓰지 않고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처음 전임강사로 근무를 하게 된 학원은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학원으로 대기자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학원이었다. 각 학년이 우반과 열반, 두 반으로 운영되었고 한 반의 정원은 15명이었다. 인기가 있으면 학원 규모를 키우는 다른 곳과는 달리 원장님은 정원 외에는 절대 학생을 받지 않았고 학원 규모도 늘리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쉽게 가질 수 없을 때  그 가치가 올라간다. 실제 가치는 그 정도가 아닌데도 말이다. ^^


나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4시에 출근해 6시간을 근무했다. 한 달에 쉬는 날은 4번, 일요일 뿐이었다. 학원 수업이 주 3회로 운영되기 때문에 공휴일에도 쉬지 않았다. 방학에는 다음 학기 선행을 위해 수업을 두 배로 늘렸다. 오전 9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했다. 그 당시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돈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이렇게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을 상쇄시켜줄 수 있는 건 노동의 대가로 다달이 통장에 들어오는 ‘돈’뿐이었고 충분한 대가를 받는다면 노동은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1년, 번아웃이 왔다. 친구가 그리웠고 내게 평화를 주던 반복되는 일상이 못 견디게 지루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뚝 떨어져 나와 멈춰져 있는 것 같았다. 처음 강사생활을 시작하며 느꼈던 장점(남들 출근할 때 퇴근하고 퇴근할 때 출근하는)이 이제는 나를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단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도돌이표 같은 생각은 늘 ‘이곳을 그만두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되돌아왔고 그 생각은 나를 그곳에 붙잡아 두었다. 그렇게 또다시 6개월을 버티다 결국 학원을 그만두었다.








돈 때문에 다투는 부모님을 보며 자란 나에게 돈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부모님 용돈과 차비를 제외한 모든 월급을 저금하고 있었다.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생각했기 때문에 통장에 돈이 쌓이면 행복해지고 그것이 내 노동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알게 된 것은 노동의 목적이 오직 ‘돈’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때의 경험 때문일까. 요즘 나는 딱 쓸 만큼만 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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