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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Oct 11. 2022

일당 3만 원의 함정(1)


요즘은 중고등학생들도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 편이라 대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울 집 애들은 아르바이트 경력이 짧다. 게다가 주변머리는 또 제 엄마를 닮아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재주도 없는 편이다. 특히 아들놈. 수능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한 딸과는 달리 신나게 놀기만 했던 아들은 대학교 1학년 동안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이유는 다양했다. 6개월 이상을 요구하는데 본인은 2개월뿐이 못해서 할 수가 없다는 둥 그나마 그 2개월도 친구와 여행을 가야 해서 안된다는 둥 여자만 뽑는다는 둥 집에서 거리가 너무 멀다는 둥 일은 힘들고 급여는 너무 작다는 둥.. 퉁치면 그냥 일하기 싫다는 뜻. 대학생활의 키워드는 아르바이트와 미팅 아니었나?? 그러던 아들이 군입대를 기다리며 몇 가지 단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쿠팡물류센터, 대형마트 명절 선물 판매, 수시 원서 정리 등등. 거봐. 찾아보면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중 친구가 함께 하자고 했다며 일당 10만 원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였던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방청 아르바이트. 아~~ 엄마도 했었는데.. 


그때는 방청 아르바이트의 일당이 3만 원이었다. 모든 게 아날로그이던 시대라 SNS에서 모집하고 신청을 받는 요즘과는 달리 학교 공지사항 게시판에 모집 공지를 보고 신청을 했었다. A4 용지에 출력된 광고지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 정도로 허접했지만 제시된 일당은 당시 나의 한 달 용돈에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라 돌다리도 두들겨보며 건너는 나에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래. 하루 일해서 한 달 편하게 살아보는 거야. 방청이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겠어.'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로또 당첨 같은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만 얻을 수 있어도 다행인 세상이 아니던가. 어찌 되었건 일당 3만 원에 현혹된 나는 방청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방청 알바를 하기로 한 날, 앞으로 일어날 험난한(?) 일을 알지 못하는 나는 오로지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송국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약속 장소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 같은 어리바리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 한눈에 봐도 ‘저기구나.’라고 알아볼 수 있었다. 첫 방청 알바 시간은 오후 3시였다. 프로그램 명칭은 기억나지 않지만 약속 장소에 모인 사람들의 인적 사항을 체크한 후 녹화장으로 이동했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모토로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을 하는 성격이라 공개방송 한 번 가 본 적이 없던 나의 첫 방송국 나들이였다. TV에서 보던 녹화장에는 각자 자신의 일에 여념이 없는 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녹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뒤 그때는 아직 유명하지 않던 이영자 씨 기 어수선한 무대로 올라와 마이크를 잡고 막간 유머를 진행했다. 방청객의 분위기를 풀어주는 역할인데 방송가 용어로는 '바람잡이'라고 했다. 10여분 남짓 분위기를 띄우는 '바람잡이'는 대부분 무명 개그맨들이 맡았다. 방청객은 녹화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방청객의 호응에 따라 주인공인 패널들이 방송을 잘 진행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방송이 되었을 경우에 사람들에게 프로그램이 재미있게 느끼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방송 시간에 늦게 도착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명 연예인과 대비되어서였을까? 그날 내가 기억하는 무대 위 이영자 씨의 모습은 슬픈 얼굴을 한 광대, 피에로였다. 오늘의 10분으로 얼마를 받았을까? 이런 노력이 성공의 발판이 될 수 있을까? 쓸쓸히 무대를 내려가는 이영자 씨의 모습이 안쓰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영자 씨는 성공했고 일당 3만 원에 눈이 멀었던 나는 그냥 나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 누가 누굴 걱정해!!


'일당'에 포인트를 맞추지 않고 '3만 원'에 포인트를 맞춘 나의 어리석음이여 ~~ 

오후 3시에 모인 방청 아르바이트생들이 방청을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시간 지난 5시부터였다. 원래 녹화 시간이 5시부터였는지 연예인들은 그즈음에 녹화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시작된 녹화는 그 후로 3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대기 시간 2시간에 녹화시간 3시간. TV에서 1시간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녹화시간이 평균 3시간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 이래서 시간을 정하지 않고 일당 3만 원이라고 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아르바이트 시급에 비해 이 날의 시급은 괜찮은 편이었기에 나는 이후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방청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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