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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모션 Nov 03. 2021

이 얘기를 먼저 했어야 하나

지호와 나의 포에지(poésie)- 프리퀄? 서문!!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브런치에 쌓였던 글을 정리해 슬로우모션을 출판하고 나니 뭔가 목표가 없어진 듯 글이 방향을 잃어갔다. 가뜩이나 솜씨 없는 글솜씨가 주제도 목적도 없이 흐르니 도저히 발행할 수 없어 작가의 서랍 속 깊숙이 숨겨만 놓았다. 

코로나도 크게 한몫을 했다. 모두 힘들었음을 알고 있으나 그래.. 나도 힘들었다. 아니 우리도 힘들었다. 지호는 이해할 수 없는 온라인 수업과 씨름을 했고 나는 그 아이를 앉혀놓는라 씨름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11월이 되고 위드코로나가 실행되고 나니 일신상 큰 변화는 없을지라도 

그 단어만으로 위안이 되고 의욕이 생겼다.



지호는 들쭉날쭉하는 학교 등교와 알아먹지 못할 온라인 수업 앞에 멍하니 초점을 놓는 일이 많아졌다.

간헐적으로 빠지던 한쪽 눈동자도 각이 더 벌어지고 자주 사시가 되었다.

함께 들어야 하는 온라인 수업은 나도 지치게 만들었다.

이 아이가 교실에서 이러고 있구나... 이렇게 통합교육을 받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부터 우리는 그럼 무얼 목표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마음을 어지럽혔다.


우리의 마음이 이러거나 말거나 계절은 흐르고 가을이 되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 동네는 그야말로 사방이 '지금이 가을이야 나를 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교 후 집으로 오는 길 여느 때처럼 만화의 대사를 반복적으로 혼자 읊어대는 지호에게 나는 물었다.

"지호야 날씨가 어때"

"띠띠뽀가 소리쳤어요~"

"지호야~날씨 예쁘다. 창 밖 좀 봐봐"

"에릭~그러면 안돼!"

"가을이다. 정말. 창밖이 알록달록해. 지호야 예쁘다~"

"가을엔 날씨가 좋아요."

그렇게 시작된 지호와 나의 포에지 poésie.


지호의 말은 단편적이다. 가끔 문맥이 맞지 않는 조사를 쓰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요즘은 만화 속에 빠진 혼자만의 대화가 많고 헤어 나오기를 어려워해 가끔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지호와 깊은 대화가 어렵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호 안에 많은 단어들이, 수많은 감정들이 담겨있다는 것을.

그저 꺼내는 과정이 우리들보다 훨씬 복잡할 뿐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지호에 대한 평가가 달랐던 것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 했고

누군가는 정말 다 알고 있다고 했다.

결국 지호에게는 내면의 길을 안내해 줄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조각된 지호의 말을 엮으며 아마 그 생각이 과장될 수도 아니면 턱없이 부족할 수도 아예 방향을 잘못 잡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말들을 적어보려 한다. 나의 말과 함께.

내가 조금 더 문학적인 사람이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부족한 필력이 부끄럽지만 지호와 대화하려는 노력임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만화의 세상에 빠져 만화 캐릭터와 대화하며 울고 웃는 지호에게 이 포에지 poésie가 현실을 놓지 않을 한가닥이 되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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