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엄마가 해주는 밥이 생각날 때가 있다. 어렸을 때 일요일 아침 메뉴로 두부찌개가 자주 등장했다. 엄마는 마땅한 찬거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집 앞 가게에서 두부 한모를 사다가 찌개를 끓여 주셨다. 멸치로 진하게 육수를 낸 후 두부와 고춧가루 다대기를 풀어서 만든 음식이었다. 기름지고 냄새나는 음식을 잘 먹지 못했던 내게 두부는 자극이 별로 없어서 편안했다. 이밖에도 생각나는 음식은 명절 연휴의 마지막날 느끼한 속을 달래기 위해 먹던 매운탕, 공부하기 싫어서 땡땡이를 친 후 아픈 척하며 먹던 홍합죽, 애정결핍을 호소할 때마다 해주시던 건더기 가득한 해물탕등이 있다. 옛날 생각이 나서 따라 해보지만 엄마가 해주시던 맛과 비교하면 무언가가 아쉽게 느껴지곤 한다. 다시 맛볼 수 없기에 더 그리운 맛이다. 엄마의 집밥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해 준 밥 중에 어떤 것을 그리워할지 궁금해졌다.
"얘들아,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어?"
"보리차! 엄마가 끊어주는 보리차가 최고지?"
"..."
의문의 일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허를 찔린 기분으로 깔깔대며 웃는 내게 아이는 우리 집 물맛이 진짜 좋다고 강조했다. 어디 가서도 우리 집 같은 물맛은 없다고 말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 배앓이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보리차를 끊여먹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도 우리 집은 생수를 먹지 않고 물을 끓여 먹는다. 아이들이 크면서 생수로 바꿀까도 생각해 봤지만 나 역시 보리차를 먹는 것을 좋아한다. 보리차의 맛이 주는 향수가 있다.
어릴 적 기억 중 하나는 주방에서 나던 보리차 끊는 소리였다. 물이 끓으면 주전자에서 '삐이'하는 휘파람소리를 내곤 했다. 집에서 울리는 주전자의 휘파람소리아 물이 보글보글 하는 소리, 아슬아슬하게 넘칠 듯하면서도 넘치지 않는 주전자 주둥이의 물거품, 그 위로 수증기가 뽀얗게 올라오는 모습은 안정과 평화의 상징이었다.
보리차는 비상약이자 만병통치약이기도 했다. 배앓이를 할 때면 늘 보리차를 먹었고 자다가 경기를 하고 일어나면 엄마가 물 한잔을 하라고 했다. 밥맛이 없으면 찬 보리차에 밥을 말아먹어기도 했고, 생선을 먹다가 가시에 걸릴 때도 엄마는 보리차를 많이 먹으면 내려간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민간요법이기도 했지만 엄마는 먹는 것에 탈이 생기면 보리차에 의지하곤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진짜로 보리차를 먹으면 안 넘어가던 밥도 넘어가고 생선 가시로 인한 통증도 완화되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집 밖에서도 보리차는 안정제 역할을 했다. 보통 가정집에서는 보리차를 끊여 먹지만 식당이나 외부 영업점에서는 보리차맛이 아는 향신료를 넣었다. 밖에서 먹었던 가짜 보리차 중에 목욕탕에서 먹었던 가짜보리차는 생명수 같았다. 엄마와 나는 목욕탕을 가면 2시간 정도를 머물렀다. 아빠와 오빠는 1시간 정도면 목욕을 마치고 나왔지만 엄마는 2시간 이상은 해야 본전이라고 하셨다. 나도 엄마 따라 수증기 가득한 목욕탕에서 인형놀이도 하고 숨 참기 놀이도 하며 두 시간을 버티곤 했다. 그러다가 덥고 답답한 탕에서 나와 보리차를 하난 마실 때면 가슴이 뻥 툴린 기분이 들었다. 가짜 보리차맛도 결정적 순간에 나를 살렸다.
시간이 한참 흘러 아이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갔을 때도 보리차는 내게 특별한 기억을 남겼다. 개구쟁이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학교에 갈 때마다 주눅이 드는 기분이다. 딸 키우는 엄마는 교실 문을 한 손으로 열지만 아들 키우는 엄마는 문을 두 손을 민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날 나는 등을 살짝 구부려 말고 두 손으로 문을 공손히 밀고 들어가야 하는 날이었다. 교실에서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데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잘못을 하고 교무실에 끌려온 기분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보온병 뚜껑을 열고 김이 모락 피어나는 보리차 한잔을 따라 주셨다. 따뜻한 보리차가 든 종이컵을 손에 쥐고 있으니 긴장이 풀렸다. 보리차는 또 한 번 이렇게 나를 위로했다.
보리차는 제대로 자기 몫의 효능을 발휘할 때도 있었지만 때때로 별다른 방법이 없을 때 쓰던 일종의 방편이기도 했다. 또한 가짜 보리차이기는 했어도 간절했던 순간에 진짜만큼의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흔해서 시시하게 생각했던 보리차 같은 것들이 일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무심코 흘러가버린 찬란했던 순간들. 햇살같이 쨍하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바람처럼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찰나의 순간을 잡아본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단박에 알아챌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