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 앞에서 인생의 고난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녀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의 성장에 문제가 생긴다. 걷기가 불편했지만 여러 겹 양말을 신고 신발 높이를 키우면서 학교에 다녔고 의사가 되기를 꿈꿨다. 학교에 가던 어느 날, 18세의 그녀는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사고에서 쇠봉이 척추와 자궁 그리고 다리를 관통하는 큰 사고를 입게되고 회복되기 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린다.
그녀는 회복의 시간 동안 침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0대 초반, 평생의 사랑이자 고통이 되었던 디에고 리베라(1886-1957)를 만나게 된다. 디에고는 심각한 여성편력이 있었으며 심지어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 외도를 하면서 결혼생활을 위태롭게 했다. 게다가 그녀는 세 번의 유산, 35차례의 수술을 겪으며 반복되는 고난을 만난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의 반복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런 그녀의 고난사를 알고 나면 그녀의 그림이 슬퍼 보인다. 고통에 심장이 저릿해질 수도 있다.
프리다는 자화상을 유독 많이 그렸다. 그녀가 남긴 작품 198개 중 55개가 자화상이다. 그녀는 자신이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이유에 대해 "홀로 지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며, 동시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보이는 거울 속의 자신, 신체적 고통을 통해 더욱 크게 자각되는 자신의 몸,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을 그녀에게 그림은 친구이나 애인이었으며 세상을 날 수 있는 새이자 나비였을 것이다.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에서 흰색 옷을 입은 프리다는 목에 가시나무를 목걸이처럼 걸고 있다. 목걸이 끝에는 메달처럼 새 한 마리가 달려 있다. 새는 더는 날지 못한 채 죽은 듯이 가지에 묶여 있다. 가시목걸이는 그녀의 목을 조르며 고통스럽게 하고 있지만 원숭이는 천진한 얼굴을 하며 나뭇가지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그녀를 더욱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말이다. 가시에 찔리는 고통 속에서도 프리다의 얼굴은 담담하다. 마치 예수의 순교 장면처럼 고통이 있음을 받아들이겠다는 겸허함, 오직 사랑에 대한 헌신만을 믿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 그림을 보는 내 시선은 그녀의 얼굴 표정을 슬쩍 스친 후 목을 죄는 가시 목걸이에 집중된다. 그리고 양 옆에 있는 검은 고양이와 원숭이가 보인다. 그녀를 괴롭게 하는 절망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되면 그녀의 표정이 내가 느낀 고통만큼의 표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부조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림에 조금 더 머물다 보면 그녀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잠자리와 나비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야 그녀의 삶이 좀 더 보인다. 그녀의 삶이 절망뿐이 아니었음을, 그 절망을 밟고 서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있음이 행복하다.
프리다 칼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척추를 세우는 보조장치를 착용하며 지냈으며 침상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어나지 못하는 날은 이렇게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표현했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남편 디에고가 프리다의 얼굴이 그려진다던지, 그녀의 기억의 장면이 한 캔버스의 펼쳐진 다던지, 그녀의 고통이 해부학 이미지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을 그렸다. 이를 보고 그녀를 초현실주의 화가로 분류하기도 했으나 프리다는 이런 해석을 거부했다. 프리다는 자신은 초현실을 그린 것이 아니라 지극한 현실만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지극한 현실만을 그렸다. 그것이 고통이면 고통을 그렸으며, 그것이 절망이면 절망을 그려냈다. 인생의 절망이 찾아올 때마다 그녀는 기어이 붓을 잡고 그 절망을 직면했다. 그녀의 그림은 그녀의 고통 그 자체가 소재가 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통을 원료 삼아 나아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 앞에 마주 선 것이다. 정면으로 승부를 건 것이다.
이성복 시인은 카프카 문학의 비극성에 대해 "그의 문학은 인생이라는 화마를 잡기 위한 맞불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프리다 칼로에게 그림은 절망이라는 화마를 잡기 위한 일종의 맞불이지 않았을까? 붓을 드는 것은 또 다른 신체적 고통을 야기하는 일이다. 인생의 고통 앞에 신체적 고통으로 응답했던 프리다. 불행한 사건을 마주하며 슬픈 기억을 소진 지키려 했던 프리다. 그래서 기어이 기쁨을 느꼈던 프리다.
프리다처럼 인생의 화마를 잡기 위해 맞불을 놓는 이들을 알고 있다. 일상의 권태를 막기 위해 습한 여름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이, 슬픈 기억의 뭉치 위에 기쁨을 쌓기 위해 무거운 기구를 들어 올리는 이,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매일밤 그림을 그리는 이, 글로 자신을 태우며 엉킨 감정을 정리하려는 이,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책방으로 달려가는 이를 알고 있다.
삶을 짊어지려고 하는 이들은 모두 맞불 놓기 선수들이다. 고통에는 또 다른 고통으로 맞불을 놓는다. 슬픈-슬픔에 대항하기 위해 슬픈-기쁨으로 맞불을 놓는 것이다. 나 또한 미술관을 헤맨다. 마음이 통하는 이와 대화를 하기 위해 애타게 그림 속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