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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Nov 28. 2020

나의 두 형님

콩을 세는 남자

두 형님


제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형님이라고 부르는 두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워런 버핏' 형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무라카미 하루키' 형님이십니다. 저는 버핏티스트임과 동시에 하루키스트인 셈입니다. 첫 번째 형님은 저의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고 계십니다. 제가 주식투자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분의 투자철학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나름 노력을 했고, 이런 노력이 회사에서 재무쟁이로서 투자에 대해서 아는 척하며 밥 벌어먹고 사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형님은 저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해주고 계십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고, ‘나’란 인간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해 주었고, 인생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허튼짓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철들고 나서 저의 인생은 두 거인의 어깨를 왔다 갔다 했고, 두 형님은 저의 물질적 삶과 정신적 삶의 충돌과 해소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하루키


시작은 하루키였습니다. 90년대에 대학생이었다면 누구나 읽었을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통해서 하루키를 처음 접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루키가 노태우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7년 6월 이후 바로 민주정권으로 정권교체가 되었다면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상실의 시대>를 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실’이라는 단어를 책의 제목으로 넣은 편집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편집자의 안목도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상실의 시대’ 이후 ‘상실’은 한국 젊은이들의 대표적 감성이 되었고 하루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상실은 마치 하루키를 위한 단어처럼 느껴졌습니다. 혼란스러운 대학생활을 보내던 저에게 전공투 세대 하루키의 상실감이 그대로 뼛속 깊이 전해져 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루키를 알고 이해하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버핏


재무쟁이로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주식시장을 알게 된 후 저는 워런 버핏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때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등 인구에 회자되던 투자가들과 함께 워런 버핏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가치투자라고 불리는 그의 투자철학을 공부한 것은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였고, 가치투자가 대학교 시절 재무관리 수업 시간에 배운 현금할인법(DCF)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그의 투자철학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제가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닷컴 붐이 한창이었고, 워런 버핏은 닷컴 회사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천재 물리학자 뉴턴도 계산할 수 없다고 인정한 인간의 광기 속에서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 철학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그에 관한 책들은 잠시 저의 서가에서 휴식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저는 테마주, 작전주 등 미친 주식을 찾아 찌라시와 소문과 차트의 홍수 속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하루키


많은 하루키스트들이 하루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삶의 방식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루키 소설 속 캐릭터의 삶이 아니라 작가 하루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한 것은 그의 에세이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당시 저는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돈 때문에 친구들을 잃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거의 매일 계속되는 음주가무에 건강도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10 킬로그램 더 나갔던 저의 몸은 저의 삶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삶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키는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자신이 직업적으로나 성격적으로 남과 경쟁하여 우열을 가리는 것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고 거기에 만족감을 느끼는 스타일이라 소설을 쓰고 마라톤을 하는 것이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썼습니다. 또한 어느 정도 예술의 퇴폐성은 인정하지만 '불건전한 영혼은 건전한 육체를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불건전한 영혼과 건전한 육체의 적절한 밸런싱을 주장한 것입니다. 건전한 육체 없이 불건전한 영혼만 가지고 있었던 저에게 하루키의 말은 도끼가 되었습니다.

달리기란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이고 그것은 또한 사는 것의 메타포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을 읽고 저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적정 몸무게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자신이 비루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묘비에 '무라카미 하루키,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적겠다는 말이 가장 감동적이었을 만큼 하루키에 대한 저의 인식은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계몽적이고 근대적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지 못했습니다. 진짜 하루키를 느끼기까지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버핏


2009년 미국 연방제도 이사회 의장 버냉키는 돈을 헬리콥터에 실어서 뿌리기 시작했고, 저는 그동안의 삶이 거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제야 워런 버핏의 가르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듬해에 저는 직장을 옮겼습니다. 직장을 옮긴 이유는 많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야생을 떠나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저답게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옮긴 직장에서 저의 역할은 회사 투자 프로젝트의 경제성을 분석하는 일이었습니다. 듣기에는 멋있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사업부서와 치열한 논쟁을 날마다 벌이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재무이론을 더 완벽하게 공부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재무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는 사업부서가 비논리적으로 우격다짐을 해왔을 때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품의 붕괴와 회사 업무의 변화로 저는 버핏이 더욱 필요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시험 준비하느라 표지가 닳도록 봤던 책을 다시 꺼냈습니다. 대표적인 책이 당시 기업가치평가의 바이블이라고 불렸던 맥킨지(McKinsey)에서 펴낸 <기업가치(Valuation)>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유명한 유튜버가 된 NYU의 다모다란의 책도 읽었고 한국에 가치투자를 전파한 최준철, 이채원 등의 책도 다시 읽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역시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서한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어떤 이론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론의 수학적 설명보다는 역사적,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서한은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투자철학과 경영철학을 알 수 있는 보물창고입니다. 노조와 주주꾼과 경영진 간의 난투극이 벌어지는 한국의 주주총회와 달리 회사의 경영진 직접 자신의 경영철학과 경영전략을 설명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축제 같은 그들의 주주총회가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하루키

저에게는 업무의 변화뿐 아니라 나이의 변화에 따른 인생관의 변화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40세가 다가오자 저는 저를 저로 봐야 했습니다. 인생의 절반 근처에 와있다는 불안감이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초초함이었을 것입니다. 저를 알기 위해서 개인주의자가 제일 부러워하는 개인주의자 하루키에게 다시 돌아갔습니다.
<개인주의자 선언>의 저자 문유석은 하루키를 가장 성공한 그리고 가장 부러운 개인주의자로 정의합니다. 하루키 자신도 ‘가와카미 미에코’와의 대담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에서 작가는 개인주의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언론에 자주 나오지 않고 정치적 발언도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의 생각과 그의 삶에만 집중합니다.
하루키는 하루키적 삶을 상징합니다. 저는 하루키의 작품도 좋지만 그의 삶의 방식을 엿보기 위해서 작품을 읽습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수영을 하고, 맥주를 마시고, 소확행을 추구하는 하루키적 삶의 방식 말입니다. 70이 넘은 노작가지만 한국의 MZ세대가 더 좋아할 것 같은 작가입니다. 하루키를 통해서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쥐 3부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에서는 주로 상실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썼지만 이후 하루키는 무의식의 세계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동굴과 우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회사라는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왔던 제가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하루키는 ‘스푸투니크의 연인’처럼 제가 저항할 수 없는 인력이 되었습니다.


버핏

하루키의 소설뿐 아니라 하루키의 삶의 방식이 저에게 영향을 미쳤듯이 버핏의 투자 철학뿐 아니라 삶의 방식 또한 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버핏은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 주의 오마하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합니다. 싼 햄버거를 먹고 검소한 생활을 합니다. 그는 기부를 하고 부자세에 찬성합니다. 공화당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와 달리 그가 민주당적 정치 성향을 갖게 된 것은 아내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저의 검소한 생활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부자가 되더라도 검소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입니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부를 이루는 과정은 돈을 좇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세상에 증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자기가 쌓아 놓은 부에 짓눌려서 자신을 해치지만, 후자의 경우는 자기만족을 할 뿐이고 그 부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지킵니다. 버핏은 전형적인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지금의 나이에도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버핏은 투자에 대한 많은 비유를 야구를 통해서 할 만큼 야구를 좋아합니다. 또한 그는 숫자를 사랑합니다. 복리 테이블을 모두 외웠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제가 '머니볼의 꿈'에서 말씀드렸듯이, 야구와 숫자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숫자를 좋아하는 것은 버핏과 저의 사례를 보더라도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야구 팬인 저와 숫자로 먹고사는 저는 아무래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루키


개인주의자라는 점 이외에 하루키가 저를 매료시킨 요인은 아무래도 그의 문장입니다. 하루키는 소설가가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은 자신만의 문체이고, 소설가가 자기 문장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를 알아가는 것도 오로지 문장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어떤 문장을 쓰는가가 내가 누군가를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루키 말이 맞다면 저는 문장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제가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가 혹은 쓸 수 있는가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문장을 조탁하는 하루키의 정신은 저의 문장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하게 하였고 이러한 습관은 글쓰기뿐 아니라 회사 업무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굴’ 스타일로 최대한 간결하게 나만의 문체를 만들고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는 그의 문장론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문장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소설 혹은 에세이냐 분석과 주장을 제시하는 보고서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보고서 쓰기는 샐러리맨의 거의 유일한 창작 행위입니다. 나만의 콘텐츠와 문체를 도구로 나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전개하는 보고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샐러리맨의 큰 무기입니다. 소설가가 자신의 문장만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듯이 샐러리맨도 자신이 갖고 있는 콘텐츠를 자신의 문장으로 써낼 수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글쓰기로 드러내는 저의 독창성은 제가 회사의 노예가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창작행위를 수행하는 한 인간이 되게 합니다. 샐러리맨의 삶도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버핏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시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노년 준비는 되어있나?’,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지?’ 현대 약탈적 자본주의는 경계를 늦춘 사냥감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돈에서 신경을 끄는 순간 어디선가 돈이 새기 시작합니다. 일개 샐러리맨이 노후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방법은 투자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잠시 하루키를 떠나 다시 버핏에게 돌아갑니다. 시장에 저평가된 주식이 뭐가 있나 사이트를 뒤적거립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을 다시 읽으면서 그의 투자철학을 체화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동안의 투자 성과는 ‘생활’을 조금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인생’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가치투자로 인한 투자수익보다는 버핏의 철학에 따라 사고하고 분석하는데서 오는 지적 만족감과 성취감이 훨씬 컸습니다. 물질적 풍요는 정신적 풍요만큼 쉽게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 대신 정신적 풍요라도 얻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치투자는 투자철학일 뿐 아니라 경영철학으로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버핏은 투자가였기 때문에 사업을 잘할 수 있었고, 사업가였기 때문에 투자를 잘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샐러리맨들은 회사에서 세상을 배웁니다.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이고 바람직한 회사인가 그리고 회사는 어떻게 경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세우는 일은 샐러리맨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세우는데 도움을 줍니다. 재무쟁이인 저는 회사의 경영철학은 '가치경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루키

제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술에 대한 안목 특히 음악과 다른 소설에 대한 안목을 넓혀주었다는 점입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가 음악을 듣는 아주 예민한 감각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악(대부분 재즈와 클래식)을 들으며 그의 글을 읽을 때 느껴지는 흡입감은 대단합니다.

'레이먼드 챈들러'나 '레이먼드 카버'는 하루키를 통해서 알게 된 소설가들입니다. 그를 통해서 더 넓은 폭의 소설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축복입니다. 그는 일본 소설을 읽지 않고 영미소설을 주로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덕분에 저의 영미소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원서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스타일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싶어서 일본어로 그의 소설을 필사하기도 했습니다. 영어와 일본어 실력의 향상은 그를 좋아함으로써 추가로 얻어진 덤입니다.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면서 하루키의 삶의 스타일을 쫓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개인주의자인 제가 치유받았고,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고,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저만의 스타일로 변주하여 나다운 삶을 이끌어가고 싶습니다. 


하루키와 버핏


제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두 형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제가 두 형님을 동시에 좋아하게 된 데에는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고, 혹시나 저에게 두 사람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있기 때문은 아닐까 희망해봅니다.


추상화(抽象化)의 대가

최진석 교수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인간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가져야 하는데 그 시선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추상적인 것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추상적인 철학이 가장 높은 학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철학교수니까 그렇게 말하지.’라고 하기에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두 형님 모두 ‘추상화’의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온갖 비유와 상징을 사용합니다. 소설 속의 인물이나 환경설정은 영화를 보는 것 같이 구체적이지만 주제 의식은 절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루키 자신도 어떤 어떤 느낌이다는 감각만 가지고 쓰지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독자에게 맡기고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석하는 재미를 독자에게 선물합니다. 

버핏이 투자의 기준으로 삼는 ‘기업가치’라는 개념은 형이상학의 극치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는 ‘기업가치’라는 개념을 투자에 적용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습니다. 
노자 전공자인 최진석 교수의 말대로 통찰과 가치란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현실에서가 아니라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변방과 고독

소설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주류에서 벗어나 변방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도 부산에 살고 있고 정유정 작가는 광주에 살고 있습니다. 김정운 교수는 여수로 내려갔고 박범신 작가는 논산에서 작품 활동을 합니다. 하루키는 더 고급지게 많은 작품을 외국에서 썼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하루키는 일본 소설을 읽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흡입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버핏의 변방은  그가 투자가임을 고려하면 더욱 특이합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시골에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공한 투자가가 뉴욕이나 LA, 보스턴 등 대도시에 몰려있는 현상을 고려하면 버핏의 변방은 하루키의 변방보다 더 이례적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창의성이 필수인 사회이고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주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변방과 고독은 창의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독서와 사색

두 형님들은 읽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오후에 운동을 하고 저녁에 책을 읽는다고 말했습니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에도 번역을 하거나 에세이를 쓰면서 책과 멀어지지 않습니다. 운동하거나 책을 쓰거나 책을 읽는 일이 대부분의 일과인 것입니다. 

버핏의 독서 대상은 기업들의 연례보고서(Annual Report)와 신문입니다. 그의 사진을 보면 그는 항상 무언가를 읽고 있습니다. 사진 속 버핏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숫자가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고 투자 아이디어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철없던 시절의 저를 돌아보니 위에서 말한 두 형님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쫓았고 군중을 따라 했으며 독서와 사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 형님의 영향 때문인지 철이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삶에서 조금씩 조금씩 벗어나고 있습니다.


두 형님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

제가 두 형님 사이를 왔다 갔다 한 것은 정신적 자유를 꿈꾸지만 자본주의 세계에서 경제적 자유를 포기할 수 없는 제 삶의 모순을 표상합니다. 일견 전혀 다른 직업과 가치관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두 형님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정신적인 삶과 물질적 삶의 근본에는 같은 성공 요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변방에서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독서를 통해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버핏의 방식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고 하루키의 방식으로 정신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한 인생이 있을까요? 하나도 얻기 힘든 일이고 과도한 욕심인 줄 알지만 저는 제게 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읽고, 쓰고 생각하면서 샐러리맨에게 요원해 보이는 금지된 자유를 향한 희미한 길을  더듬더듬 기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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