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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Sep 21. 2021

타인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콩을 세는 남자

재무쟁이의 모순


기업의 목적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고, 재무의 목적은 기업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서 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또한 회사의 정확한 재무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 회사의 투자자들에게 배당과 이자 등을 통해서 그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이 재무를 하는 사람의 신성불가침 의무라고 배웠습니다. 그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가치투자 철학을 열심히 공부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습니다. 가치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경영하는 회사가 재무쟁이의 존재 근거를 가장 효율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재무쟁이의 존재 근거를 실현하는 데에도 치명적 모순이 존재합니다.

제가 재무 전문 지식을 갖게 된 것은 아담 스미스가 강조한 분업의 영향 때문입니다. 수리적 경영이 필요해진 자본이 경제와 재무 지식을 지닌 인력을 필요로 했고, 저는 그 필요에 의해 그리고 그 필요로 인해 성공한 사람을 보면서 꿈을 꾸었습니다. 대학은 자본주의 전사 재무 인력을 키워내는 커리큘럼을 만들어 냈고 저는 성실하게 그 과정을 수행했습니다. 저는 제가 보유하고 있는 재무 전문 지식을 회사에 팔아서 월급을 받습니다. 회사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고 있으니 노동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프롤레타리아일까요? 대기업에서 재무직을 수행하고 있는 직원을 프롤레타리아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재무쟁이로 살아오면서 혼란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저의 '계급적 정체성'이었습니다.


동료와 갈등

재무쟁이는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스스로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의 이익 향상에 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순이 가장 심하게 드러나는 때가 임금단체협상 시기입니다. 매년 이 시기가 다가오면 재무실 임원들은 노조와 어떻게 싸울지 협상 전략을 짜고, 중간 관리자인 저는 우리(?)의 전략이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사의 승리가 노동자인 저의 패배임을 인지하면서도 말입니다. 노조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며 임금인상과 복지향상을 주장하고 재무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며 회사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이때 제시하는 근거는 대부분 미래를 위한 투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재원 담당자인 저는 같은 노동자 동료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벌이는 사업을 심의합니다. 전사 이익이 중요한 저는 그들이 법정 근로 시간 따위는 무시하고 열심히 일해서 회사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기를 희망합니다. 경영진은 제가 그 역할을 충실히 실행하기를 기대합니다.


주주와 갈등

또 하나의 갈등이 벌어지는 곳은 주주총회장입니다. 보통 IR담당부서에서 주주총회를 주관하는데 그들에게 주주총회는 1년에 한 번 치러야 하는 홍역 같은 연례행사입니다. 주총꾼이라는 왜곡된 문화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주총회장에 갈 때마다 ‘내가 주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맞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년 주주총회장에서 벌어지는 고성, 고함, 욕설에 대항해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주주총회에 가기 위해서 새벽같이 일어나 주주총회장을 향하는 발걸음은 3월의 새벽 날씨만큼 춥고 무겁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축제 같은 주주총회는 꿈도 꾸지 않지만, 그저 주주와 경영진 간의 건강하고 성숙하고 지적인 대화가 이어지는 주주총회를 꿈꿔 봅니다.

주주들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동료 사원들과 모순이 생기고 하지만 막상 주주총회에서 주주들과 모순을 일으킵니다. 주주와 회사와의 갈등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주들은 주주환원을 요구하고 회사는 사업을 하기 위한 재원을 주장합니다. 재무쟁이는 월급을 주는 회사를 지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재무쟁이는 주주를 위해서 일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경영진과 갈등

그렇다고 경영진이 이러한 모순적인 관계 속에서 힘들게 일하는 재무쟁이들을 항상 호의적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 집단이 지배계급에게 필요 불가결하지만 수상쩍은 존재이듯이, 재무 전문가는 회사에 필요한 존재인 동시에 사업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뉴욕 5번가에 초대형 호화 매장을 내려고 하자 애플의 CFO '조셉 그라지아노'는 비즈니스위크에서 “세상 사람들은 치즈를 바른 크래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잡스는 이들에게 캐비어를 내놓자고 고집한다. 이제 애플에 재앙이 닥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애플의 상징이 된 이 매장은 당시 재무쟁이가 보기에는 캐비어 같은 사치였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 눈에 조셉 그라지아가 곱게 보였을 리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재무쟁이는 ‘계륵’ 같은 존재입니다.


재무쟁이를 위한 변명


재무쟁이가 처한 모순은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쓴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식인이란 자기 자신 속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실천적인 진리와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을 깨달은 사람이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사르트르

대립과 모순을 깨닫고 특수와 보편의 갈등 속에 보편의 편에 들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의 불신 속에 그 누구로부터 위임장을 받을 수 없는 고독한 지식인처럼, 재무 전문가들은 동료 노동자로부터도, 주주로부터도, 회사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사르트르는 지식인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고 혜택 받지 못한 계급의 행동에 구체적으로 그리고 거리낌 없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재무 전문가가 처한 모순은 삼각 모순입니다. 첫 번째 모순은 앞서 말한 동료 노동자를 대변할 것인가 회사를 대변할 것인가의 충돌입니다. 두 번째 모순은 자본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가 아니면 노동자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가의 충돌입니다. 세 번째 모순은 회사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본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가의 충돌인데 이는 대리인 비용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대리인 비용을 축소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회사 내 지배계급으로부터 고용되어 있다는 모순입니다.

세 가지의 모순을 모두 떠안고 불쌍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재무쟁이입니다. 이 세 가지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어떤 지식인이 될지를 결정합니다. 당연히 회사 지배계급에 복종하는 사람이 승진은 제일 빠를 것입니다. 자본가 지배 계급에 복종하는 사람이 자본주의라는 시대 이념에 부합하는 지식인이 될 것이고, 노동계급에 충실한 사람은 사르트르가 말한 진정한 지식인이 될 것입니다.

재무쟁이인 제가 오늘도 불안한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 계급적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뿐 아니라, 이러한 다양한 모순들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정체성의 불안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무쟁이로서 살아가는 저는 인간의 모순을 내재한 채 살아가는 운명을 가진 연약한 피조물일 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타인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그날의 일도 분명 저의 일상의 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회사에 투자를 하거나 매각을 결정하는 일이 저의 일 중 하나입니다. 20년 넘게 회사의 그룹사로 있었던 A사를 매각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과거에 그룹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기술의 변화로 쓸모가 없어져 버린 회사입니다. A사는 규모도 별로 크지 않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저는 그 프로젝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매수자와 협상을 진행했던 부서에서 제시한 매도 가격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잔여 직원에 대한 위로금도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지급된다고 했습니다. 그저 저는 무심하게 매각 프로젝트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피켓을 들고 서있는 일련의 사람들을 회사 정문 앞에서 발견했습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날씨였습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직원도 있었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직원도 있었습니다. A사의 매각에 반대하는 직원들이었습니다. 헐값 매각이라느니, 고생하면서 회생 노력을 기울였던 그룹사를 매몰차게 버렸다느니, 경영진은 각성하라느니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처음에는 위로금을 더 받아내려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려니 했습니다.

저의 의심 없는 확신은 다음 날에도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A사직원들의 모습에 갈수록 희석되었습니다. 위로금을 더 받더라도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중에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들의 외침에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습니다. 돈과 상관없는 배신감.... 출근하듯이 거리에 나온 여느 노조원들의 모습과 사뭇 달랐습니다.

헤어져달라고 돈 봉투를 내민 남자에게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요? 나와 지낸 세월이 얼만데....”라고 말하는 여자 같았습니다. 저는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첫 회사를 떠날 때 느꼈던 기분이었습니다. 첫사랑 같았던 회사를 떠나던 날, 회사는 저에게 '정산'을 요구했습니다. 퇴직금이 어떻고 , 비밀유지 각서가 어떻고, 남은 대출금이 얼마고.... 등등등

회사에 투자하는 것은 사랑을 주는 것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그 안에 가장이 있고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을 조금씩 내어주는 일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만큼 그 사람은 조금 더 죽음에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재무쟁이가 간과하는 부분입니다. 목숨을 내어준 직원에게 ‘정산’을 요구합니다.

A사의 몰락은 생존에 정체성이 있을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보여 줍니다. 과거에 훌륭했던 회사가 그 '훌륭했음'을 그리워하고 더 이상 그 '훌륭했음'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버림을 받았다고 말하는 투정을 받아줄 이는 아무도 없다는 슬프지만 무시할 수 없는 '현실'말입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그 유명한 대사, '어떻게 사랑이 변해요?'라고 묻는 유지태의 질문에 이영애는 '사랑은 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변함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그들을 힐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배신감마저 힐난할 수는 없습니다. 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알면서도 그리고 자신도 변화하지 못하면서 재무쟁이들은 말합니다.

"왜 변하지 못했냐고? 왜 살아남지 못했냐고? 왜 내가 너를 버리게 만들었냐고? 나도 슬프다고...."

마치 연인을 떠나는 이의 비겁한 변명 같지만 재무쟁이가 하는 말을 비공식적인 언어로 환치하면 대충 이런 뜻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회사 정문 앞에 나와있는 A사 직원들을 보면서 저의 생각은 깊어집니다. 무심히 했던 저의 일상의 업무가 빚어낸 타인의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슬픔과 재무쟁이의 모순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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