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우 Oct 03. 2021

살아있는 숫자, 죽은 숫자

콩을 세는 남자

숫자를 믿는 사람들


초등학생 딸이 이차방정식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수식을 이용해서 푸는 방식과 그래프를 이용해서 푸는 방식을 보여주고 두 방식의 결과가 같음을 보여주자 너무 신기해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이 ‘와우!’ 표정을 짓습니다. 재미있을 리 없는 수학 문제를 풀면서 그런 표정을 짓는 딸의 모습은 숫자의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아주 가끔 발견하는 ‘와우!’의 순간에 느끼는 쾌락도 만만치 않습니다. 

재무쟁이는 숫자를 믿는 사람입니다. 제 딸이 그랬던 것처럼 숫자를 통해서 회사에서 ‘와우!’의 순간을 찾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회사의 경영이 마땅히 숫자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숫자는 회사 의사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미쳐야 할까요? 재무쟁이들의 바람과 달리 회사는 그렇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많은 욕심과 감정과 정치가 회사 경영에 녹아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이지요. 어떻게 보면 재무쟁이는 회사의 비합리성에 숫자라는 무기를 들고 맞서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재무쟁이들은 그렇게 무모한 사람들입니다. 

재무쟁이들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가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라고 불리는 공식을 만들어낸 ‘피타고라스’입니다. 세상에 유리수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그는 제자 히파소스가 이등변 직각삼각형의 밑변과 빗변의 비는 정수의 비율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무리수의 개념을 발견해내자 ‘우주의 섭리에 거스르는 요소를 만들어낸’ 히파소스를 죽였다고 합니다. 제자를 죽일 정도로 숫자에 대한 그의 피타고라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나머지 또 한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학파입니다. 가장 많은 노벨 경제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진 ‘시카고 학파’입니다. 시카고 학파는 세상의 모든 경제활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연륜이 있으신 교수님들은 대부분 케인즈 학파였고 소수의 젊은 교수님들을 중심으로 시카고 학파가 포진해 있었지만, 이미 세계의 경제학 트렌드는 수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카고 학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경제 활동뿐 아니라, 결혼 출산 등 사회 현상을 모두 경제학적 수학모델로 설명하려는 ‘게리 베커’라는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숫자가 절대적이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은 피타고라스의 사례와 최근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수많은 비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위험한 태도라는 것을 재무쟁이는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숫자를 신뢰할까요?


숫자의 쓸모


명료성

숫자는 우리에게 명확한 결론을 내려줍니다. 사업의 순현재가치(NPV)>0이면 사업을 해야 하고, 순현재가치(NPV)<0이면 사업을 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인간의 주체성을 믿는 편이지만 가끔 사람들은 놀랍도록 이런 명료성과 종속성을 좋아합니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면서 누군가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말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의사결정의 기준이 명확해서 행동의 혼선을 빚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도 수학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숫자가 주는 명료함때문에 수학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젊을수록 숫자에 매료되는 것은 아마도 그 시절이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명료하고 깨끗한 언어로 말하는 숫자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성

사람들은 숫자가 객관적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회계기준은 누구나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편견이나 편향이 없고, 회사가 달성해야 하는 최소한의 수익률은 가중평균 자본비용(WACC)이라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객관적 산출 로직이 있기 때문에 회사는 무조건 이 수익률을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자역학을 불신했던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 대한 설명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신이 우리의 세상을 그렇게 허술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 같다.’

숫자를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아름답고 객관적 수학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통제 가능성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안합니다. 특히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일수록 그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재벌 총수들이 점집을 제일 자주 간다는 이야기는 그들이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얼마나 큰 불안을 안고 살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들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어 줄 수 있는 것이 숫자입니다. 회사의 숫자를 보고 분석함으로써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숫자로 표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불안을 통제하기 위한 혹은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있는 숫자, 죽은 숫자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선생님께 귀가 닳도록 들은 말씀이 있습니다. ‘답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만 보지 말고 풀이 과정을 음미하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계산을 정확하게 해서 답을 맞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숫자 사이에서 흐르는 논리를 이해하고 그 아름다움을 맛보라는 의미였을 거라고 선생님의 나이가 된 저는 해석합니다. 그렇게 해야 정답을 맞혔는지와 상관없이 내가 푼 숫자는 살아있는 숫자가 됩니다.

경영학에서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 잠언이 있습니다. 바로 피터 드러커가 말한 ‘계획은 쓸모가 없지만 계획을 세우는 행위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Plan is useless, Planning is priceless.)’입니다. 계획은 항상 현실과 어긋날 수밖에 없지만,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사업에 대한 통찰과 그 통찰로 만들어진 숫자는 가격을 매기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 매년 연말에 다음 연도 사업계획을 세우고 중장기 사업계획을 세웁니다.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일은 흥미롭기도 하고 내가 왠지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혹은 미리 아는 아주 중요한 포지션에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기도 합니다. 사업 전망을 하는 행위는 숫자를 통해 회사를 통제하겠다는 의지 표시 이기도 하고 숫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업 계획은 전술한 대로 경영진이 회사 경영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믿게 합니다. 

사업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재무쟁이들이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재무쟁이들은 차년도 혹은 중장기의 예상 매출과 영업이익을 추정합니다. 숫자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경영진이 만족해하는지 일단 눈치를 봅니다. 그리고 ‘경영진의 해답’을 도출하기 위해서 다시 계산을 합니다. 오답을 정답으로 만들기 위해서 죽은 숫자들을 계획에 집어넣습니다. 앞에 말한 수학에서 답만 확인하는 것이고 피터 드러커가 말한 계획(Plan)만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이런 식으로 표면적으로 일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숫자는 죽은 숫자입니다. 숫자가 생명력을 얻고 스토리를 갖기 위해서는 숫자 사이에 흐르는 논리와 계획하는 행위(planning)에서 얻어지는 통찰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이렇게 잘난 척 말은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숫자 보는 사람이 시장과 산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꿈을 꾼대로 인생이 살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꿈을 꾸는 가운데 행해지는 노력과 꿈을 이루기 위해서 생각하는 힘은 그 꿈이 설사 이뤄지지 않더라도 인생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습니다.

재무쟁이들은 전망을 계속해야 합니다. 전망이 맞는지 틀리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인공지능(AI)은 우리보다 더 훌륭한 전망을 내놓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망하고 계획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회사에 대한 이해와 통찰은 인공지능이 뺏을 수 없는 수중한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Big Data) 시대가 되면 수학의 답만 확인하고, 매출과 영업이익만 체크하는 일이 반복될까 걱정입니다. 


인문과 살아있는 숫자


숫자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지식과 마찬가지로 숫자 혼자만으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숫자에 다른 숫자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숫자에 숫자가 아닌 어떤 것이 더해져야 힘을 발휘합니다. 앞서 <재무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재무와 회계에 관한 역사적 교훈이 있다면, 재무와 회계를 단독으로 발전시키지 않고 전반적 문화의 일부로 이용할 수 있었던 사회가 번성했다는 것입니다. 제노바와 피렌체 같은 이탈리아 도시 공화국과 황금기의 네덜란드, 18,19세기 영국과 미국은 모두 회계를 교육과정과 종교적 도덕적 사상과 예술, 철학, 정치 이론에 통합시켰습니다.

숫자는 다른 인문적 요소와 결합되어야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재무를 하는 사람의 인문적 깊이가 깊어야 합니다. 숫자에 숨겨진 인문적 의미를 스토리텔링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전달해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재무쟁이가 분석한 숫자는 살아있는 숫자가 됩니다. 무미건조한 죽은 숫자를 틀에 맞춰진 보고서로 전달하는 형식으로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재무적 숫자를 어떻게 스토리와 연결시키고 타인과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전 10화 타인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