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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Oct 07. 2021

인수합병(M&A)과 결혼

콩을 세는 남자

기업의 욕망 인수합병(M&A), 사람의 욕망 결혼


회사를 운영하는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에 회사의 행동은 인간의 행동을 닮습니다. 법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운영하는 법인은 법인격을 갖고, 법인격은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격을 닮아간다는 이야기죠. 인수합병은 기업 간의 결혼입니다. 인간의 결혼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인수합병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지만 일단 해보라는 기업의 의사결정입니다. 실제로 기업에서 인수합병 의사결정을 할 때 인간이 결혼할 때 못지 않게 치열한 찬반 논쟁이 벌어집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그때 하지 말았어야 했다.’라는 후회보다 ‘그때 했었어야 했다’라는 후회를 더 못 견딘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처럼 기업들은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조바심, 무능한 경영진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욕구 등 다양한 이유로 많은 인수합병을 시도하지만 더 많은 실패로 좌절하고 후회합니다. 

사람들이 운영하는 기업도 사람의 욕망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인수합병과 결혼은 많이 닮아 있습니다. 결혼의 이유와 형태가 다양한 것처럼 인수합병도 사람들의 결혼 못지않게 다양한 이유와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결혼이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영원히 살게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 때문이듯이, 기업도 영원히 지속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인수합병을 합니다. 회계학에서는 이것을 계속기업(going concern)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인수합병은 혼자서는 영원할 수 없는 인간과 비슷한 숙명을 가진 기업이 자신의 영속성에 도움이 되는 파트너를 찾는 행위입니다. 

막장 드라마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연애와 결혼입니다. 기업의 스토리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인수합병입니다. 사람들은 남들의 연애사와 결혼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결혼입니다. 결혼식을 올리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해서 잘 사네, 못 사네, 누가 바람을 피웠네, 내가 그럴 줄 알았네, 몰랐네, 입방아는 멈추지 않습니다. 만일 이혼이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의 관심은 극대화됩니다. 남들의 결혼만큼 세간의 주목을 끄는 것이 회사의 인수합병입니다. 인수합병을 통해 결혼하고, 결혼을 잘해서 흥하고, 못해서 망하거나 이혼하는 이야기는 아침 드라마만큼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할 때 ‘쟤 둘은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커플이 있고, ‘왜 쟤 둘이 결혼하지?’라고 느껴지는 커플이 있습니다. 재무쟁이는 두 회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이 결혼이 어울리는 결혼인지 어울리지 않는 결혼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어울리지 않는 결혼일 경우, 결혼식에 가서 ‘이 결혼에 반대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수합병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인수합병(M&A)의 형태


인수합병은 보통 상대 회사의 경영권을 가져오는 투자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넓게 보면 다양한 형태의 투자가 있습니다. 소액의 지분, 예를 들어서 10%-20%의 지분만 투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본사의 자체계정으로 투자하기도 하지만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펀드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투자는 일종의 '썸 타기'입니다. 일단 너랑 나랑 맞는지 한 번 보자는 눈치보기입니다. 지분을 반반씩 섞는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는 '동거'입니다. 결혼은 하고 싶지만 결혼 생활을 이어갈 자신은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동거를 합니다. 생활비도 똑같이 내고 모든 물건의 소유권을 명확하게 하는 동거인들처럼 조인트 벤처의 지분율은 51:49 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알고 결혼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가설을 조인트 벤처는 실현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인트 벤처는 결혼에 대한 인간의 신중함 내지는 소심함을 대변하는 투자형태입니다.

과반수 이상의 지분을 가져가는 인수합병이 진정한 의미의 결혼입니다. 신혼 초에는 같이 잘 살아보자는 의지가 강하지만 그만큼 후유증도 많이 생깁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급여 체계, 점령자와 피 점령자 간의 묘한 정치 관계 등 막 결혼한 신혼부부들처럼 인수합병 후 극복해야 할 과제는 굉장히 많습니다. 이 단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졸혼의 단계로 접어드는 기업도 많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실질적으로 따로따로 사는 것이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사업하자는 것입니다. 

사람은 평생에 한 번, 많아야 두세 번의 결혼을 경험하지만 기업은 수많은 결혼과 이혼을 경험합니다. 결혼의 반대 형태가 이혼이라면 인수합병의 반대 형태가 분할입니다. 같이 사는 것보다 따로 떨어져서 사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더 좋을 것 같다는 상호 간의 합의입니다. 이혼할 때 양육권과 재산권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듯이 분할을 할 때에는 어떤 자산을 들고나가고 어떤 자산을 남겨두고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쟁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꿈꾸지만 자식에 대한 걱정과 홀로서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것처럼, 분할은 인수합병보다 빈번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불법이지만, 자식 간의 결혼도 인수합병의 세계에서는 가능합니다. 그룹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자회사들 간에 합병하는 것이죠. 이 경우 자식들은 더 많은 것을 얻어내고자 부모님을 쳐다봅니다. 누구를 더 사랑하냐고 묻습니다. 부모는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냐고 말하지만 자식들의 불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재무쟁이의 인수합병(M&A)


인수합병을 할 때 재무쟁이의 역할은 결혼 상대자가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평가하는 일입니다. 이 사람이 나를 잘 먹여 살려 줄 수 있을지, 자식을 나중에 훌륭하게 잘 키워낼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신부와 신랑처럼 재무쟁이들은 이 회사와 결혼하면 내가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지 고민합니다. 숫자만 보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결혼할 때 상대방의 인성과 성격을 보는 것처럼, 그 회사의 경영진의 도덕성, 기업가 정신, 기업 문화 등 정성적인 부분도 함께 평가합니다. 실제로 서로의 이익만 고려한 결혼이 대부분 실패로 끝나듯이, 정성적인 평가를 무시한 인수합병도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무쟁이들이 숫자에만 밝아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이해 없이 결혼이 성공하기 힘들듯 회사에 대한 이해 없이 숫자에 의해서 결정된 인수합병 역시 성공하기 힘듭니다. 

인수합병에서 재무쟁이의 또 다른 역할은 결혼정보회사 역할을 하는 인수합병 중개 회사와 협업하는 일입니다. 결혼 상대방을 찾아주는 일뿐 아니라 결혼 상대방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내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에 도움을 받습니다. 거간꾼은 결혼 시장의 중매쟁이처럼 직업상 숙명적으로 상대방을 과대 포장합니다.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거간꾼과 협업을 해야 하지만 좋은 관계 형성을 통해서 상대방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혼 후 사랑과 배려 없이 결혼 생활이 이어지기 힘들듯이,  인수합병 후 피인수 기업에 대한 인수기업의 배려도 필수적입니다. ‘잡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는 사람이 어딨냐?’ 흔히 결혼 후 친구들끼리 하는 농담입니다. 이제 내 사람이 되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은 곤란합니다. 인수합병 후에 소위 PMI(Post Merger Integration)이라는 것을 합니다. 결혼 후 어떻게 같이 잘 살지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통장도 합치고 생활 계획과 자녀 계획을 만듭니다. 이 단계에서 흔히 저질러지는 실수가 점령군의 횡포입니다. 피합병 법인의 문화를 바꾸려 한다거나 승진에서 제외시키고 평가에 인색한 경우입니다. 속국의 왕이 로마의 왕으로 추대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로마처럼 피인수 기업의 사장이 인수기업의 수장이 되는 사례도 나와야 합니다. 


성공을 위한 인문적 인수합병(M&A)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제가 인수합병(M&A)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친구가 말했습니다.

“넌 왜 그렇게 남의 것을 뺏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중세를 그리워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돈만 좇고 사는 것에 불만이 많았던 그 친구는 한심하다는 듯이 저를 쳐다봤습니다. ‘탐욕은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영화 <월스트리트>의 ‘미스터 게코’ 같은 기업 사냥꾼들이 미국에서 대활약을 하던 시대에 인수합병에 대한 공부를 했으니 그런 오해가 있을 법합니다. 모든 금융기법이 그렇듯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기술이 그렇듯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업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선을 논하기가 그렇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선에서 인수합병을 활용한다면 서로에게 윈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혼을 제외하고 결혼생활이 너무 좋아 죽겠다는 커플이 흔하지 않은 것처럼, 성공한 인수합병은 의외로 찾기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너무 멋져 보여서 비싼 가격에 매수하고 그 비싼 가격을 시너지 효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매수자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이렇게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시너지를 계산하고 그 가치를 반영해서 매수가액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듯이 기업도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업을 바꾸는 것은 엄청난 진정성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것을 감내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런 신중한 고려 없이, 허세많고 돈 많은 남자가 어리고 예쁜 신부를 맞이하듯 회사를 과도하게 비싼 가격으로 사서 관리도 못하고 손을 드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어리고 멋지다고 해서 나에게 맞는 결혼상대가 아닐 수 있고, 상대방이 나의 생각대로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성숙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손자가 말한 것처럼 상대를 아는 것 못지않게 나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상대방을 아는 것보다 나를 아는 것은 훨씬 어렵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주위에 물어볼 수도 있고 거간꾼들에게 평가를 맡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설사 친한 친구가 솔직하게 이야기해줘도 나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공한 결혼과 마찬가지로 성공한 인수합병은 자신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재무쟁이들이 회사의 숫자에 능할 뿐 아니라, 회사와 동료들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성찰이 깊은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저런 인수합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상념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결혼을 잘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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