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우 Aug 22. 2021

돈! 돈! 돈!

콩을 세는 남자


저의 첫 책은 <회사 인간의 인문적 성공>이었습니다. 샐러리맨이 회사에서 접하는 문제를 인문학적 텍스트로 풀어내 보려고 시도했던 책입니다. 이번에는 재무와 인문학을 연결해보려는 시도로 이 책을 쓰면서 인문학에 대한 글을 쓸 때보다 재무에 대한 글을 쓸 때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재무에 대한 지식을 글로 풀어내라면 얼마든지 써낼 수 있지만 매일 하는 업무에 인문적 의미를 담아내기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제가 재무 업무를 생각 없이 수행했다는 뜻이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교조적으로 업무에 적용하는 것에만 급급했다는 뜻이고, 일과 인생이 따로 놀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재무가 밥벌이 수단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돈을 다루는 재무업무를 하는 저에게 '돈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돈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돈에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재무쟁이의 역설이라고 할까요? 돈은 차갑게 다뤄야 합니다. 흔한 말로 돈은 도구여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생각은 돈의 역할은 무엇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하게 합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모두가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돈을 더 풀어 빈부의 격차가 더 심해지는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제가 경제학을 공부했고 재무업무를 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연봉도 높고 재테크도 잘해서 가외 수입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불행하게도 저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보면 저의 개인적 성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타고난 범생이에다가 고지식한 성격이라 공부한 대로만 투자하려 했고 과거에 경험한 것을 현재에도 적용해서 투자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죠. 나름 벤처 기업에서 일하기도 했고 스타트업 투자 심의도 많이 해서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 많이 봅니다만, 개인투자를 하려고 할 때에는 ‘꼰대’같이 투자를 합니다. 뭐, 타고난 팔자려니 하고 지금은 포기하고 삽니다.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재테크를 잘하시는 분들은 재무 실력과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서점에 있는 모든 경제와 재무와 재테크에 관한 모든 책을 읽는다고 해도 아마 재테크를 통해서 돈을 벌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약간은 약삭빠르다로 느껴지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재테크에서 좋은 실적을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돈’에 미쳐야 합니다. 제가 20, 30대에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절실한 사람이 결과를 이루는 것은 돈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저의 인생에서 발생한 돈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가져온 두 가지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사건 1. 돈과 우정 사이


돈에 대한 저의 태도는 어떤 시점을 계기로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20, 30대 때에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니던 인터넷 회사에서 돈을 더 벌고 싶어서 금융권으로 직장을 옮겼고 안 해본 재테크가 없었습니다. 물론 홀몸이었기 때문에 투자금도 넉넉했습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투자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금융제도와 정책이 허술한 부분이 그때는 훨씬 더 많았습니다. 시장이 좋은 시절이라 투자 수익은 좋았고 그만큼 저의 생활도 방탕해졌습니다. 건강도 안 좋아졌습니다. 지금보다 10kg 더 나가는 몸뚱이를 감당하지 못해 허덕허덕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돈에 대한 제 태도가 완전히 바뀐 계기는 건강이 아니라 친한 친구를 잃고 나서였습니다. 친구들과 돈을 모아서 펀드를 운영하던 중 돈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불알친구들을 잃었습니다. 돈 때문에 친구들을 미워하는 제 자신에게 더 화가 났습니다. 친한 친구 하고는 같이 살거나 사업하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정말 맞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타임머신이 있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친구들과 펀드를 운영하던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어느 날 고급 술집에서 진탕 취하고 ‘내가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입은 금융권에 있을 때 비해서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금융권 생활을 접고 다시 인더스트리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사건 2. 위험한 인문학 공부


돈에 대한 저의 태도가 변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인문학이었습니다. 모두가 철학자가 된다는 40대에 접어들었고,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기초가 너무 없던 저는 요즘에는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기본적인 고전 책부터 읽어야 했습니다. 그때 제가 정말 무식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소위 인류의 보고라고 고전에 대해서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을까? 인문학 서적이라고는 대학교 때 읽은 책 몇 권이 전부였던 저에게 인문학 책은 그야말로 세상과 저를 새롭게 보는 안목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인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동안 꿈꾸었고 재무통으로 살아가기로 했던 저인데 돈과 돈을 다루는 재무업무가 너무나 비루하고 하찮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회사에서 사업부서와 예산 때문에 싸우는 것도 비참하게 느껴졌고 과거에 우러러보던 투자 잘하는 사람들도 하찮게 보였습니다. 친구들이 모였을 때 부동산과 주식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한심하게 보였습니다. '얘들은 이 나이 먹어서도 돈에 미쳐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동산과 주식 뉴스를 일부러 피하게 되었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소원해졌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해서 돈을 더 많이 벌었다는 사람도 있지만 저의 경우는 돈이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느껴져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돈과 성공을 위해 직진했던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두려운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돈에 대해서 혐오가 들기는 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아는 게 도둑질이라 재무쟁이로 회사에서 경쟁력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꿈꾸어왔고 직업으로 해야 하는 일이 하찮게 느껴지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돈은 제 일과 일상에 너무도 깊숙이 묻어 있었고, 저의 일과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돈에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회사에서는 돈! 돈! 을 외쳐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저는 처해있었습니다. 출입증을 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는 순간부터 돈을 계산하고, 돈을 집행하고, 돈을 쓴 결과를 평가하는 일을 합니다. 왜 이렇게 비용을 많이 쎴냐, 돈을 썼는데 실적은 왜 이러냐, 등등 돈! 돈! 돈! 을 외쳐야 하는 일을 합니다. 돈에 대한 회의와 인문학에 대한 동경과 돈에 관한 업무가 마찰을 일으키는 하루하루가 지속되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위안을 해보기도 했지만 저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느낌도 들었고 그동안 해왔던 공부와 열정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참담함이 느껴졌습니다. 저같이 하찮은 사람을 대문호에 비교해서 죄송합니다만, 톨스토이가 자신의 젊은 시절 방탕했던 생활을 반성하면서 <참회록>을 쓸 즈음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가볍지만 필요한 인간의 무늬


인문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고 합니다. 자본주의와 돈도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결과입니다. 인간의 추한 모습도 인간의 모습 중의 하나이고, 돈도 저급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돈을 바라보는 일은 인간에 대한 이해 특히 1차적 본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우리는 고차원적 욕구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런 생각을 하면 저의 돈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완화됩니다. 저의 일에 조금이나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위안해 봅니다. 

흔히들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하는 것 중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직업을 위해서는 잘하는 것을 하세요.’ 당신이 가장이라면 대답은 더 명확해집니다. 당연히 내가 잘하고 그래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두 가지 선택 중에 갈등합니다. 덕업 일치를 하신 분들은 복 받은 분들입니다. 대부분은 저처럼 두 가지 선택 사이에 여전히 갈등하고 계실 겁니다. 모두에 말씀드렸듯이 이 책은 일에 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서 이런 갈등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제 노력의 산물입니다. 저 역시 이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전 장의 <나의 두 형님>이라는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무라카미 하루키’와 ‘워런 버핏’이라는 두 인물로 표상되는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왔다 갔다 합니다. 아마도 이 방황은 평생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전 08화 나의 두 형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