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명절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명절은 아무리 간편한 집이라 해도 명맥을 유지하는 한, 왔다 갔다 하며 여럿이 어울리다 보니 즐겁든 아니든 에너지 소모가 있다.'내가 편한 곳에선 쟤가 불편하고 쟤가 편한 곳에선 내가 불편한',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게 명절의 본질에 가깝다. 어느 쪽에서든 용돈 받는 아이들이나 그저 즐거울 뿐이다. (이것도 아이들 이야기 들어봐야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쓰레기 아빠 때문에 명절에 어디 가서 용돈 받는 경험도 없다가 결혼 후 갑자기 명절이 생겨서 신혼 때는 명절마다 두통과 소화 불량에 시달리다가 점차 적응되었다. 그럼에도 명절 후에는 꼭 아이가 아파서 병시중으로 마침표를 찍기에 명절이 다가오면 긴장된다. 그 긴장을 풀고자 명절 직전에는 소소히 뭔가 사거나 친구를 만나든 혼자든 즐기는 시간을 가진다. 그딴 걸로는 될 일도 아니라며 울분 토하시는 분들에게는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는 바… 명절이나 가족 등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고통받는다면 아무리 흔들어 재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장착하고 굳건할 수밖에 없다. 혁명을 하든 버티는 거든 모두 건투를 빈다. 나는 기꺼이 혁명분자가 되었고 평안에 이르렀다. 오늘은 나의 혁명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인생도 정치 아닙니까 !
이번 명절은 아이가 안 아프다 싶더니 결국은 불문율인 건지 학교 잘 다니다가 갑자기 이틀 내내 열보초를 서다 결국 처음으로 학교도 결석했다. 다들 명절 후유증 지나간 마당에 뒷북 제대로다. 병원에 가보니 수족구 사촌병인 헤르판지나라는데 이름도 요상하고 주사도 맞아야 했다. 병원에 다녀온 후 호전된 상태인 듯 며칠 만에 아이가 밥을 제대로 먹길래 꾸역꾸역 매트를 깔고 덤벨 2종을 세팅 후 운동 채널을 켰다. 새벽 열보초로 지쳐서 자고 싶지만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지가 이기고 만다. 본 운동만 1시간 꽉 채우고 나니 오늘도 SUCCESS! 운동을 하는 시간만큼은 아이가 아프다는 것, 내일은 애가 학교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안 하고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명료하게 성공하는 걸 매일 반복하면 언젠가 뭐든 다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법무사 시험은 반의 반 정도 접었고 글 쓰고 콘텐츠 짜는 건 재밌으면서도 불안하지만 운동만큼은 목적 달성 후에도 지속하는 가장 안정적인 루틴이다. 돈 안 들이고 스스로 스케줄 짜서 탄수화물 좀 줄인 거 외에는 특별한 식단 없이 맨몸운동에서 덤벨 중고급자 레벨로 발전해 왔다. 8개월 동안 59kg->47kg, 체지방 28%-> 19%, 근육량 현저히 부족->표준까지 도달했고 목표 도달 후 2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운동하며 유지 중이다.
그래도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치고는 훌륭한거죠?
남편은 늘 심드렁하게 관심 없는 듯 굴었지만 막상 어디 가면 자랑했다. 변한 내 몸 말고 강인한 정신을. 그리고 엄청 아쉬워했다. 그간 혼자만의 힘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잘 찍어뒀으면 벌써 못해도 돈 천만 원은 벌었을 것이라며. 다시 날씬해진 것도 좋지만 설거지 하나, 청소 하나 할 때마다 1교시 2교시 사이 쉬는 시간처럼 쉬어야만 했던 저질체력에서 이제는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꼭대기층 집에 잠든 초1 딸을 업고 빅백을 매고 장본 짐꾸러미를 들고서 거뜬하게 올라가며 전혀 안 힘들 만큼 강해진 게 더 좋다. <유퀴즈 온 더 블록> 게스트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가 말했다. 마흔 전에 뺄 살 다 빼고 근육 만들 거 다 만들어놓은 후 그걸로 노년까지 쭉 건강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법무사 시험은 불합격이지만 신체건강에 대해서는 마지노선을 잘 타고 합격한 셈이다. 평생 스테디한 몸과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품격 있게 무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그렇게 변하면 주변도 오래도록 꾸준한 태도와 정성을 유지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이제 체지방 15% 이하, 근육량 우수 수준이 목표라고 했더니 친구가 '왜 꼭 그래야 되는데'. ㅋ 40대 일반 아줌마 기준으로 지금까지는 30점짜리가 90점이 되는 목표에 성공한 거라면 이제 90점에서 100점을 노리는거라 꾸준히 운동함에도 계속 유지만 될 뿐 영 쉽지 않다. 혼자되는 수준의 정점은 찍은 듯하고 지금 목표를 위해서는 식단도 제대로 하고 돈 들여서 세밀한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 같지만 운동에 돈 들이고 먹고 싶은 거 참을 생각은 없다. 내심 현상 유지만 잘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저녁식사를 일찍 마치고 남편이 넷플릭스 영화 <맵고 뜨겁게>를 보기에 무심히 옆에 앉았다가 지금까지 내가 해온 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더 빡세게 해야겠구나 하면서 다시 정신줄을 바짝 당겨 잡았다. 영화를 빗댈 뿐 리뷰 아니고 본론은 따로 있으니 고고.
와 � 마지막 단계 저 몸,CG 아니더라
이 영화를 위해 배우 자링은 6개월 만에 50kg 이상 감량하며 복싱을 연마했다. 운동을 나름 열심히 하고 있어서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기까지 얼마나 힘든지 감히 조금은 알기에 박수가 저절로 쳐졌다. 삶이 무기력하다 못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안 나오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참 뻔한 주제고 심지어 중국영화지만 편견을 거두고 볼만한 괜찮은 영화다. 원작인 일본 영화 <백 엔의 사랑>보다 훨씬 유머러스하고 결말을 보여주는 텐션도 원작과 달리 경쾌하다. 다 떠나서 여배우가 처음에 고도비만이었다가 온몸에 잔근육이 잡힌 마른 근육형으로 바뀌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감동 안 할 수가 없다. 영화가 끝난 후 에필로그로 보여주는 배우 자링의 혹독한 감량과정을 보면 아마 다들 내가 지금 뭐가 힘들다고 지랄인 걸까 저절로 반성하게 될 것이다. 여자 인생은 예뻐져야 편다는 게 아니라 강해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방향 없이 매일 똑같은 삶에서 어느 날 갑자기 미친 듯이 노력하면 어떤 게 달라지는지, 그렇다고 현실이 동화 같이 다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도 뭐가 남는지 보여준다. 인생이 바뀌는 계기는 여러 가지인데 운동처럼 아주 단순하고 강력한 신체적 몰입이 인생의 코어처럼 어떤 것도 잘 해낼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온갖 경험이 많다 보니 영화나 책을 보다가 자꾸 내 이야기 같다고 느끼곤 하는데 영화 속 주인공 두러잉이 복싱을 통해 자기 확신을 갖게 되는 걸 보면서 또 '이거 내 이야기잖아?'했다. 최근에 아이 키우며 시간 쪼개서 4년을 공부했지만 법무사 시험에 실패했고, 혼자 운동해서 8개월 만에 성과를 얻었고, 지금은 글을 쓰고 콘텐츠 사업을 짜고 있지만 어찌 될지 모르는 이 모든 과정을 성공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두러잉처럼 나도 아이 키우며 집에 있는 삶이 지루해 미칠 것 같다가 공부와 운동, 글쓰기에 순차적 또는 동시에 몰입하면서 꽤 즐겁게 살아갈 힘을 얻었다. 목적하는 바가 두러잉처럼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갈 힘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면 난 이미 성공한 거다. 일단 실패한 공부든 지금은 막연한 글쓰기와 콘텐츠 사업도 결국엔 잘 해낼 것 같다는 자기 확신이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한 채 갖는 확신이 아닌 부단히 애쓰며 가지는 확신이다. 그리고 내가 진짜 성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하는 건 따로 있다.
긍정 짤의 클래식
두러잉은 부모님 집을 나와 이쪽 창문을 열면 저쪽 창문도 덩달아 열리는 짠한 집에 살게 된다. 그 집의 구조를 보면서 단지 짠하기보다는 절망이나 좌절이 이쪽 창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반드시 저쪽 창문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끝까지 해보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두러잉이 도무지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없어서 집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지만 죽지도 못하고 아프기만 하다며 우는 걸 보면서 과거에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선택을 하려 했던 내 모습도 아프게 떠올랐다. 온갖 경험 많은 거 맞다 진짜. 특히 공감한 건, 자살시도를 했으나 실패한 경우는 아무도 알 길이 없다는 것. 너무 슬프지 않은가? 막말로 죽으면 애도라도 해주지만 미수에 그치면 그저 혼자 아프고 어디에 말도 못 한다. 열심히 잘 살다가 가끔씩 힘들다는 말이야 얼마든지 들어주지만 ‘나 어제 자살하려고 했어’ 그런 말은 누구라도 들어주기 힘들지 않은가. ‘내 삶은 왜 계속 이런 거지’ 그런 생각에 빠져 있으면 뭐가 바뀔까? 당장 바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바로바로 해내다 보면 바뀐다. 어차피 살 팔자라면 그냥 단순하고 발랄하게 잘 살 궁리를 해야 한다. 고찰이나 통찰 같은 건 나중에 뭔가 되고 하는 게 더 멋있다.
내가 진정으로 이기고 성공한 건 바로 매일 나를 지옥에 몰아넣는 쓰레기 아빠를 완벽하게 버린 것이다. 같이 사는 동안 맞서기도 해 봤고 도망가자고 엄마를 설득해 봤지만 더 큰 화를 당할까 두려운 엄마는 눌러앉곤 했다. 때로는 지 기분에 백 중 한 번 즈음은 아빠 같던 시간과 그때 당시는 가정 폭력 신고 따위는 먹히지도 않던 것까지 더해져 21년을 버티다 드디어 준비가 다 된 어느 날, 그 쓰레기를 버렸다. 이제 버려진 채 부패되어 아무리 악취를 풍기고 물이 되어 흐른다 한들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아무리 무력으로 뭔 짓을 해도 난 너와는 다른 인생을 살 것임을 보여줄 거다. 주변 누구에게도 딸이 있다는 사실조차 말 못 하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망가진 삶 그대로 살다 죽기를, 대부분 너의 죽음에 관심이 별로 없기를 기도한다. 사실 기도할 필요도 없이 뻔히 그럴 테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깨끗한 아파트로 이사 갔다. 엄마는 늘 누렇고 거무튀튀한 단칸방에서 살다가 투명하기까지 한 베란다 문이 적응이 안 돼서 신나게 집안일을 하다가 닫힌 베란다 문이 열린 줄 알고 들어가다가 머리를 세게 박고 나자빠져 한껏 웃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은 잠시 반짝였을 뿐, 어느 날 하교 후 집에 와서 난장판이 된 집을 헤집고 안방에 조심히 들어가 보니 흰 벽에 피가 묻어 있고 엄마가 반은 기절한 걸 보고 그 나이에 눈이 돌았다. 밤이 되어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늦은 밤 집에 와 내 방에서 자는 아빠를 죽이려고 일단 안방에 엄마가 잠든 걸 확인한 뒤, 주방에서 식칼을 꺼내 들었다. 그 많은 칼 중에 식칼을 든 거부터 미스 초이스지만 아무튼. 방문을 여니 아빠의 코 고는 소리와 혼자 떠드는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고 그보다 더 크게, 내 심장 소리가 들렸다. 한두 발자국 아빠에게 가까워지면서 물리적인 성공 가능성을 따져봤다. 저 거구를 완전하게 찌르려면 내 힘으로는 되려 화를 당하겠구나 싶어서 관두고 나와 주방에 칼을 돌려놓은 뒤 밤새 숨죽여 울었다. 하마터면 그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배울 뻔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 한다면 21년간 맞고 산 거, 20대 후반의 투병기, 엄마와 둘이 가난했던 시절이 아니라 새벽녘 주방에 주저앉아 밤새 울던 11살의 나를 꼽겠다. 눈이 돌았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다는 걸 몸소 경험하기엔 많이 어린 나이였다.
물론 나보다 더 미칠 것 같은 집구석도 있어요.
무슨 아이가 그렇게 잔인하냐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매일같이 겪는 그 지옥을 전혀 상상도 못 할 만큼 유복하게 자란 당신은 참 다행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저녁 즈음이면 저벅저벅 다가오는 아빠 발걸음 소리에 오늘은 무사히 지나갈지 걱정하며 꼬투리 잡힐 건 없는지 집안을 미친 듯이 둘러보며 안절부절못한 적이 없고, 매일 밤 엄마가 나를 두고 도망가는 건 아닌가 하고 수시로 엄마의 이부자리를 더듬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바라는 게 아닌 그저 과거의 이야기 일 뿐이다. 명절이나 가족 같이 누군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 끝나지 않는 것이 하필 지옥일 때 그저 참고 인내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망쳐도, 그 안에서 다른 방법을 아무리 해봐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악화되고 있다면 혁명뿐이다. 난 되려 치기 어렸을지는 몰라도 작은 소녀임에도 엄마와 자신을 지키려 했던 강한 의지와 결정적으로 물리적인 성공 가능성을 체크하여 관둔 부분 모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빠는 자기와 다르게 화목하고 건실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을 너희들 다 내 한 주먹 거리도 안 된다며 까 내리곤 했다. 어린 내가 봐도 참 한심했고 창피했다. 그렇게 멀쩡한 친구들은 다 떠나고 세월이 흘러 친구라고 누구를 어쩌다 데리고 오면 그 인간도 참 답이 없어 보였다. 사는 게 그러하니 직장 생활이라 할 것도 딱히 없었다. 벌다 말다 하다가 엄마를 걷어차며 돈 벌어오라고 육갑을 떨던 최악의 쓰레기. 결국은 내 기억에 아빠는 아무도 주변에 없었고 집착적으로 나와 엄마를 패고 살았다. 엄마나 나에게 귀책사유 같은 건 없었다. 다 자기 혼자만의 이유였고 자기 인생을 자기가 꼬아놓고 화풀이를 해댄 것뿐. 그 순한 엄마가 웬일로 차라리 그냥 죽이라고 칼을 줬을 때는 허공에 휘두르다 별거 못하고 진땀을 비 오듯 쏟다가 욕지거리를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하찮은 겁쟁이였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그런 쓰레기에게서 태어났지만 쓰레기로 살지 않았다. 아빠와 달리 화목하고 평탄한 가정에서 자라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아는 친구들이나 힘들게 자랐어도 밝고 건실하게 잘 사는, 나와 리듬이 같은 친구들과 어울렸다. 살아온 게 그래서인지 쓰레기 냄새에 좀 예민해서 친하다 가도 정신 상태가 썩었다 싶으면 가차 없이 버렸다. 친구들은 내가 무자비한 폭력과 훗날은 가난과 병마를 거친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높게 봐주고 나는 그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얻고 함께 배우며 살고 있다. 그리고 쓰레기 옆에는 쓰레기가 쌓인다고, 익숙한 그 냄새를 못 이기고 쓰레기인 줄 모른 체 급히 기대어 속아 쓰레기 같은 남편을 얻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여자들이 종종 저지르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쓰레기가 나까지 엮어 묶으려고 짓눌렀지만 안간힘으로 튀어나와 나 자신을 힘겹게 사랑하며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다르게 살아야 함을 잊지 않았다.
또 시작이다 할 때마다 절대 얼굴은 다치지 않으려고 복싱 선수처럼 가드를 올리고 최대한 몸을 말고 버텼다. 아마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눈물 콧물 흘린 건 주인공의 자아 성장기는 둘째치고 복싱 기본자세 자체가 즉각적으로 아프게 다가와 서였다. 아무리 멍들고 피가 나고 문드러져도 세월은 모든 걸 이겨내는 법이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러다 고2 어느 날 아, 가드를 잘 올렸어야 했는데! 방심한 사이 거구의 발길질이 턱에 명중했고 그날로 턱관절뼈 한쪽이 없어졌다. 며칠간 음식 먹을 때마다 턱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박살 난 건지 이탈한 건지 이제 진단 내용이 잘 기억 안 나지만 그때 치과 의사는 인공 관절 삽입을 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고 사실 사는데 불편한 건 크게 없으니 비보호 항목이긴 하다며 관절 보조 치료용 보호 교정기를 추천했다. 맞아요. 사는데 가장 불편한 건 턱관절뼈 하나쯤 없는 게 아니라 아빠죠. 엄마는 울면서 그 비싼 교정기를 맞춰주었지만 처음엔 아프더니 점차 교정기도 불편해서 나중에는 잘 안 하게 됐다. 난 지금도 남들과 식사를 할 때면 관절이 있는 다른 쪽으로만 먹으려 애쓰고 그러다가 지치면 문제의 그쪽으로 씹게 되는데, 그럴 때 턱에서 나는 소리가 신경 쓰여서 웬만하면 조용한 곳에서 누군가와 식사하는 걸 꺼려한다.
엄마와 둘이 살면서부터는 가난으로 좌절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았고 20대 후반에는 긴 투병기를 거치며 많은 걸 놓치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한도에서는 늘 도전했고 꽤 이뤘고 더 완전하게 이루기 위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계속 나아가고 있다. 난 그가 가르치거나 물들이려 했던 폭력성, 패배감, 좌절감, 굴욕감, 무기력함, 자기 비하 중 그 어떤 것도 배우지 않았다. 뭐, 언어가 조금 거친 건 있지만 때와 장소는 가리는 편이니 다행인 걸로. 투병 때 표적 치료가 마땅하지 않아서 간 이식 가능 여부를 위해 망설이는 엄마를 대신하여 동주민센터에서 그에게 연락했더니 애꿎은 직원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단 걸 전해 들었을 때, 그는 자기가 아닌, 내가 그를 버렸다는 증오심에 내가 죽어버리길 바라는구나 싶었다. 감히 내가 죽기를 바라? 그렇다면 또 무조건 살아내야지. 그리고 지금은 그가 가장 실패했고 덩달아 나도 실패하기 쉬웠을, 화목한 가정을 이룬 지 10년 차다. 내 삶의 모토인 '단순하고 발랄하게'는 이렇게 나에게 지옥을 준 그를 철저하게 이기기 위해 탄생했다.
누군가의 구원? 그런 거 없다. 스스로 영웅이 되자.
영웅이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말한다. 보통이 아닌 삶을 사느라 늘 악에 받친 얼굴을 하고 있는가? 그런 썩은 얼굴하고 있어 봤자 절대 이길 수 없다. 더 단순하고 발랄하게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 그 길만 주시하고 집중하길 바란다. 동화처럼 갑자기 확 모든 게 바뀌지는 않지만 꾸준한 태도를 유지하면 결국은 승리한다는 건 보장한다. 그리고 유년기에 커다란 상처를 겪은 채로 여태 살아온 모두에게 그동안 너무 애썼다고, 그럼에도 잘 성장해서 다행이고 참 기특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는 자기 삶의 영웅이 되어 더 이상 두렵지 않고 마침내 승리하여 평안에 이르기를 바란다. 더 자세한 비기닝 스토리는 다음 연재에 계속...커밍 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