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도서관은 꽤 있어서 책을 돈 주고 살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한강의 소설이라면 기꺼이 살만 하지 않을까? 2024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빌리는 게 더 힘든 지경이다. 수상 전부터 이미 나의 서평에세이 기획서 목차에 있었던 한강 <소년이 온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했다는 보도를 봤을 때, 난 그녀의 동생도 사촌도 후배도 아니요 그 무슨 연결고리도 없는데 울컥 눈물이 솟았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늘 노벨 수상작들을 챙겨 읽어온 사람으로서, 그 작품들은 물론 수상할만한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쳤지만, 한강도 충분히 탈 수 있지 않나, 아직 우리나라의 위상이 약해서 빛을 못 보는 것인가,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갈 만큼 위상이 오르면 언젠가 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늘 했던 사람이라서 그랬나 보다.
우리 딸이 요즘 로제의 '아파트' 노래에 푹 빠져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면 노래 자체도 좋지만 내가 젊은 시절 푹 빠져 있었던 세계적인 브루노 마스가 로제와 콤비를 이루고 있는 것에 단순한 노래 감상 이상의 자긍심을 느낀다. 뮤직비디오에서 브루노 마스의 볼에 로제의 입술이 닿을 때, 한강의 소설이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었을 때, 대한민국의 문화와 역사가 세계인들에게 드디어 닿고 있다고 느낀다. 오스카 아카데미에서 영화 <<기생충>>이 4관왕을 차지했을 때도 그 이후 계속해서 K-culture, K-food 등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급부상했을 때도 느낌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화영역은 '독서'이다 보니 한강의 노벨 수상을 기점으로 더 와닿는다.
읽는 내내 축축하고 춥고 뿌옇고 막막하고 시커멓고 찐득하고 검붉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맞는 것이, 책 읽는 동안 내가 느낀 것 이상으로 너무 많은 감정이 솟구쳤는지 눈이 아팠다. 독서를 할 때 종종 옆에 두고 마시는 차나 커피도 어쩐지 죄스러워서 마실 수 없어 마른침을 삼키며 읽었다. 박정희, 전두환, 차지철 등의 대가리를 소총 개머리판이나 군화로 짓이겨 터뜨려버리고 싶다는 분노는 말할 것도 없다. 환한 햇살 맞으며 예쁜 카페에 들고 가서 읽어봤자 책이 왜 이래하면서 괜히 안 읽고 싶어질 수 있으니 꼭 밤에 불 다 끄고 수면등 아래에서 침잠(沈潛)하여 읽기를 권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책은 추천이 아니라 필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47.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 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세상에서 만나자는 말 따윈 의미 없는 거였어.
p50. 넌 여기 없을 뿐 아니라, 아직 살아 있었어. 그러니까 혼이란 건 가까이 있는 혼들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면서, 누군가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만은 온 힘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거였어. 이 낯선 덤불숲 아래에서, 썩어가는 수많은 몸들 사이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자 나는 무서워졌어.
p51. 이상하고 격렬한 힘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건 죽음 때문이 아니라 오직 멈추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생겨난 거였어.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눈도 뺨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만들었어.
p57.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 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책은 1장 어린 새 : 희생자 소년 동호의 이야기, 2장 검은 숨 : 희생된 혼들의 이야기, 3장 일곱 개의 뺨 : 생존자 은숙의 이야기, 4장 쇠와 피 : 또 다른 생존자의 이야기, 5장 밤의 눈동자 : 생존자 선주의 이야기, 6장 꽃핀 쪽으로 : 동호 어머니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한강은 2장에서 마치 혼이 되어본 사람처럼 글을 쓰는 것이 아닌, 휘적거리며 서늘하게 말을 하고 있다. 그렇게 쓰기까지 많은 고증을 거쳤을 테고, 일부러 기억 저편으로 묻어두고 사는 사람들을 어렵게 만나 들었을 테지만 그렇다 해도 어쨌거나 산 사람들이 쓴 자료와 이야기일 뿐인데 어떻게 이토록 혼들의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쓸 수 있는지 놀라웠다. 영적 존재에 대한 연구논문이나 점술가들이 말해주는 혼들의 특징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참고했을지도 모른다. 이 마저도 아니라면 1일 1 책을 한다는 한강 작가의 다독을 통한 통찰이었을까? 특히나 혼이 어른거리는 듯한 '~했어.'체를 선택한 점이 너무나 탁월해서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혼이 되기 직전을 경험한 적은 있다. 투병 중에 사랑니 통증까지 더해져서 너무 힘들어 그 대학병원 내의 치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치과는 소화기내과에서 치료 중인 내 병력을 보면서도 괜찮을 거라며 발치했다. 발치까지 무난히 끝나나 싶었는데 발치 직후 쇼크가 오고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의식불명까지 이어졌다. 발치 직후의 그 모든 과정은 엄마를 통해 들은 이야기다. 그러나 명확하게 기억나는 게 있는데 그건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특별한 기억이다. 침상에 누운 채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내가 계속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눈 뜬 나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뿌연 안개 같은 배경 위로 그동안 살아오며 겪은 주요 사건들과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웠거나 별로 없지만 행복했던 기억들이 엄청 빠르게 지나가는 삽화로 펼쳐졌다.
'왜 난 여기 있어, 내가 뭘 잘못했어, 난 아무리 비참해도 늘 견뎠어, 강하게 살아왔어, 그런데 왜 여기 있어, 왜 이렇게 힘들어, 왜 또 힘들어.'
그 많은 걸 겪어온 삶인데 결국 이 따위로죽어가는 이유를 알고 싶었고 억울했으며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바빴다. 이렇게 개인의 경험도 '했어'체로 전환하니 어쩐지 더 처참하다. 2장은 사건 자체보다도 한강이 그 많은 혼들의 처참한 심정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 그의 문학성이 돋보이는 장이다. 그리고 궁금하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가족과 친구를 잔인하게 죽인 전두환에게, 박정희에게, 차지철에게, 그들과 같이 행동했던 특별하게 잔인했던 군인들에게 마침내 찾아가서 어른거릴 수 있었는지.
p69.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다시 기다렸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물은 때로는 생명, 희망, 힘, 유연함, 여유 등을 상징하고 때로는 죽음, 공포, 음울함, 절망 등을 상징하는 이중적 상징성을 갖고 있다. 5.18 민주화 항쟁 당시 전남도청 상무관에서 주검을 관리하는 일을 하던 은숙은 출판사 직원으로 5.18 민주화 항쟁과 관련된 극본 번역자와 일을 한 것 때문에 취조를 당하며 일곱 대의 뺨을 맞는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과 유족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그저 일상처럼 광장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분수대의 물은 그냥 물일 뿐일 수 있지만 은숙에게는 유난히도 물이 상징하는 태연함, 여유, 희망, 생명력이 치가 떨리게 보고 싶지 않다. 지나간 학살은 지나간 일일 뿐이니 이제 일상을 살라고 강요하는 또 다른 폭력으로 느껴진다. 제발 아직은, 꽤 세월이 흐를 때까지는, 시민들과 유족들이 조금은 숨 쉴 수 있어질 때까지는 물이 멈추기를 부탁하고 있다.
p99.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이고 있을 뿐이다. 그 입술 모양을 그녀는 또렷하게 읽을 수 있다. 서 선생이 원고지에 펜으로 쓴 희곡을 그녀가 직접 입력해 삼교까지 봤기 때문이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p100. 최초의 당혹한 웅성거림이 객석을 쓸고 지나간 뒤, 이제 관객들은 무서운 침묵과 집중력으로 배우들의 입술을 응시하고 있다. 통로를 밝히던 조명이 어두워진다. 무대 중앙의 여자가 객석을 향해 몸을 돌린다. 여전히 소리 없이 초혼(招魂)하며 걸어오는 남자를 침착하게 응시한다. 입술을 열어 달싹인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p114.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은숙은 일곱 대의 뺨을 맞은 이후, 서 선생의 극본을 들고 검열을 받으러 갔다가 무자비하게 삭제 처리된 극본을 들고 허망하게 돌아왔다. 아무리 그 많은 부분이 삭제되어도 그녀는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하는 그 부분들. 그 부분들이 가장 핵심인데 그 부분들 없이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 자신이 일곱 대의 뺨을 맞게 한 서 선생이 나타났음에도 화는커녕 허망한 극본을 든 채 그에게 죄송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 선생은 어찌 된 영문인지 걱정하지 말라고, 연극은 무조건 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연극이 열렸고 여차하면 판을 업어버리고 연행하기 위한 형사들도 연극을 보러 왔다. 전두환은 생전에 법정 최후 진술까지 일관적으로 자신의 학살 행위는 국가 안위를 위한 방어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고작 연극 하나에도 친히 형사들을 파견한 꼴을 보면 확실하게 스스로 그저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정말 입으로 떠든 것처럼 자신은 잘못한 게 추호도 없다면 어떤 연극이고 책이고 무슨 말을 하든 떳떳했을 것이다.
왜 연기에 대사가 없냐며 웅성대던 관객들은 점차 왜 배우들이 입술만 열어 연기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한다. 말을 내뱉은 것이 아니기에 형사들도 연행할 건더기가 없다. 형사들은 미치고 팔짝 뛸 일이겠지만 배우들과 관객들은 서로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서 선생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 말하고 싶었던 것을 모두 보여줬다. 그리고 그 연극을 보면서 은숙 또한 군인들이 도청 상무관에서 주검을 보존하는 것조차 쓸어버리기 위해 탱크를 밀고 들어온 결전의 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고등학생이지만 중학생 같이 야리야리하던 동호를 오랜만에 불러보았다. 샤워하고 오라고 하지 말 걸, 그냥 카스텔라와 요구르트나 먹고 다신 집에 오지 말라고 동호를 저 멀리 내다 밀어 보내버릴 걸, 왜 씻고 오라고 말했을까. 하지만 어차피 동호는 자신이 아무리 불 같이 화를 내며 밀어 보냈어도 기어코 다시 들어와 같이 있었을 녀석이었다.
p120. 묽은 진물과 진득한 고름, 냄새나는 침, 피, 눈물과 콧물, 속옷에 지린 오줌과 똥. 그것들이 내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아니, 그것들 자체가 바로 나였습니다. 그것들 속에서 썩어가는 살덩어리가 나였습니다.
지금도 나는 여름을 견디지 못합니다. 벌레 같은 땀이 스멀스멀 가슴팍과 등으로 흘러내리면, 내가 살덩어리였던 순간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돌아와 있는 걸 느끼며 깊은숨을 쉽니다. 이를 악물고 더 깊은숨을 쉽니다.
p121. 각진 각목이 어깻죽지와 등허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곧은 물성대로 활짝 펴지며 내 몸을 비틀 때, 제발, 그만, 잘못헀습니다,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 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신음, 일초와 일초 사이, 다시 비명, 몸이 사라져 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도청 상무관에서 주검을 관리하는 일을 하던 진수와 같이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살아남은 한 남자는 그 일 때문에 자신의 몸은 고귀한 이상이나 양심과 다르게 그저 냄새나고 더럽고 썩어가는 살덩어리라고 환멸 하게 됐다. 고문을 가한 군인들이 원한 게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리 고귀한 척해봤자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는 하찮은 인간임을 알게 하고 다시는 이상이나 양심을 운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고문의 목적이었다. 그는 차라리 고문 끝에 죽어버리기를 바랐지만 죽지 못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진수를 만났고 그 뒤로 그 둘은 서로 유일하게 서로의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존재이자 그렇기 때문에 보고 싶지 않은 존재로서 가끔씩 만나며 지낸다. 진수가 너무 형형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면 그 눈을 보고 싶지 않았고 마구 패버리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마치 진수의 몸이 환멸 하게 된 자신의 살덩어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p162. 팔 개월 동안 남편이었던 남자의 유순한 목소리를 당신은 기억한다. 눈이 작은데 예뻐요,라고 그는 처음에 말했다. 긴 눈 하고 코하고 입하고, 흰 종이에 쓱쓱 정갈하게, 송아지처럼 크고 물기가 많던 그의 눈을 당신은 기억한다. 입술이 일그러지던 모습을, 흰자위가 충혈된 채 물끄러미 당신을 마주 보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러지 마,라고 그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다.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날 보지 마.
p166.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질,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선주는 여공으로 일하던 중 성희언니의 주도로 노동운동에 가담했다가 끌려간 이력 때문에 취업에 계속 실패하다가 현재는 녹취록을 풀거나 각종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어차피 가장 절실했던 시기에 없었던 정의 따위에 환멸을 느낀 지는 오래다. 과거의 고문과 참상을 겪은 트라우마로 직장 동료들과도 친해질 수가 없어 지독하게 외롭게 살아간다. 겨우 사랑할 수 있었던 남자에게도 곁을 내줄 수 없이 피폐해졌고 매일 밤 동호가 찾아오는 듯한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자꾸 왜 자신에게 성희언니도, 5.18 민주화 항쟁 생존자들에 대한 논문을 쓴다는 윤도 그놈의 정의를 위해 증언을 하라고 요구하는지 화가 난다. 하나 결국은 증언만이 지금이라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기에 괴롭다. 어쩌면 그냥 꾸역꾸역 체한 듯이 먹어치우는 하루하루를 살다 결국은 생존자에서 자살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처럼 자신도 그렇게 될까 봐 겁이 난다. 이제라도 제대로 살기 위해서 증언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가학적 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이 그러하듯 그 증언이 살 길이라 할지라도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한 마디하고 나면 백 가지 기억에 잠들 수 없기 때문에 차마 하기가 어렵다. 누가 그들에게 저런 증언을 어서 말하라고 독촉할 수 있단 말인가.
p192.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놓았다.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 번 싸놓은 네 얼굴을 쳐다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p211.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p213.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동호는 자신과 같이 시위행진을 걷다가 총을 맞고 죽어가는 정배의 손을 놔버린 자신을 질책하며 정배의 시신이라도 찾아볼까 하여 시신들을 모아둔 상무관에서 일을 도왔다. 시작은 친구에 대한 죄책감, 시신이라도 찾아 가족에게 돌려보내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점차 그 우정은 상무관에서 숱한 시민들의 주검과 그들을 찾아오는 유족들의 고통을 마주하며 이 주검들만이라도 군인들이 어찌할 수 없도록 지키는 것이 맞다는 정의감으로 바뀐다.
동호의 어머니는 얼마 살지 못하고 떠난 그 짧은 세월의 동호의 모든 장면을 찬찬히 돌려본다. 동호 위의 두 형들이 내리 한 젖만 빠느라 나머지 한 젖은 땡땡해진 것을 무던히 빨아주어 두 쪽 다 보드랍게 만들어준 아기 동호부터 큰 형의 사랑을 흠뻑 받던 꼬마 동호, 형들을 보러 마중을 나가던 산책길에서 꽃 핀 쪽으로 걷자고 엄마 손을 이끌던 동호, 그리고 상무관에 찾아가 집에 가자고 할 때 딱 여섯 시까지만 있다 갈 테니 먼저 집에 가라던 동호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홀연한 양심과 용기의 길을 건너버린 것 같아서 자신의 아들이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그날의 동호까지. 자식들 모두를 잃은 정배와 정미 남매의 아버지는 얼마 못 살고 떠났지만 동호의 어머니는 그나마 남은 아들이 둘이나 있었기에 그 모진 세월을 견뎠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한강이 동호의 형을 만났을 때, 그런 동호를 모독한다는 인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도대체 뭘까. 정말 5.18 민주화 항쟁의 투사들을 모독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전두환을 두둔하고 믿고 그의 명예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자들이 정녕 있다는 말인가. 나는 가끔 사람은 다 생각이 제각각이고 늘 반대편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에 화날 때가 있다. 박정희가 이것저것 나라 살린다고 잘하고 있는데 왜 굳이 민주화하겠다고 난리 치다 제 명을 단축했냐고 떠드는 자들이 정녕 있냐는 말이다. 차마 알고 싶지 않았던 그런 존재들을 이번 서평을 쓰면서 찾게 되었다. 전두환의 죽음을 서거라 말하고 전두환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정말 있었다.
정말 있었다. 동호를 비롯한 이들을 모독하는 이들이 정말로.
박정희가 오래 장기 집권하면서 이루어낸 소위 '한강의 기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재를 하려면 박정희처럼'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독재한만큼 거지 같았던 한국을 급성장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시민들을 학살하도록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자신을 믿고 뽑아준다면 뭐든 잘 해낼 자신이 있다고 설득했어야 했다. 무식한 군중에게 뭘 설명하고 설득하냐고 빠른 길을 가자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실패한다면 그것도 받아들였어야 했다.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학살을 선택하고 그의 오른팔인 경호실장 차지철이 '캄보디아에서는 200만 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는 충성의 말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독재가 계속되면서 박정희는 언제부턴가 충성게임에 매몰되고 초기 집권 때보다 못한 행태를 보였다고 진술한 이들이 있었다. 아마도 원래 군부가 정권에 개입하는 것 자체에 부정적이었던 김재규는 오랜 세월 이후 점점 그저 권력욕에 돌은 자가 돼버린 박정희와 한술 더 떠 그를 부추기는 차지철을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어서 총을 갈긴 것 같다.
전두환도 누군가에게 저격당하거나 맞아 죽었어야 했는데 참 오래도 살다 갔다. 그가 말년에 겪은 병환 따위는 너무 편안한 죽음의 길이어서 아쉽기만 하다. 그 많은 시민을 잔인하게 죽여놓고, 연행할 이유가 없어도 그냥 다 죽여놓고, 광주 시위가 확대되었을 때 화염방사기를 발사하고, 그저 항복하는 자세로 나오던 동호와 다른 소년들에게 죄 총을 쏴 놓고, 병사들에게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 년간 몸속에서 염색체를 변형시키는 납탄을 쓰도록 지시해 놓고, 모든 걸 부인한 채 어디 감히 병상에 누워있었는지. 그 뻔뻔스러운 회고록과 본인만큼이나 역겨운 이순자를 통해 남긴 자서전은 무엇인지. 전두환은 잔인성과 뻔뻔함은 기본이고 5.18 헬기 사격의 진실이 1심에서 밝혀진 이후 2심을 앞둔 와중에 뒤져버리는 야비함까지 갖췄다. 부디 지금처럼 끝끝내 아무도 그를 묻을 땅을 팔지 않아서 계속 자기 집에 썩기를, 아무리 뼛가루만 남긴 유골이라도 이상하게 악취가 진동하기를, 계속 어디에도 안장되지 못하여 이승에서도 버려지고 저승에서도 버려지기를 바란다.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시체들이 뭐가 무섭다고 그래요.라고 말하던 동호. 자신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작은형과 어머니를 금방 집에 가겠다 말하며 돌려보내던 동호는 더 이상 집이 있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돼버린 슬픈 영혼들과 썩어가는 고통까지 더해져 더 슬픈 육체들과 함께 그 자리에 남았다. 군인들이 무섭다고 말해놓고 군인들에 맞서 상무관을 지키려고 쏘지도 못할 총을 들었다. 동호는 은숙, 진수, 선주 등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과 그 광주를 지켜본 모든 국민들에게 고통과 아픔임과 동시에 희망이자 의지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양심과 용기로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동호를 오롯하게 기억해야 한다. 5.18 민주화 항쟁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그 어떤 말도 다 마땅치가 않아서 하기 어렵다. 감사의 말도, 위로의 말도 다 모독이 될 것이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내년 여름 전라도 여행길에 꼭 광주에 있는 국립 5.18 민주 묘지와 추모관에 들러 묵념하고 꽃을 올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