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에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야기를 하면서 삶은 가볍다가 무겁다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워낙 스테디셀러이자 명작이라서 후기도 정말 많고 골수팬도 많은 작품이지만 몇 번씩 재도전하고도 영 어려워하며 진가를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 하지만 제목 자체도 대놓고 모순인 양귀자 <모순>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한결 경쾌하고 편안하다. 역사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야기도 전혀 다루지 않는다. 주변 어디에나 너절하게 있을 한 사람과 그 주변의 인물들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만 한다.
1985년 <귀머거리 새>를 첫 작으로 1998년까지 짧고 굵게 작품활동을 한 양귀자의 가장 최신작(최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전이지만)이자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한 페미니즘을 다룬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과 쌍벽을 이루는 대표작이다. 저명한 국내 작가의 스테디셀러이니 응당 대표작 두 가지 중 하나는 읽으려고 계획을 했다가 좀 더 끌린 <모순>을 골라 읽었을 뿐인데 알고 보니 최근 이 책은 지난 2월에 갑자기 26년 만에 폭발적으로 역주행을 하며 베스트셀러 상위권 차트에 진입했다고 한다. 한 유투버가 자신의 인생책이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한다. 하, 유투버가 뭐길래. 나도 곧 해볼게 뭔지 알아볼 겸. 유투브 채널을 열 거라면서 유투브를 거의 보지 않는 모순이 있다 보니 이제야 알았다. 여전히 국내도서 상위권 차트를 유지하고 있다.
양귀자는 늘 평범하거나 그보다 좀 못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쉽게 떠올릴만한 주제를 발견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왔다. 사람들은 책이 어려워도 싫어하고 쉬우면 너무 쉽다고 싫어하곤 하는데 양귀자의 작품들은 쉽지만 너무 만만하지는 않기 때문에 오랜 세월 꾸준한 팬덤이 형성되어 있다. <모순>은 주인공을 둘러싼 양극의 대상들의 극명한 대비점 사이에서 그들을 관망하고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의 모순을 통해 인생의 어떤 선택도 모순이 없는 선택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그런 모순을 겪고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한다고 말한다. 작가 특유의 아무리 어떠한 인간이라 해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법 없이 감싸주고 이해하는 따뜻한 시선도 잘 녹아들어 있다.
p15.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量感)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화자인 25살 안진진은 허구한 날 술주정과 폭력을 일삼고 집을 뛰쳐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아버지와 그에 시들어가기보다는 악으로 깡으로 억척스럽게 자기 살 길 찾느라 바쁜 어머니, 그리고 툭하면 사고를 쳐서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는 남동생 진모와 함께 살고 있다.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하는 김창옥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화목한 집의특징이 뭔지 아세요 여러분? 아버님이 인상이 엄청 좋으시거나 안 계셔요."
그 말에 많은 청중이 웃었다. 차라리 없어도 괜찮을 것 같은 아버지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만의 비참한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싶은 약간의 위로도 되었다.
남자들이 억울해할 수는 있겠지만 어머니는 무서워도 우리 어머니고 다정해도 우리 어머니다. 버리고 떠나지 않는 한 어머니는 어떤 짓을 해도 가정의 평화를 깰만한 힘은 약한 편이다. 아무리 잉태가 아버지의 기여도가 반이라고 해도 아이는 자신의 기원을 어머니의 뱃속으로만 생각할 뿐 그 이전의 생물학적인 과정까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원인 사람이 밥까지 해먹이고 온갖 것을 다 해주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심지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나중에 굳이 찾아 만나는 이야기도 참 많다. 자식은 어떻게든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든다. 이와 달리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굳이 찾는 이야기는 좀 드물다. 안진진의 가족들도 처음에는 난리를 쳐놓고 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아버지에 대해 긴장감을 가지다가 해가 갈수록 아버지가 오든 말든 원래 아버지 자리가 없던 집처럼 태연하게 살아간다.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가 하는 말과 행동은 그 힘이 너무 크다. 좋게 말하면 노력과 시간 대비 효율이 매우 좋다. 아버지의 소소한 다정한 말과 행동은 자식이 훌륭하게 크도록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안진진의 아버지 같은 짓거리를 했다가는 급속도로 자식을 다 망쳐놓고 가정을 풍비박산시키기 딱 좋다. 아버지 못지않게 사고를 치고 다니는 진모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어머니를 보며 진진은 직장 다니며 제 앞가림이나 잘하자고, 그런 아버지 밑에 또 그런 자식이란 소리는 진모 하나만으로 족하고 자기만이라도 그 말은 안 듣고 살려고 애쓰며 산다. 속이 시끄러운 것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냥 매일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원래 이렇게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인 게 인생인 게 맞는지 깊은 질문에 빠진다.
p21.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p188.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나 역시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이러이러한 일로 지금 죄수복을 입고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해줄 수 있었다면 김장우의 아픔은 훨씬 가벼워졌을 것인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의 첫 연재의 첫 글은 육아하면서 4년간의 수험생활과 그 실패와 앞으로의 막연한 계획에 대한 글이었다. 중간에 연재한 글도 꽤 많은 불행을 겪었지만 발랄하게 살아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지난주 연재한 글도 남편의 실직 위기와 지금보다 더 심각했던 신혼 때의 위기 극복기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글이었다. 성공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실패담보다는 자신보다 백 배 이상 성공한 사람의 성공담을 귀담아듣는 게 이득이지만 위로를 받고 싶다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누군가의 실패담만 한 것이 없다.
이기적인 유전자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유대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게 더 크다. 유대감과 공감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불우하고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을 절대 위로할 수 없고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 안진진은 김장우를 사랑하기 때문에 김장우가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힘들어할 때 자기의 현재 불행인 동생 진모 이야기를 꺼내어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불행한 가정 속에 있는 여자임을 보여주기 싫어서 위로해 줄 수 없었다.
p90.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아버지에게 있었다. 아버지는 상스러운 욕설을 하더라도 입술을 깨물며, 이마에 푸른 힘줄을 돋우면서, 온 힘을 다해 자신도 지금 죽을 듯이 괴롭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주었다. 오죽했으면 나와 진모는 물론이고 맞고 있던 어머니까지도 저토록 괴로운 일을 해야 하는 아버지에 대해 순간순간 동정심을 품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을까.
p94. "해 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이 저쪽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은 어머니를 패고 온 집안 살림을 다 때려 부수고 어머니가 힘들게 번 돈을 들고나가버렸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아버지를 왜 이해하려고 하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다. 진진과 진모에게는 가해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가 진진의 어머니마저도 남편에게 수모를 그저 당해주고 가끔씩 돌아올 때마다 언제든 오라는 식으로 구는 걸 보면서 도대체 이 집구석은 뭘까 했다.
그러다 문득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반장 남자아이가 생각났다. 나와는 가정사를 비롯한 꽤 깊은 이야기도 나눌 정도로 친했다. 20살이던 어느 날 둘이 공원에 앉아 있다가 그 아이에게 안진진의 아버지와 매우 닮아있는, 심지어 우리 아빠는 술도 한 방울 안 마시고 맨 정신에 그 지랄이라며 우리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와 어머니는 억울하고 힘들겠지만 분명 너희 아버지가 그러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야. 아무 이유도 없는 결과는 없어."
쇠파이프로 뒤통수를 가격 당한 기분이었다. 댕댕댕 머릿속이 울렸다. 그토록 친했던 친구가 어떻게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그때는 그런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굳이 더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물증들은 분명히 있었다. 아빠 물건만 정리되어 있는 까만 수납장 첫 번째 서랍을 몰래 열어보면 잔뜩 있던 하얀 약통들. 정신과병원 약봉지들. 그런데 그게 툭하면 가족을 죽일 듯이 패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명분이 되어야 하나?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일말의 안타까움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약제들은 내 비극을 극대화하는 장치에 불과했다. 그 약들의 정체가 진진이 아버지처럼 조현병약인지 우울증 약인지 분노조절장애약인지 수면제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지금까지도 내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그의 마음에 들어갈 틈도 없이 스스로 문을 잠근 채 살았기 때문에 그 외로움 속에 썩어 죽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아주 조금 생겼을 뿐이다. 나는 굳이 3살 때 기억도 다 나는데 그때부터 우리 집은 비극이었으니 아마 그전에 엄마만 기억하는 비극은 더 먼저 시작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빠는 결혼 전부터 애초에 미쳐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 이야기는 결국 아빠의 어린 시절까지 쭉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어디서부터 시작된 비극인지 구만리이다.
중요한 건 '더 비기닝 : 미친 자 어디로부터 왔는가'그런 이야기는 사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면 흥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나 우리 남편이 각자 기원이 너무 비극임에도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는 이상 그 모든 걸 청산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극복하고 살아가듯이 아빠도 그랬어야만 했다. 엄마와 결혼을 했다는 건 언제부터 미친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살아보려고 했던 적은 분명히 있었다는 말이니까. 왜 그렇게까지 삶을 구렁 속으로 처박았는지, 중간에 돌아올 수 있었음에도 왜 굳이 끝을 보고야 말았는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가봐야 비극이고 절망이라는 것을, 아주 잘못된 길이고 결과가 어떨지 자명함에도 멈추지 못하는 것 역시 인생임을 아는 나이가 되긴 했다. 그걸 알게 되었다고 해서 안진진처럼 아버지를 때로 그리워하고 손을 잡아보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은 죽을 때까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나이에도 겨우 이 수준인데 그때 그 어린 내 친구가 1955년생 양귀자 작가와 같은 어떤 하자인생도 인정하고 이해하는 관점을 가졌었다는 게 놀랍다. 그 친구가 그때 그 말을 멋으로 떠든 게 아니라면 지금 이 나이에는 얼마나 더 현자처럼 모든 이들을 이해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p218.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하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왜곡시킨다.
p277.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버린 내 아버지처럼. 김장우에게도 알지 못하는 생의 다른 길이 운명적으로 예비되어 있을지 몰랐다. 지금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사랑조차도 넘쳐버리면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인 것을.
'사랑한다면 솔직해야 한다.'라는 문장은 반은 맞고 반을 틀렸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세수도 안 한 채 얼굴을 마주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더 멋있고 더 예쁘게 보이고 자신의 원래 스펙보다 더 잘나 보이고 싶어 한다. 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별로인 건 굳이 드러내지 않거나 좀 괜찮은 건 과장하게 된다. 사랑이 싹트기도 전에 완전하게 솔직했다면 사랑이 시작되기 어렵다.
솔직함은 그 뒤의 더 발전된 관계를 위해 따라가는 것이다. '결혼할 거라면 솔직해야 한다.'라고 문장을 바꾸면 맞는 말이 된다. 어차피 뭔가를 속이고 한 결혼은 언젠가는 들통나고 깨질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안진진은 몽상가 김장우를 사랑하지만 실용주의자 나영석과 결혼하게 된다. 그저 계획대로 알차게 보내는 것을 좋아하며 자기와 달리 밝게 살아가는 나영석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안진진을 보여줬다. 그 편안함이 결혼에는 더 적합한 키워드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랑해야 결혼할 수 있다'도 맞는 말이다. 안진진의 김장우에 대한 사랑은 너무 특별한 사랑, 넘쳐버리는 사랑이어서 오히려 솔직할 수 없었고 함께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반면 나영석에 대한 사랑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사랑이라서 결혼까지도 가능한 사랑이다. 다른 사랑일 뿐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
p138. 어머니에 비하면 이모는, 끊임없이 세심하게 손질을 해주며 가꾸고 있는 이모의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은 얼마나 보기가 좋은가. 푸른색 소매 없는 원피스 아래로 드러난 이모의 동그란 어깨는 얼마나 아기자기한가.(...) 오직 어머니만이, 뽀글뽀글 볶은 머리를 하고 심술궂게 앉아있는 어머니만이 이 집에서 단 하나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 소품이었다.
p283.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이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고는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p296.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진진의 어머니는 낮에는 없다시피 한 남편 대신 가장으로서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밤에는 진모가 사고 친 걸 수습하려고 '형사법'을 읽고 진진의 아버지를 이해해 보려고 '정신분열증에 대한 이해와 치료'의 책을 읽느라 늘 하루가 24시간인 것이 너무 짧다. 장사가 잘 안 될 때는 거침없이 종목을 바꾸고 일본어를 배우는 진진의 어머니는 인생의 모든 불행이 삶의 에너지인양 살아간다. 그녀에게 고난과 역경은 아궁이에 계속 넣어지는 장작 같은 것이다.
자신의 동생이자 진진의 이모가 고상을 떨고 앉아있는 걸 보면서 늘 비아냥거리는 편이다. 마치 '너는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본 적이 있긴 하느냐'라고 반문하는 것 같다. 과거의 내가 진진의 어머니처럼 불행이 없으면 뭘 해야 할지 불안할 정도로 살아봐서 지인들을 만날 때 가장 조심하려고 노력했던 부분이 바로 '그딴 걸로 힘들다는 거야 지금?'이런 말이 안 튀어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노력했어도 '난 더 힘든 이런 일도 이겨냈으니 넌 더 잘 헤쳐갈 수 있겠지' 그 정도가 최선일 때도 있었다.
이제는 굳이 입을 틀어막고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노력하지 않아도 타인의 고민들을 비아냥 거리고 싶은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가 별다른 걸림 없이 흐르는 물처럼 들리고 이해된다. 그만큼 내 생활이 과거에 비해서는 살만해졌다는 거다. 하지만 진진의 어머니는 이게 끝나면 저게 오는 식으로 여전히 불행의 연속 게임을 하고 있다. 나름 전략적으로 해내고 있는 와중에 종종 고상한 동생이 떡 하니 서 있으면 자기 인생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장애물일 뿐이라 어쩔 수 없이 밟아 죽이고 지나가야만 다음 레벨로 넘어갈 수 있다. 무식해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방식이다. 과거의 나는 무식해 보이는 게 싫었을 뿐이다.
반면 진진의 이모는 그 어떤 불행도 없이 거의 완전무결하다. 돈 잘 벌고 언제나 할 도리를 어기는 법이 없는 남편과 속 한 번 섞이지 않고 탄탄대로를 걸어 멋지게 장성한 두 자식. 더 바랄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모는 나가서 진이 빠지게 돈 벌고 자식 때문에 속이 뒤집어지고 남편 때문에 멍들고 다치다 툭하면 우당탕탕 거리며 자신에게 아이들을 데려다 놓는 언니의 삶이 늘 부러웠다. 진진의 어머니가 들었다면 너 지금 나 놀리는 거냐고 역정을 내겠지만 이모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자신의 생일이나 가족여행마다 늘 복사해서 갖다 붙인 듯한 한 치의 오차 없이 똑같은 데이트에 질려서 차라리 혼자 겨울밤에 걸어 다니고 조카인 진진과 놀러 다닌 게 가장 즐거웠던 하루라고 회상할 만큼 지리멸렬하게 살았다. 뭔가를 도전하려고 하면 부족한 게 뭐가 있다고 나서냐는 식으로 정중하게 자신을 주저앉히는 남편에게 자신이 원하는 걸 말 못 하고 산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진진이네 가족 모두에게는 원흉인 진진이 아버지에 대해서 유일하게 관대했던 이모는 왜 그에게 관대할 수 있었을까. 단지 자신이 형부랑 사는 건 아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삶이 지루해죽겠는 이모는 지루할 틈 없이 머릿속과 마음속이 분주하다 못해 자주 터져버리고 마는 형부마저 부러웠던 건 아닐까. 지루함과 권태로움이 위태로움으로까지 번져간 이모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결말은 직접 읽어보시길.
연속된 불행에도 오히려 늘 힘이 넘치던 진진의 어머니, 복에 겨운 생활에도 불행했던 진진의 이모, 진진의 가족에게 가장 잔인한 존재였지만 가장 약한 존재가 되어 돌아온 아버지만 모순적인 존재인 게 아니다. 안진진 역시 결혼이라는 중대사에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남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전혀 그 선택이 생뚱맞지 않고 이해된다. 게다가 이 책이 쭉 이야기하는 대로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해도 모순이라 별 상관도 없다는 게 핵심이다. 애초에 진진은 자기 인생의 볼륨감이 너무 없다는 것에 통탄하며 대단한 여정을 시작할 것처럼 굴었지만 그 시절 여성들의 다 뻔한 결혼을 선택한 것도 모순이다.
진진의 결혼생활이 행복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 때로는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 느끼고 때로는 맞다고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삶은 불행한 만큼 행복하고 행복한 만큼 불행하다. 안진진만큼은 이야기 속의 모든 극단적인 모순적인 존재들과는 다르게 불행과 행복의 균형이 적절한 윤택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작가는 주로 연재소설을 묶어내던 것에서 벗어난 단편소설 <모순>에 대한 애정을 담아 독자들에게 천천히 읽어줄 것을 부탁했지만 죄송하게도 단숨에 읽어버릴 만큼 무난하고 재밌기 때문에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