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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터 Dec 14. 2024

자폐 아이의 학습

초등학교 1학년을 보내며

다사다난했던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학교에 가서 앉아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작했던 학교생활이었는데 아이는 기대 이상으로 잘 지내주었다. 물론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년 초에 있었던 참관수업에서 바닥에 누워 있던 아이의 모습. 친구들과 급식 순서 다툼으로 30분 가까이 울었던 아이의 모습. 방과 후 수업에서 상황에 맞지 않게 계속 선생님을 불러대 다른 학부모들의 컴플레인이 있었던 일. 이러한 이불 킥 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갔다.

학년을 마치며 아이의 개별화회의(IEP)가 있었다. 아이의 원반 담임선생님과 특수교사선생님 나 이렇게 3명이 마주 앉아 아이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나는 가정생활과 치료, 약물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했고, 두 선생님은 아이의 학교생활과 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 주셨다. 집에 와서 조잘거리지 않으니 전혀 알 수 없는 학교생활. 그저 전화만 오지 않으면 되었다 하고 넘긴 1년의 생활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두 선생님의 칭찬이 쏟아졌다.

DH는 학습적인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셨다. 이것은 공부 외 생활에서도 그러했다. (생활면에서의 기준은 일반아이 기준이 아닌 아이 개별의 기능에 따른 기준이다.) 특정 숫자와 순서, 색깔을 고집하던 모습들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학습은 일반아이들에 비해서도 뒤처지지 않았다. 부단히 노력하며 변화하는 아이의 모습에 선생님들은 기특하다고 하셨다.

DH는 학기 초 학급에서 자기 번호가 원하는 숫자가 아니라고 떼쓰던 아이였다. 자기 이름 쓰기도 간신히 했던 아이였다. 그러나 이제 일기 쓰기 숙제도 곧 잘 쓰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글도 뜨문뜨문 읽던 아이였지만 지금은 문장을 읽고 해독하는 능력이 좋다는 칭찬도 듣게 되었다. 수학의 경우 이해와 연산이 빠르고 특히 시계 파트에서는 다른 아이들이 모르는 시간 차의 개념과 5분 단위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하셨다. 그 밖에도 친구들과 경쟁 놀이가 싫어 회피하던 아이는 이제 놀이에 참여하여 아이가 되었고, 줄넘기도 못 돌리던 아이가 이제 30개의 줄넘기는 거뜬히 하는 아이가 되었다. 또 김치나 신 것도 안 먹던 아이는 ‘먹는 것도 배우는 거야’라는 선생님의 말에 참고 꿀꺽 넘기는 아이가 되었다. 수요일은 급식을 다 먹는 날인데 그날은 나에게 집에 와서 다 먹었다고 자랑도 하였다.
어느 날인가 선생님도 깜짝 놀랄 만큼 유독 신 키위가 나왔는데 선생님과 같이 마주 보며 찡그린 얼굴로 꿀꺽했다는 에피소드에는 웃음과 눈물이 같이 터져 나왔다. 아이는 정말 많이 자랐다.

DH는 감사하게도 똑똑한 아이다. 천재 혹은 영재는 절대 아니다.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이 되고 흥미를 느끼면 쑥쑥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뒷전으로 미뤄둔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DH는 국어 문제집은 거뜬히 풀어댄다. 답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친구와 감상을 이야기하는 상호작용은 약하다. 말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전형적인 자폐스펙트럼의 아이다. 두 선생님이 아쉽게 생각하신 부분이다. 하지만 아이가 곧 언젠가는 또 해낼 것이라 기운도 북돋아 주셨다. 가능성을 보여준 1년이었으니 말이다. 아이의 이런 특성을 알고 적절하게 접근해 주신 선생님들을 만난 것도 천운이리라.

1년이 지나 아이의 학습에 대해 되돌아보았다. 선생님의 노력도, 나의 노력도, 아이의 노력도 헛되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전교 1등을 한 것도 아니고, 경시대회를 나가서 상을 받아온 것도 아닌데 그저 학교 생활에 충실히 잘 따라갔다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인가 싶긴 하다. 하지만 나와 아이에겐 의미가 크다. 이것이 밑바탕이 되어 또 그렇게 성취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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