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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Sep 27. 2021

아이의 동네 친구 만들기

워킹맘 엄마들의 숙제 아닌 숙제

육아휴직 동안 말로만 듣던 '놀이터 육아' 세계를 짧게나마 경험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1000세대가량 구성돼 있는데 동별로 놀이터가 구역화돼 3~4개 정도 있다. 걸음마를 막 시작할 무렵 쮸니와 함께 어린이집 하원 후 놀이터에 가보면 또래의 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친한 엄마들의 무리들도 삼삼오오 구성돼 있는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쭈뼛쭈뼛 다가가 인사를 해도 뭔가 알 수 없는 벽 같은 게 둘러져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나도 아이도 동네 친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지역 맘 카페에 글을 올렸다. "OO아파트에 살고 있는 돌 지난 아들을 둔 엄마예요. 지금은 육아휴직 중인데 아이 낳기 전엔 회사-집만 오가느라 동네 친구가 없네요. 혹시 동네 친구 괜찮으신 분들 있으실까요?"


얼마 되지 않아 반가운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연이어 쪽지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바로 옆 동에 사는 엄마였다. 본인도 육아휴직 중인데 동네 친구가 없어 적적했노라고, 그리고 놀이터에 갈 때마다 동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엄마도 나와 비슷한 감정과 느낌을 받은 듯했다.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라는 공통점에 금세 친해졌다. 당시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라 함께 커피숍에서 커피도 마시고 동네 놀이터에서 여느 무리의 엄마들처럼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을 챙기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SNS 친구도 맺고 아이들의 첫 생일 때는 서로 선물을 챙기기도 했다.


두 엄마 모두 비슷한 시기에 복직을 하며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그사이 걸음마 수준의 아이들은 놀이터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할 정도로 컸다. 쮸니는 어린이집 하원 후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하원 이모님과 함께 놀이터에서 자주 시간을 보낸다. 이모님이 워낙 성격 좋고 친화력 있는 분이셔서 내가 만들어주지 못한 동네 놀이터 형누나 모임도 아이에게 만들어주셨다. 쉬는 날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보니 나를 알지 못하지만 쮸니를 알아본 동네 할머니들, 동네 아이들이 연신 쮸니를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을 보며 이모님과 아이, 동네분들 모두에게 각각 감사함을 느꼈다. 억지로 동네모임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고 스트레스받았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아이는 지금도 놀이터에 가면 처음 보는 아이들과도 자연스레 어울려 잘 논다. 현재 근무 중인 부서 특성상 일요일 출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데려가곤 한다. 남편이 카톡으로 보내오는 사진을 보면 아이는 늘 새로운 누나-형-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놀고 있다. 그럴 때마다 과거 내가 참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을 했던 게 아닌가 싶어 안도감과 웃음이 동시에 밀려든다.


며칠 전 지역 맘 카페에  "ㅁㅁ역 주변 4세 아이를 둔 직장인맘분 있으신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지하철역은 아파트 단지 바로 앞이다. 나 역시 댓글을 남겼고, 나 포함 여러 명이 댓글을 달았다. 알고 보니 글 작성자는 쮸니와 한때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던 친구의 엄마였다. 주말에 해당 엄마가 댓글을 단 엄마들 중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엄마들을 모아 단톡방을 개설했다. 그리고 주말에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만났다. 엄마들은 다들 성격이 좋아 보였다. 아이들도 밝고 예뻤다. 그렇게 또 쮸니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 역시 가까운 동네에 육아 동지 친구가 생겼다는 점이 기뻤다. 


가끔 맘 카페에 올라온 글이나 회사 워킹맘 선후배 동료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이의 친구 네트워킹 구축을 위한 엄마들의 노력, 그리고 또 그 네트워킹 사이에서 생겨나는 각종 갈등 및 감정 노동 등의 에피소드를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가 만들어준 네트워킹은 초등학교 1학년 때나 유효할 뿐 2학년만 돼도 아이들이 알아서 친구관계를 구축하니 엄마 네트워킹에 너무 힘 빼지 말라는 조언의 글부터 서로 결이 맞지 않는 엄마들 간의 미묘한 신경전의 이야기까지... 아직 아이가 네 살 밖에 되지 않아 아이가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에 진학할 때 많은 선배 엄마들이 먼저 경험한 각종 고민을 언젠가 하게 될 날이 올지 모르지만 이런 고민들 마저도 '엄마'이기에 경험하게 될 일종의 원더 윅스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놀이터에서 쮸니와 친한 한 살 위의 남자아이가 쮸니랑 놀고 싶다며 다가왔는데 쮸니가 도망가자 쫓아와 아이의 발을 밟으며 서운한 마음을 티 냈다. 그 아이 역시 고작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고,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쮸니가 울고 말았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체면이나 관계를 중시해서 내 아이가 공격을 당하고 있는데 말려주거나 상황을 정리해주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쮸니에게 미안했다. 발을 밟은 아이의 할머니가 쫓아와 무슨 일이냐 물어봤지만 그냥 별일 아니라고 한 내가 바보 같단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날 쮸니에게 "그 형이 너의 발을 밟은 건 무척 잘못된 행동이야. 엄마가 그럼 안된다고 그 형에게 말하지 못한 거 정말 미안해 쮼아. 담에 엄마가 없을 때 그 형이 또 그러면 '그럼 안돼'라고 쮸니가 이야기해줄래? 그리고 다음에 엄마가 같이 있을 때 그런 상황이 또 생기면 엄마가 형아에게 '그럼 안된다'라고 이야기해줄게."라고 말했다. 아이는 "응 엄마, 그 형아가 내 발을 밟은 건 잘못한 거지? 내가 담에 그 형이 또 그럼 형한테 '그럼 안돼!'라고 꼭 말할게~"라고 답했다.


남편이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던 중 처음 보는 같은 나이 아이가 쮸니에게 와서 장난치며 먼저 쮸니를 발로 찼다. 아이의 부모가 "죄송하다"라고 말하며 아이를 말렸고 남편도 "괜찮다"라고 했는데 해당 아이가 그 이후에도 쮸니에게 와서 발로 차길래 남편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해당 부모와 아이를 지켜봤다. 그 아이의 부모가 미안해하며 아이를 떼어놓으려 했고, 쮸니가 그 아이에게 "야, 비켜"라고 한마디 하며 상황을 종결시켰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이런 상황은 왕왕 발생하는 것 같다. 집에 와서 그 상황을 남편이 내게 이야기하던 중 쮸니가 "엄마, 걔는 자꾸 나한테 발차기를 하다가 경찰이 데리고 갔어~"라고 했다. 아이의 부모님이 아이를 억지로 데려가는 모습이 마치 경찰이 데리고 가는듯한 인상이었나 보다. 오히려 쮸니가 별일 아니란 듯이 말하는 모습에서 대견하면서도 상황을 부모인 우리가 어른의 시각으로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엄마가 엄마의 인맥을 동원해 만들어준 동네 친구들보다 놀이터에서 놀면서 나와 결이 맞는 친구를 사귀며 친하게 된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결국 쮸니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뒤부턴 아이의 동네 친구를 만들기 위해 애쓰던 동동거림을 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놀이터에서 놀다 친해지는 아이들과 인사하고 그 아이들의 엄마들과도 자연스레 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를 구축하며 지냈다. 결국 그게 답이 아닐까. 가수 양희경 씨가 한 방송에서 '인간관계는 사람 사이에 선선한 바람이 오고 갈 정도의 거리가 있는 게 가장 건강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되게 오롯이 마음에 와닿았는데, 결국 엄마인 나의 인간관계도 아이의 친구관계도 원론적으로 해당되지 않을까. 굳이 억지로 무언가 '우린 친하다'라는 관계를 끼워 맞추기보다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그리고 어울리는 관계 그게 가장 건강한 관계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초보 엄마들이여, 우리 너무 '놀이터 인맥구축'에 감정 낭비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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