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책 한 권이 주는 무한한 에너지.
위로, 인정, 공감 그리고 든든함까지.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대신해주고 있다.
그 누군가가 무려 남인숙 작가님이다.
내성적이어도 괜찮아요.
인간의 기질이란 게 스펙트럼처럼
다양하게 존재하니 어느 하나의 색깔로
딱 떨어지게 나를 표현할 수는 없다.
빛 스펙트럼의 색깔 사이 흐릿해지는 경계선에
두발, 아니 세발 네발
걸쳐 있게 되는 것이 인간이니까.
내향인에 대해 작가님이 풀어놓는
조곤 조곤 하면서 따뜻한 문장들이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괜찮아."
하면서 위로를 해주고
나를 인정해 주고 있는 느낌.
사회생활 참 잘하네.
이 말에는 붙임성 있고, 활달한
흔히 외향인이 갖고 있는 기질에 적합한
칭찬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내성적인 사람은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
뭔가 사회생활을 못하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내성적인 게 나쁘지 않다.
내성적이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깊은 나와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느낌?
낯선 사람들과 여럿이 어울려야 할 때는
불편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이런 상황들이
어느 정도는 내가 피할 수 있으니까.
어른이 되어
사회성 버튼을 쥐게 됐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성적인 사람이라도 괜찮다.
남인숙 작가님 말씀처럼
필요할 때마다 사회성 버튼을 켜면 된다.
하지만 가끔
작동이 잘 되던 사회성 버튼이
잘 켜지지 않아 힘들 때도 있다.
그럴 때 사회성 버튼을 켜려고
억지로 너무 많이 시도하면
"딸깍 딸깍" 고장이 나버릴 수 있으니 주의!
남인숙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사회성 버튼 외에 나는 한 가지 버튼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아니, 필요하다기보다 이 버튼을 갖고 있어야
더 완벽하게 온전하게 나의 쉼에 집중할 수 있다.
당신을 잠시만 꺼둘게요.
더 효율적인 휴식, 행복한 집순이가 될 수 있고
이렇게 쉼을 통해 축적한 에너지를 활용하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일도 한다.
도움이 되지 않는, 지나간 것에 대해서
신경 끄고 나의 충전에 집중하기.
당신을 잠시만 꺼둘게요.
더 밝게 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편한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를 제외한 상황에서
나는 에너지가 빨리 고갈되는 느낌이 있다.
밖에서 그 상황 속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집에서 충전이 필요하다.
집순이 게이지라고 부른다.
집순이 게이지를 만렙으로 채우고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나야
더 유쾌하고 그 만남이 즐겁고 그렇다.
효율이 낮은 삶을 사는 것도 같지만
그런대로 괜찮아요.
공감 가시나요?
남인숙 작가님께서 이렇게 묻는다.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