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만 짧게 느껴질 한 달의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챙기고 싶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거닐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그래도 멀리 간다면 대략 그 지역의 정보라든가, 뭘 보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등등을 생각해둬야 한다. 그리고 뭐가 필요한지도 생각을 해봐야겠지.
사실 요새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보니, 정보를 어디서 찾을까 하는 것보다는, 그 많은 정보 중에서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간단하게 옹플뢰르 맛집 이렇게 검색만 해도, 인터넷 창에 블로그, 카페 글들이 줄줄이 뜬다. 다들 각자의 경험을 털어놓는 것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와 취향이 맞는 글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방문하려는 도시를 미리 검색하고, 다른 이들은 무엇을 봤는지 함께 구경하다 보면,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이 나오고, 그런 것들을 기록해보았다. 경로도 어떤 순서로 도는 게 좋은지 조언도 해주었고, 비가 와도 유람선 이층에 꼭 올라가 보라든지, 베니스의 석양은 어디서 보는 게 가장 아름다운지, 모디카와 라구사는 묶음으로 한 번에 방문하는 게 좋다든지 하는 팁 같은 것들이 듬뿍 들어있다. 그래서 검색해서 쭈욱 훑어내려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지역별로 메모했다.
내가 주로 이용한 포럼은 네이버 카페 유랑이었다. 가장 오래되었기에 데이터가 어마어마했다. 지역별로 검색을 하면 필요한 정보는 거의 다 나오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는 필요하지 않지만, 젊은 친구들이 즉석에서 서로 만나서 낯선 곳을 보다 안전하게 함께 가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또한 여기유럽 이라는 카페는, 여행상품 판매가 주력인 거 같긴 한데, 유용한 것들이 제법 있었다. 특히나 한글로 된 유럽지도를 판매해서 그게 유용해 보였다. 사실 한국 집에는 시칠리아에 관한 책도 사놓은 게 있고, 작년에 사용했던 지도도 있는데, 어디 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서, 보내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새로 구입했다. 사는 김에, 라커를 잠글 수 있는 자물쇠도 구입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멀리 이동할 때, 짐을 공동구역에 놓거나 해야 한다면 잠든 사이에 짐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서 유용하다고 한다. 마침 결혼 축하연 방문을 하는 동생에게 부탁해서 가져올 수 있었다.
어차피 지도는 폰에서 다 뜨는데 무슨 실사 지도가 필요하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뭔가 계획하고 생각하려면 큼직한 실제 지도를 펴놓고 손을 짚어가며 보는 게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구세대여서일까?
온라인으로 미리 구매한 것 중 하나는 파리의 유람선(Bateaux Mouches) 티켓이다. 파리에서, 또는 해당 웹사이트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 나는 여기유럽 카페에서 구입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많은 곳에서 판매하고 있으니 당시 가장 저렴한 곳에서 구입하면 된다. 어차피 유효기간이 넉넉해서 딱 정해진 날짜가 아니기 때문에 융통성이 있어서 좋다. 구매는 온라인으로 하고, 예약번호도 이메일로 받기 때문에 우리처럼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겐 더욱 편리하다. 사실상 시간대만 맞으면 여행 중에도 주문하고 즉석에서 받을 수 있다.
요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다 폰으로 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챙기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캐나다에서는 로밍비가 장난 아니게 비싸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를 며칠 동안 고민했다. 한국 핸드폰이 아직 살아있어서 그 번호로 한 달짜리 로밍을 할까, 아니면 유럽 심카드를 구입할까 하다가, 가격 때문에 심카드 구매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잘 터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남편과 내가 각각 다른 회사 것으로 구입했다. 둘이 합쳐도 4주 로밍 1인 2GB 보다 저렴하니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 남편은 12GB, 나는 5GB로 했다. 어차피 동영상을 보거나 하지도 않을 테니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보였다.
한참 준비가 바쁜 도중에 미국에 있는 딸에게 다녀왔다. 이제 막 새 직장을 찾아 새로운 곳에 정착한 딸아이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 나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아서 움직인 것이었는데, 그곳에서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며칠 더 머물게 되었고, 그래서 준비가 좀 미뤄졌다. 하지만 딸에게 딱 필요한 순간에 함께 있어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외에도, 여행을 위해서 덕을 본 것도 있었다.
딸내미가 작년 로마 교환학생 갔을 때 사용했던 돼지코! 이태리는 한국처럼 220 볼트이긴 한데, 콘센트는 구멍이 더 작아서 이 돼지코도 더 날씬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쓰는 전기제품들은 캐나다 식이기 때문에 이것이 꼭 필요한데, 내가 구입한 것은 다용도 엄청 큰 것이어서 무겁고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딸아이가 이거 내밀면서, "재미나게 다녀오시고, 나중에 저 다시 갈 때 돌려주세요."
그리고 내가 필요하다는 여행용 샴푸통. 요새 핫한 실리콘으로 된 것인데, 아마존에서 싸게 팔길래 딸아이가 프라임 배송으로 사줘서 손쉽게 들고 왔다. 빨래하는 세제도 들고 가기 좋으라고 작게 하나씩 포장된 것으로 챙겨줬다. 자기 이제 돈 번다고, 여행 가서 입으라고 옷도 사주고, 밥도 자기가 다 사고... 나이 들어가니 딸이 보살펴주고 싶어 하는구나!
집으로 돌아왔더니, 지난주에 남편과 함께 고민해서 주문한 물통이 도착해있었다. 아쉽게도 생각보다 너무 컸지만 이쁘긴 하네. 날씨가 더우니 수시로 목이 마를 테고, 더구나 식당에서 물을 주문해서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남은 물을 챙겨 오려면 물통은 필수이다. 보온 보냉 되는 것은 아무래도 무거울 테니 최대한 가벼운 것으로 장만해봤다. 새지 않는다니 믿어봐야지~
그리고 카메라... 내가 쓰는 카메라는 캐논 550D인데 사진이 만족스럽게 나오기는 하지만 너무 커서 가벼운 여행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폰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내 성격상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고민이 되었는데, 남편이 전부터 가지고 있다며 보여준 카메라! 광학줌이 10배나 되는 캐논 카메라였다! 변화가 빠른 요즘 시대에 이미 구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뭐 그렇게 치면 내 것이 더 구식이다.
그래서 한 손에 들어오는 이 귀여운 카메라가 우리와 함께 여행을 갈 것이다.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