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 제목을 잘 외우는 건 이 때문일까?
책장에 꽃힌 책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아버지는 골머리를 앓기 시작하셨다. 책은 늘어가는데, 어떻게 꽂아야 할지 기준이 모호해진 것이다. 처음엔 문학, 철학, 예술, 역사 등의 큰 분야로 나누어 꽂으셨다. 하지만 점점 어디에 꽃아야 하는지 애매한 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 이 책은 어디에 꽂아야 하지?”
책이 쌓일수록 혼란도 쌓여갔다. 결국 어느 날, 아버지는 결단을 내리셨다.
“그래, 듀이 십진법으로 가자!”
하지만 문제는 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혼자서 이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시자 바로 도와줄 사람을 고용하셨다. 예전에 살던 집에 세들어 살던 분이신 K씨를 집으로 부르셨다.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신기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아버지와 아저씨가 마주 앉아, 작은 견출지에 번호를 일일이 쓰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얼른 부르셨다.
“왔냐? 이리 와서 이것 좀 붙여라.”
“이걸요? 왜요?”
“이렇게 정리해놓으면 책의 권수도 파악할 수 있고, 책을 꽂는 곳도 나눌 수가 있잖야?이걸 꺼내놓은 책등에 하나씩 차례대로 붙여서 다시 꽂아놓아라.”
암만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지만 꼼짝없이 책에 견출지를 붙이는 작업을 도와야만 했다. 곰손인 나는 작은 스티커를 떼어 책등 아래에 붙이는 일이 진짜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정말 의미없는 일 같았다. 하지만 며칠을 함께 하시면서 서재를 보고 뿌듯해하셨다.
“봐라. 이제 우리 집 서재가 도서관이랑 비슷하지? 이래야, 찾기가 쉽지”
내가 보기엔 덕지덕지 견출지가 붙어 모양만 더 지저분해보였다. 하지만 그냥 "그러네요" 라고 말하고 말았다.
K씨는 4일은 연속해서 우리 집에 오셔서 정리와 견출지 작성 작업을 하셨고, 책들은 나름 자리를 찾아갔다. 다행히도 아버지의 듀이십진법 프로젝트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새로운 책을 사오실 때마다 나를 부르셨다. 워낙 책을 많이 사기 때문에 이미 산 책을 또 사가지고 오는 경우가 있었다.
“이거 혹시 집에 있는 건지 확인해봐라.”
그럴 때면 나는 빠르게 책꽂이의 책들의 제목을 훑기 시작한다.
"아빠, 이 책은 이미 있어요.”
“그래? 그럼 반품해야지.”
그렇게 나는 책 제목과 책의 위치를 빠르게 읽는 훈련을 반복했다. 중복된 책을 찾아낼 때의 쾌감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컸다. 매번 한두 권쯤은 이미 있던 책을 찾아냈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셨다.
그 시절의 반복된 훈련 덕분이었을까. 지금도 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책 제목을 그렇게 잘 외우는 비결이 뭐예요?”
그럴 때면 잠시 멈칫한다.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내가 유난히 책 제목을 잘 기억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의 듀이십진법 프로젝트와 중복된 책 찾아내기 훈련 덕분에 책의 제목을 잘 기억하는 능력을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책이 많아질수록 제목과 위치를 기억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내 뇌는 자연스럽게 책의 위치를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었다. 아빠가 책 제목을 대고 어디 있는지 아냐고 물으면 "아. 그 책 세번째 줄쯤에 있을텐데요?" 라고 그 위치를 기억해내곤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느 서재에 가더라도 책의 위치를 기억하려는 습관이 있다. 가끔씩 빠르게 책을 찾아내는 걸 본 사람들이 놀라며 물을 때도 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아내요?”
“아.. 예전에 훈련받았거든요. 듀이십진법으로.”
농담으로 말하곤 하지만 사실 반은 진담이다.
책 제목은 때때로 오해를 부른다. 독서모임을 같이 하시는 분이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과학책 코너에 꽂혀 있어서 웃겼다는 말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제목만 보면 물리학 교재 같지만 사실은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이다. 또 어떤 수학교사는 『구의 증명』을 수학책인 줄 알고 읽었다가, 소설임을 알고 허탈해했다고 한다. 예전에 채사장의 경우, 신비 영역에 대한 책은 어디에 꽂아야 할지 난감하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제목과 다른 분야의 책, 과연 이 책을 어디에 꽂을가는 여전히 난제이다.
돌이켜보면, 그 조악했던 견출지를 붙이던 아버지의 시도는 질서에 대한 열망이었을 것이다. 뭐든지 기준에 의해 맞추어져야한다는 강박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좋은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