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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으로 쌓여가는 하루의 독서

by 책읽는 리나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루틴’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모든 일이 정해진 순서와 규칙 속에서 움직였다. 신문을 스크랩하는 일, 책을 꽂는 일, 성경을 읽는 일까지 하나의 의식처럼 반복되었다. 아버지는 읽은 성경 구절 밑에 그날의 날짜를 작은 크기로 빼곡하게 적어두셨는데 숫자들이 마치 암호처럼 늘어서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항상 펜을 손에 쥔 채 밑줄을 그으셨다.


어린 시절에는 그러한 루틴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아버지의 비누를 잠깐 썼다가 된통 혼이 난 적이 있다. 아버지의 세계에서는 비누란 모름지기 쓰고 난 후 반드시 ‘세워놓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기가 닿지 않도록 세워두면 오래 쓸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때는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세계는 일상 속의 질서와 규칙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반면 나는 정반대였다. 부모님 말씀대로 나는 한없이 게으르고, 뭐든지 귀찮아하는 아이였다. 복잡한 절차는 건너뛰기 일쑤였고, 결과만 괜찮으면 과정은 어떠랴 싶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어느 순간부터 나의 하루에도 루틴이 생기기 시작했다. 쓰는 일과 읽는 일이 일정한 시간대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8년전 매일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이래로 루틴이 생겨났다. 독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독서 루틴은 하루에 두 번의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진다. 아침과 밤이다. 그중에서도 아침의 루틴은 조금 특이하다. 샤워를 한 후, 머리를 말리면서 책을 읽는다. 처음엔 단순히 시간을 아끼기 위한 시도였다. 매일 머리를 감은 뒤 10분 정도 드라이를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이 습관이 생긴 건,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일 하는 일 뒤에 만들고 싶은 습관을 붙여서 해보라는 강의를 듣고 나서였다.


어떤 일 뒤에 독서 습관을 붙여볼까 하다가 머리를 말리는 시간을 선택하였다. 책상 위에 독서대를 놓고, 오늘의 책을 펼쳐놓는다. 처음에는 몇 쪽 읽지 못했지만, 어느새 50페이지는 기본이 되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7년째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참 묘한 일이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의 ‘루틴’이 답답했는데, 이제는 나도 아버지처럼 루틴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나는 아침의 독서로 하루를 연다. 그리고 밤 10시부터 12시까지는 그날의 일기와 읽은 책의 후기를 정리하며 마무리한다. 루틴이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워주는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루틴의 힘』이라는 책에 보면, 작가들이 각자 자신만의 루틴으로 글을 이어갔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60년간 일기를 썼고, 헤밍웨이는 매일 500단어를 채웠으며,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와 수영을 하고 원고지 20매를 썼다. 그들의 루틴은 창작의 기반이 되었고, 삶의 구조가 되었다.


독서가 루틴이 되려면, 새벽 독서든 자기 전 독서든 ‘자신만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커피를 마시며 첫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 머리를 말리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 혹은 잠들기 전 몇 줄의 문장을 읽는 일. 그렇게 삶 속의 작은 루틴이 쌓여 어느새 ‘읽는 사람의 하루’가 된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나는 아버지의 루틴을 가장 닮은 딸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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