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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득 찬 집을 꿈꾸다

아버지의 서재

by 책읽는 리나


아버지는 세상에 두 종류의 집이 있다고 믿으셨다. 책이 있는 집과 책이 없는 집. 아버지에게는 책이 없는 집에서 사는 인생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매일 신문을 스크랩하셨던 아버지는 흥미로운 책 소개가 한 줄이라도 실린 기사는 반드시 오려놓으셨다. 오린 책 소개 글을 모아 제목을 정리하신 뒤, 월급날이 되면 시내 서점으로 향하셨다. 골목길에서 양손에 책 꾸러미를 들고 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끈으로 단단히 묶인 책을 풀어 책장에 차곡차곡 꽂은 다음, 스크랩한 신문 조각을 책의 첫 장에 붙이는 것으로 그달의 책 구매는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흐르면서 50평 아파트의 거실과 두 개의 방은 1만 2천 권의 책으로 포위된 서재로 변해 있었다. 거실에 놓기 위해 엄마가 큰맘 먹고 사셨던 3인용 황갈색 소파는 어느새 쫓겨나야 했다. 일인용 소파 하나만 남아 있어 손님이 오면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1991년도의 일이다. 아버지는 근무지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계셨다. 반상회가 우리 집에서 열렸는데(그 당시에는 집집마다 돌아가며 반상회를 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에 오셨던 분 중 누군가 책장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이렇게 책이 많으면 아파트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 이 말을 전해 들은 아버지는 자못 심각해지셨다.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신 것이다.


며칠 후, 아버지는 정말로 전남대학교 건축공학연구소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셨다. “책이 이렇게 많아도 아파트는 괜찮다는 증명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교수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아파트가 무너질 것 같진 않지만, 안전하다는 증명서 역시 발급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결국 아버지는 마음을 다잡고 강진, 완도, 장흥, 해남 네 군에 4천여 권의 책을 기증하셨다. 남은 8천 권의 책이 여전히 거실과 방을 가득 채웠지만, 그나마 가족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렇게 책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엄마와 아버지의 언쟁은 계속 이어졌다.
“당신, 제발 이제 그 책 좀 정리해요.”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아버지는 늘 같은 대답을 하셨다.
“내가 죽기 전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요.”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서재를 정리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 오빠들과 내가 책을 정리하고 엄마가 책장을 모두 치우셨다.


이처럼 책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부였다.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와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도, 가장 그리운 것도 책이라고 여기셨다. 책장 앞에 서서 위아래를 훑으며 손끝으로 책등을 쓸어내릴 때마다 얼굴에는 평화로운 표정이 번지셨다. 다 읽지 못한 책이 대부분이었지만, 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하다고 하셨다.


그 책들은 국문학, 철학, 종교, 예술, 과학, 민속학 등 온갖 분야에 걸쳐 있었다. 아버지는 책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무렵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접하셨다. 조선일보와 대한출판협회가 공동으로 ‘거실을 서재로’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거실에 소파나 TV를 두지 않고 가족이 함께 책을 읽는 공간으로 바꾸자는 움직임이었다. 불과 이틀 만에 신청자가 9천 명을 넘었다는 기사였다. 아버지는 신문을 들고 와 활짝 웃으셨다.
“봐라, 이제 세상이 나를 따라오잖아.”
책으로 둘러싸인 거실이, 시대를 앞선 ‘선견지명’의 상징으로 재평가받는 순간이라 여기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그토록 책을 쌓아 올린 건 단지 지식을 모으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다. 손때 묻은 책장 속에서 마음의 풍요를 쌓고, 하루를 살아갈 이유를 찾으셨다. 책이 곁에 있는 한 세상은 결코 삭막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책이 많은 집에서 자란 자식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4남매인 우리 집에서 세 명은 여전히 독서를 좋아하고 즐긴다. 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역시 환경은 무시 못한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독서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책이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전국의 도서관을 탐방하는 모임을 하게 된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이렇게 나는 책이 있는 공간에서 자라났고, 세 명의 아이들도 책 속에서 자라난 셈이다. 다만 각자에게 책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려 한다. 이 글은 바로 독자의 사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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