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읽기의 매력
한 작가의 작품을 읽고 깊이 빠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작가의 세계를 모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읽은 책은 두 번째 독서를 이끌고, 그렇게 한 권 두 권씩 이어나가게 된다. 어떤 이야기를 계속 해서 작품을 쓰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혼자 읽으면 지치게 될까봐 함께 읽을 분들을 모집하여 전작 읽기 모임을 만들게 된다.
김영하 작가의 전작 읽기 모임을 만들게 된 건 약간의 우연이었다. 독서모임에서 오랜만에 K를 만났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서 오랜만에 본 터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K가 대학 친구들과 함께 했던 김영하 작가 책 읽기 모임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모임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독특했다. 매달 만나지만 그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같이 책을 읽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책을 읽을지가 문제였다. 한 사람이 추천하면 다른 사람이 싫다고 하고, 반대도 마찬가지여서 의견이 좀처럼 모이지 않았다. 그러다 친구들이 모두 대학 시절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읽은 기억이 떠올랐고, “그럼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출간 순서대로 다 읽어보면 어때?”라는 제안에 모두가 동의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그래,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김영하 작가의 SNS를 팔로우하며 의기투합한 L과 함께 전작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2021년 9월에 시작한 모임은 총 12권을 읽는 대장정이었다.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목록을 정리해보니 읽지 않았던 작품이 꽤 있었다. 12권을 다 읽어보니 단편보다는 장편이 훨씬 좋았다. 무엇보다 가독성이 뛰어나고 재미가 있었다. 사회적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점도 마음에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세 권을 꼽자면 『검은 꽃』, 『살인자의 기억법』, 『빛의 제국』이다. 이 중 『검은 꽃』은 작가의 세계를 가르는 분기점 같은 작품이다. 그 이전과 이후의 결이 뚜렷하게 달라진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심리적 통찰과 서사의 힘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독특한 경험을 준다.
『빛의 제국』은 남파 간첩 기영의 하루를 따라가며, 분단 이후 한국 사회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한 작가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이 모임을 통해 배웠다.
전작읽기 모임 중 가장 뜨거웠던 모임은 한강 작가의 전작 읽기였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날, 한강 작가의 이름이 불리던 순간 톡방은 불이 났다. “우리 한강 책 같이 읽어요!” 누군가 이야기했고, 바로 그날 모임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여수의 사랑』부터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한강작가의 세계를 따라 걸었다. 문장의 깊이와 아름다움에 전율을 느꼈고, 인물들의 상처와 고통에 감응하게 되었다. 12개월이 지나 마지막 책을 덮으며 느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끝까지 읽는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세계 속에 자신을 데려다 놓는 일이라는 걸.
그런데 아이도 비슷하게 전작 읽기의 DNA를 가지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가장 오랜 기간, 많은 권수의 책을 읽은 작가는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두 아이 모두 열광하는데, 줄거리를 서로 경쟁하듯이 나에게 들려준다. 애석하게도 나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거의 읽은 게 없어서 들어도 기억에 남지 않아 아쉽다.
“엄마, 이 사람은 진짜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대단해요.”
아이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고, 또 읽었다. 세번 쯤 읽은 책도 여러 권이었다. 다음 날 식탁에서 소설의 줄거리와 인상 깊은 장면을 설명해준다. “이 부분은 진짜 소름 돋았어요.” 말끝에 섞인 흥분이 익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봄, 문학시간에 아이는 정유정 작가의 소설로 모둠활동을 하면서 작가의 작품을 연달아 읽었다. 『완전한 행복』, 『종의 기원』, 『7년의 밤』을 지나 『28』을 읽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디테일이 살아 있어요.” 아이의 한줄평이 또 이어진다. 좋아하는 작품을 만나면 그 작가의 세계를 모두 알고 싶어지는 마음, 이런 취향도 이어지는지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어쩌면 유전이라기보다, 같은 집에서 비슷한 대화를 나누며 자란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은 음악가의 세계를 탐험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화가의 작품들에 시선을 머문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한 감독의 작품을 이어서 보며 즐거움을 느낀다. 우리는 작가의 세계를 읽는다. 그렇게 한 문장씩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