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집에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려면 시내의 시립도서관으로 가야 했다. 공원 옆 언덕 위에 있던 그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긴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책을 읽으러 간다는 설렘 때문에 힘든 줄 몰랐다.
대학에 가서도 도서관은 나의 주된 생활공간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곧장 도서관으로 향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다. 그래서 도서관은 늘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그 시절의 도서관은 공부나 독서를 위한 ‘공공의 장소’일 뿐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도서관이 변하고 있다. 관공서 같던 느낌의 공간에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추어, 3년 전 4월 12일 도서관의 날에 의미 있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니나노 도서관 탐방 모임’이다. 함께 가볼 만한 도서관을 정하고, 그곳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방문할 도서관을 고르는 과정부터 설렜다. 도서관을 정한 뒤 함께 갈 분들을 모집한다. 보통 6명에서 10명 정도가 함께한다. 11시 반까지는 자유롭게 도서관 곳곳을 둘러보고 각자 책을 읽는다. 점심에는 도서관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근처 식당으로 걸어가 식사한 뒤 카페에서 그날의 도서관과 책 이야기를 나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남산도서관이었다. 그다음은 다산성곽도서관, 송파책박물관, 그리고 네 번째로 간 곳은 독립문 근처의 이진아기념도서관이었다. 이 도서관을 처음 알게 된 건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에서였다. 스물세 살 유학 중 세상을 떠난 딸의 이름으로 아버지가 사재 50억 원을 들여 도서관을 지었다는 이야기였다. 개관식 날, 건축가와 아버지는 낯선 이로부터 한 장의 CD를 선물받았다. 1년 동안 매일 같은 자리에서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찍어준 ‘세진 엄마’라는 분이 선물한 것이었다. 남의 슬픔을 함께 지켜봐 준 그 마음을 받아들인 아버지의 감정이 겹쳐지며 오래도록 마음이 먹먹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도서관은 도봉구의 김근태도서관이다. 개인적으로 참 애정하는 공간이다. 도서관의 열람실은 ‘생각곳’, 전시실은 ‘기억곳’이라 부른다. 공간의 이름만큼 도서관의 구조도 인상적이었다. ㅁ자 형태로 설계되어 가운데는 중정처럼 열린 공간이 있고, 그곳에는 ‘근태서재’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바닥에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이끼무늬가 깔려 있는데, 이는 국가폭력에도 꺾이지 않았던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날은 비가 쏟아지던 8월이었다. 3층 창가에 앉아 이유진의 소설 『브로콜리 펀치』를 읽기 시작하자,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바깥은 어둑했지만 그 안에서 책을 읽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안락하였다. 사물이 사람처럼 말하는 소설의 기발한 상상력과 창밖의 빗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그날의 기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같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도서관 탐방 모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도서관은 이제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다. 사람과 책이 만나고, 이야기와 시간이 쌓이는 열린 공간이다.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이 흩뿌린 지식과 감정의 씨앗이 언젠가 커다란 나무로 자라길 희망한다. 그렇게 우리는 책을 읽고, 걷고, 이야기하며 도서관이 펼치는 세계 속으로 계속 여행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