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가다』를 읽으며
칼국수는 육수의 종류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사골로 국물을 낸 사골 칼국수, 바지락의 시원한 맛이 살아 있는 바지락 칼국수, 칼칼하게 속을 풀어주는 버섯 칼국수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명동 칼국수이다. 다진 고기와 애호박, 표고버섯 고명이 올라간 그 한 그릇의 국물은 늘 ‘아, 이게 바로 따뜻함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몇 해전, 3년 동안 지역 한 고등학교에서 독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학교 앞 명동칼국수 집에 가곤 했다. 국물 한방울까지 다 먹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포만감에 오후 수업 시간에 졸음이 쏟아지곤 했지만, 그래도 그 국물의 맛은 포기할 수 없었다. 아버지도 칼국수를 좋아하셨다. 외식을 거의 하지 않으셨었는데, 은퇴 후에는 집 앞에 있는 칼국수를 파는 식당에 자주 가셨다.
칼국수는 내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그리움의 온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조해진의『겨울을 지나가다』를 읽다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칼국수 장면에서 책장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소설은 췌장암 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난 엄마와 남겨진 두 딸의 애도를 그리고 있다. 엄마의 부재와 그리움, 그 마음의 온도가 칼국수라는 음식을 통해 묘사된다.
소설 속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병세가 깊어지자 두 딸을 불러 집 문서와 가게 서류, 보험과 연금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하신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까지 삶을 정돈하던 엄마는 결국 동짓날 새벽, 조용히 눈을 감는다. 딸 정연은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엄마의 집에 남는다.
어느 날 냉장고에서 엄마가 죽기 직전 담근 김치를 발견하고, 냉동실에서는 미처 쓰지 못한 육수를 발견한다. 정연은 그 육수로 칼국수를 만든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야채를 썰고, 면을 삶는다. 엉성한 맛이었지만 엄마의 육수가 그럭저럭 먹을 만한 음식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날 정연은 오랜만에 ‘맛’에 집중하며 한 그릇을 비웠다. 그 칼국수는 엄마의 부재를 채워주는 음식이었다.
그 장면을 읽으며 아버지와 칼국수를 먹던 시간이 떠올랐다.『겨울을 지나가다』는 애도에 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남겨진 사람의 ‘살아내는 방식’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잃은 후에도 우리는 먹고, 기억하고, 다시 살아간다. 뜨끈한 한 그릇의 국물이 겨울을 견디게 하듯, 누군가의 기억이 우리를 삶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책은 그런 기억의 통로가 되어준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애도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 그 기억 속에서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일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