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과 정신력은 정비례한다더라.
체력이 늘면 정신력도 좋아진다는 말을 들었다. 저질 체력과 너덜너덜해진 정신력 회복을 위해 운동을 배우기로 했다. 뭘 배울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태권도가 떠올랐다. 도복과 기합 소리와 발차기를 해보고 싶었던 어릴 적 욕망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
검색창에 ㅇㅇ동 태권도, ㅇㅇ동 성인 태권도를 검색했다. 후기를 보고 싶어도 찾지 못해서 거리를 우선순위로 두고 4개의 도장을 골랐다.
정말 할 수 있을까? 운동 신경도 없는데 운동장이나 뛸까? 시간은 맞을까? 머리는 계속 망설였지만 손은 종이에 전화로 물어볼 질문을 써 내려갔다. 수업 요일, 시간, 수강료, 진행 방법 등.
a: 월수금, 5명 이내
b: 매일, 10명-15명
c: 매일, 없음
d: 전화 안 받음
수강료는 10만 원 - 13만 원으로 비슷했다. 시간도 7시에서 10시 사이 한 시간씩 운영하고 있었다. 문제는 성인들과 하냐, 학생들과 같이 하냐는 것. 고민 끝에 성인 태권도반을 현재 운영하고 있다는 말에 a 도장을 선택했다.
7시 30분쯤 도장에 갔다. 간단한 인적 사항을 작성하고 도복을 받고 결제를 했다. 옷을 갈아입고 혼자 스트레칭도 했다. 첫 수업은 선생님과 기존 수강생 두 분과 같이 진행됐다. 간단한 스트레칭 5분, 노래에 맞춰서 땀나는 운동, 태권도 동작 등을 배웠다. 이상하게 처음 배웠을 때는 뭘 몰라서 그랬는지, 체력이 좋아서 그랬는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고 몇 번 반복해도 할 만했다. 이후에 급격한 육체적, 정신적 체력 저하로 3번 해도 괜찮았던 운동이 2번만 해도 숨이 차고 주저앉고 싶은 일이 허다했지만 그것도 한 달 정도 지나자 익숙해졌다. 땀나고 힘들수록 운동을 하고 있다!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격파를 하고 가져온 송판이다. 인생 처음 해 본 격파를 기념하기 위해 깨진 송판을 가져왔다. 요령이 없어서 손날로 쳤을 땐 통증이 일주일 정도 지속됐다. 격파를 했을 때 느낌은 내가! 격파를! 하다니!. 미디어에서 열심히 본 무술 유단자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으나 마음만은 고수였다.
정해진 시간에 갈 곳이 있다는 건 삶의 또 다른 활력을 주기도 했다. 빨리 끝내고 운동 가야겠다는 마음이 힘이 될 때도 있었다. 날씨가 궂은날이나 몸이 아픈 날에는 미적거리면서 나갔다. 그래도 막상 하고 오면 뿌듯하고 역시 오늘도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도 해줬다. 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몸이 힘드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났다는 것이다. 힘들고 복잡한 상황들이 이 한 시간 동안에는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얍! 하는 기합을 내지르면서 숨도 차고 다른 동작들을 비슷하게 따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니까 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게 참 좋았다.
흰띠와 도복. 띠를 어떤 방식으로 매야 할지 몰라서 검색해봤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배속을 느리게 하고 봐도 헷갈려서 직접 하면서 영상을 시청했다. 도복도 입고, 송판도 깨고, 여러 활동들이 내겐 좋은 경험이었다. 매 시간마다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조금씩 달라서 재밌게 배울 수 있었다.
기합을 넣고 발차기를 하면서,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세하지만, 나만 알지만 나아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새롭게 배운다는 설렘이 열심히 하고픈 마음을 만들었던 것 같다.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나은 내 모습을 그리면서 발차기 연습을 더 해야겠다. 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