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피해자일지도 모릅니다
당장 이사 가는 일은 어렵겠지만 한창 활발하게 이사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층간소음에서 벗어나고자 검색창에 근처 아파트를 검색해보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시세를 알아보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검색해보고, 이렇게 재보고, 저렇게 재봤던 날들이 있었다.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층간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평온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는 게 얼마나 설렜던지.
아파트를 봐도 내가 아는 건 그냥 주변 환경이나 아파트 이름 정도여서 주변에 계신 분들은 어디에 거주하시는지, 생활환경은 어떤지 이것저것 가볍게 몇 번 여쭤보고 다녔다. 왜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셨지만 그때는 그냥 하하, 웃고 말았다.
층간소음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공감해주고 같이 이야기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내 고통이 재미있는지 웃거나, 네 어렸을 적에는 조용했냐는 원치도 않는 훈계를 당하거나, 가족도 힘들대..? 하는, 마치 네가 예민해서 그런 게 아니냐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이미 몇 번 겪어봐서 마음의 상처를 좀 입었다.) 어느 순간부터 피하게 되었다.
저 시기에 사람 별로 없고 공기 좋은 산 아래에 주택을 짓고 살고 싶다고 말씀하신 분이 계셨다. 그 분과 최근에 또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떤 말로 시작됐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최근 대화는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 주변에 작은 슈퍼도 없으면 불편하지 않을까요?
- 차가 있으니까 한 번 나갈 때 일주일치 장보고 살면 되죠.
- 저도 기회가 되면 주택에 살아보고 싶더라고요. 요즘 이사 가고 싶어요.
- 이사요? 이사는 가족들도 다 같이 움직여야 하고, 요즘 이사 가기 어려울 것 같은데.
- 그러니까요, 제가 빨리 돈 벌어서 독립하는 게 더 빠를 것 같기도 해서 열심히 벌려고요. 하하. 살고 계신 동네 주변에 편의시설도 있고 좋지 않나요? 되게 편하실 것 같은데..
- 좋죠. 편하고 그런데 신경 쓸 일이 많으니까, 위층도 신경 쓰이고.. (여기서 촉이 왔다.)
- 위층이요? 왜요?
- 위층이 너무 뛰더라고요. 지금 이사 온 집도 장난 아닌데 전에 살던 집은 더 했어요.
- (목소리가 커졌다.) 저희 집도 그래요! 그래서 이사 가고 싶어요.
- 지금 이사 온 집도 한 5-6년 참다가 너무 심해져서 얘기해봤는데..
- 얘기하셨는데 괜찮아지셨어요?
- 거기는 한 명이 어느 정도 크면 동생이 생겨서 또 뛰고, 한 명이 크니까 동생이 생겨서 또 뛰고 그래요.
- 저희 위층도 그래요! 조용하다 싶었더니.. 정말 층간소음 때문에 이사 가고 싶다니까요.. 대화 나누니까 뭐라고 하셨어요?
- 죄송하다고 하죠. 미안하니까 단지네에서 보면 약간 피해 다니는 것 같고..
- 저희 위층은 전혀 그런 말없고 예민하다고 하더라고요.(오히려 제가 마주칠 까 봐 심장 벌벌 떨면서 다닌다고도 얘기하고 싶었으나 너무 스스로가 불쌍해져서 관뒀다.)
더 얘기하면 대화가 한탄으로만 가득 찰까 봐 어느 정도 얘기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결론은 사람 별로 없는 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였고 이유는 층간소음으로 동일했다. 층간소음 피해자가 내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놀라웠다. 나와 말씀을 나누신 분은 초월하셨는지 허허 웃으실 뿐이었다.
이 날은 평소보다 일찍 귀가했는데 위층은 내가 집에 오자마자 현관에서부터 뛰는 소리로 나를 맞이해주더니 밤 10시 반까지 쾅!!!! 우다다다!!!! 하는 발소리와 아이 악쓰는 소음을 들려주었다. 얼마나 크게 질러야 저 소음이 우리 집까지 들리는지 모르겠으나 아래층은 지옥인데 굉장히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