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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Oct 19. 2020

태생이 예민한 게 아니라 예민해진 겁니다

몇 년 동안 지속된 가스라이팅인가?

층간 소음 피해자들은 원래 예민해서 층간소음을 잘 느끼는 게 아니라 층간 소음 때문에 예민해진 걸 것이다. 대부분 그럴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밤낮으로 두드려대는데 예민해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여기에 '네가 예민해서 그런 거 아니야?' 이런 말은 층간소음에 관해서라면 선후 관계가 대단히 잘못된 문장이다.


아파트 게시판이나 엘리베이터에 'n월 n일~n월 n일 리모델링 공사'를 예고해도 뜬금없이 들리는 망치 두들기는 소리, 깨부수는 소리, 드릴 소리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떤 소음이 이어질지 알고 들어도 괴로운데 크고 예고도 없이 미친 듯이 두들기는 소음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위층에서 나는 소음은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 들어도 종일 뛴다! 계속 뛴다! 쉬지 않고 뛴다! 뭔가 굴러간다! 무게가 나가는 물건이 바닥을 찍고 있다! 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우리 집 천장을 두들긴다. 멀쩡한 사람이 와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걸 어찌 감당하면서 살고 있는지 곱씹어 보자니 스스로가 측은해진다.




유튜브 콘텐츠 '허지웅답기'에 층간소음과 관련된 사연을 보낸 분도 층간소음에 대해 이야기하니 위층한테 예민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층간소음과 관련된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을 읽어봐도 아래층이 듣는 단골 멘트 중에 예민하시네요, 가 빠지지 않는다. 예민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려고 견디고 견디다 이야기했을 텐데 사과는커녕 몰아가기라니 어안이 벙벙해지고 가슴이 아프다.




해결은 안 되고 예민하다는 소리만 들으니 어느 날은 미친 듯이 뛰는 소음을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 예민한가? 이런 소음을 남들은 견디고 사는 건가? 그러다 아이가 지르는 소리가 벽을 타고 우리 집으로 전달되고, 문이 흔들리고, 형광등에 달린 쇠 부분이 진동 때문에 찡- 소리를 내며 떨리고,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켜도, 청소기를 돌려도, 음악을 틀어도 위층이 우리 집 천장을 향해 내지르는 소음 폭격을 막을 수 없었기에 이건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고 결론지었다.




가스라이팅인가? 가스라이팅 학대 방법에는 거부, 반박, 전환, 경시, 망각이 있다고 한다. 


안 뛰었고, 자고 있었고, 가만히 있었었다는 수많은 거짓말.

인터폰 무시, 방송 무시. 쪽지 무시.

예민하다고 몰아가기.

부정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보복 소음.


방법들을 읽으며 겪었던 일들을 끼워 맞추니 얼추 들어맞는다. 끔찍하다 끔찍해.


몇 년 동안 변하는 건 없고 소음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니 현실에 체념하다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다가 울컥하다가 분노가 치솟을 때도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기 검열과 가족 검열.


뭐 하나 책 잡히지 않으려고 자잘하게 신경 쓰는 게 많아졌고, 일상생활을 하다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소음도 거대 스트레스로 다가와 나를 덮칠 때가 있다. 무의식 중에 어떤 행동을 하다가도 소음이 생각 외로 크게 발생한 것 같으면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너는 층간 소음 때문에 힘들다면서 네가 이런 소음을 내? 소음에 예민하다면서 이 정도로 소리를 크게 듣는거야? 조심성이 없어 왜? 이런 말들이 앵앵대는 모기처럼 귓가에 맴돈다. 짜증이 솟는다. 각자의 짐을 가지고 소음을 견디며 평범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가족들한테도 갑자기 쏘아붙이듯 이야기하다가 번뜩 내 행동을 되돌아본 적도 있다. 어쩌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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