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정윤 Oct 17. 2020

초식 동물이 선잠을 자듯이

살려고 반대 방향으로 냅다 뛰는 동물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얼마나 소리를 질러야 아래층까지 목소리가 울리는지 의문이다. 창문을 꽉 닫아놨음에도 벽을 타고 꺄악- 꺄- 꺄아아아아- 하는 아이 목소리가 벽을 타고 내려온다. 방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발소리도 우리 집까지 울리는 건 원하지 않는 덤이다. 창문을 열어두면 바깥 소음이 층간소음을 완화해주는 느낌이 들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다. 이상한 반항심이다. 몸도 으슬으슬하고 날씨도 추운 탓인가. 빨리 자고 싶다는 마음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써보지만 꿍- 꿍- 우다다다- 우다다다다다다- 울리는 뛰는 소리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밤이 깊었는데 위층 부모님은 아이들 놀아주기에 여념이 없나 보다. 아니면 애들끼리 저리 뛰는데 전혀 제재를 하고 있지 않는 건가. 뛰는 소리 너머 가끔 꿍- 꿍- 하는 발소리가 들린다. 어른이 내는 소리 같다. 술래잡기를 하나? 가끔 뭔가 구르는 소리도 들린다. 청소기인가? 집 안에서 타는 자동차인가? 덩달아 내 심장도 불규칙적으로 요동친다. 노래를 인위적으로 크게 틀어서 층간소음을 덮으려니 소음에 시달린 심신은 벌써 피곤하다.


밖으로 나갈까, 망설였으나 이미 씻고 옷도 갈아입은 터라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든다. 으아아아아아아 너무 피곤한데 쿵- 쿵- 쾅!!! 쾅!!! 높은 가구에 올라가 뛰어내리는지, 온 가족이 손을 잡고 방을 하나씩 맡고 동시에 뛰는지 천장이 통째로 울린다. 도대체 이런 소음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미칠 것 같다. 진짜 미치겠다.




잔다, 는 표현보다 몸을 재운다, 는 표현이 요즘은 맞는 것 같다. 살기 위해,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내 몸을 재우고 있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져서 새벽에 일어나면 밖은 아직 밤이다. 밤에 나갔다가 밤에 집으로 들어온다. 소음은 랜덤이라 그 늦은 시간에도 우리 집을 괴롭힐 때가 있다. 그래도 밤이면 자겠지, 이 확률을 나는 믿고 늦게까지 버티다 집으로 온다. 


그렇게 집으로 오면 귀가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계획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행동이 느려지면서 눕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층간소음에서 벗어나고자 밖에 있었다고 한들, 집만큼 익숙한 공간은 없으니 오면 눕고 싶고, 쉬고 싶고, 자고 싶어 진다. 이런 당연한 욕구를 깡그리 짓밟는 위층만 아니었다면 지금 삶의 질이 1200%는 수직 상승했을 거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를 열심히 아래층 천장을 향해 내던지는 소음이 끊이질 않으니까.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서 지금 적고 있다. 나도 살라고 내 감정을 이렇게나마 밖으로 던지고 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지금 빨리 자야지, 지금 나도 5시간도 못 자네, 이런 합리화를 하며 할 일을 뒤로 슬슬 미루고 씻고 누우면 잠이 바로 드느냐! 그건 또 아니다. 소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몰라서 그런가 몸이 항상 긴장 상태에 있다. 일례로 새벽에 위층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 꿍- 꿍- 꿍꿍꿍꿍- 발망치 소리를 내며 자신의 흔적을 알려주면 소음이 시작함과 동시에 눈이 떠진다. 알람보다 먼저 일어나도 더 잘 수 있는데 지금 일어났다니! 하는 기분이 드는데 원치 않는 시간대에, 원치 않는 방법으로 일어나는 아침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더 자고 싶어도 이미 신경은 발망치 소리에 가 있어서 제대로 자지도 못한다.


언젠가 영상을 하나 본 적이 있다. 그 동물이 뭐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슴류였나, 기린이었나. 초식 동물이 넓은 초원에서 자고 있다가 저 멀리서 육식 동물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갑자기 일어나 반대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리는 영상이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불편하게 자다가 살려는 본능으로 반대 방향으로 냅다 뛰는 동물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몸이 피곤하면 시끄러워도 잘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의 몸이 견딜 수 있는 소음 주파수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피곤하면 졸든데 집에서는 그게 안 된다. 오늘도 일찍 자고 싶어서 눈만 감고 있었다. 그런데 위층이 계속 너무 쉬지 않고 뛰어서 자지도, 졸지도 못하고 좀비처럼 눈만 뜨고 있다.


진짜 궁금하다. 얼마나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야 우리 집까지 위층 아이가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릴 수 있을까? 쓰고 있는 동안 위층 아이는 우다다다 우다다다다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우리 집에서 들릴 정도면 위층은 더 잘 알 수 있을 텐데 전혀 제한하지 않나 보다.


초식 동물들은 조금만 자도 체력이 회복되는 걸까? 그렇다면 좀 부럽다. 나도 조금만 자고 조금만 먹어도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새벽밥 먹고 나가 있다가 아침 점심 저녁 먹으러 집에 다시 들르지 않아도 되니 층간소음에서 벗어나 생활활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집에 들어와 눈만 잠깐 붙이고 나가도 에너지가 충전되면 그것도 좋을 것 같고.


오늘 좀 자고 내일은 어디서 또 시간을 보내야 할까. 배고프지 않게 밥 든든하게 먹고 최대한 늦게 들어올 수 있도록 뭐 좀 챙겨서 나가야겠다.

이전 02화 집순이가 귀가를 늦추기 위해 하는 선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